현대영화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영화 속 영상의 스펙타클한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곤 하더라도, 영화의 서사 및 연출에 필수적인 영화음악은 관람자들에게 감정 혹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캐리비안의 해적>, <인터스텔라>, <인셉션>, 그리고 <탑건 : 매버릭> 등 많은 명작들이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특히, 언급한 위 영화들의 공통점은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의 손을 거쳤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10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는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영화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식을 남긴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을 펼치는 공연이었다.
연주는 음악을 그리는 지휘자 '김재원'을 필두로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로 구성된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곡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First Step’ 이었다. 순수한 발걸음을 내딛는 몽환적인 순간같은 느낌의 이 곡은 빠르게 공연장을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음악에 어울리는 잔잔한 최소한의 조명 연출은 소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으며, 이내 곧 인터스텔라를 보며 느꼈던 숭고한 감정과 사랑에 대한 감정이 떠올랐다.
1부의 세 번째 곡은 2022년 되돌아온 영화 탑건: 매버릭의 메인 테마곡이다. 영화의 긴 오프닝은 항공모함을 이・착륙하는 전투기와 조종사, 비행장면 등이 어우러진 명장면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순간 영화의 이 장면이 바로 떠오르며,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전율을 다시 선사했다.
특히, 기존 오케스트라를 생각하고 과연 주요 멜로디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는데, 일렉기타의 등장과 함께 궁금증이 풀리며 음악에 오롯이 빠져들게 되었다.
1부의 마지막 곡 글래디에이터의 'The Battle'은 긴박한 순간, 치열한 전투를 훌륭히 표현했다. 짧은 스트로크와 호흡의 관현악과 박진감을 만들어내는 타악기의 조화는 눈앞에 글래디에이터들의 투기장을 펼쳐냈다. 여기에 무대를 옅게 비추는 붉은 조명은 음악과 함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콘서트가 진행될수록 인상깊었던 점은 음악의 장르가 다양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충분히 살렸다는 것이었다. 각 영화의 플롯, 주인공의 상황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음악에 녹여내는 데 있어 어느하나 비슷하거나 반복되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한스 짐머의 작업 세계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케일과 다양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부터 판타지, 액션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으며, 콘서트 내내 흥미로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연출된 셋업 구성이 공연 시간을 채우고 있다.
또다른 인상깊었던 점은, 모르는 영화의 노래를 듣고도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해낸 것인지 대략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이었다. 이집트 왕자, 진주만, 분노의 역류 등 아직 보지 못했던 영화들에도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영화음악 콘서트는 아름다운 선율 그 자체를 느끼면서 동시에 영화의 서사와 감동을 다시 되뇌이게 만든다는 점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청각과 상상력에 기반한 공감각을 자극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