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화하는 인간이라는 현재와 미래 - 달의 뒷면을 걷다

글 입력 2024.11.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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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줄거리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고민과 삶의 문제가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막연한 자유를 꿈꾼다. 평생을 적응했던 중력의 굴레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암실에 뚫린 바늘구멍처럼 곳곳에서 연약한 빛을 내는 별들이 있다. 맨눈으로 보면 그렇게나 가까워 보이지만, 지구의 지름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별들이 모인 은하다.

 

우리도 끝을 헤아릴 수도 없는 저 먼 우주로 나간다면 이 창백하고 푸른 점이 정한 운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먼 듯 가까운 듯, 거리를 두고 서로의 삶이 있는 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사람은 우주에서 맨몸으로 버티기 힘들다. 지구의 중력에 적응한 몸은 끓는 점이 지구보다 낮은 우주의 망망대해에서 피가 끓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인류가 우주로 나간다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장 고민하는 것은 모든 지구인이 우주인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해서가 아니라 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이다.

 

SF 장르 작품이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우주와 같이 불확실하고 막연한 미래를 헤쳐나가거나 희망을 발견해 낸다는 핵심 줄기를 따라가는 것도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그 어느 때보다 현실의 무게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 현대인이 있다면 그에게 SF를, 특히 전혜진 작가의 ⟪달의 뒷면을 걷다⟫를 추천하고 싶다.

 

 

[표1] 달의 뒷면을 걷다.jpg

 

 

순정 만화와 SF 소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소설 시리즈 3번째 작품, ⟪달의 뒷면을 걷다⟫는 끊임없이 나아가는 인간의 진화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흥미로운 SF 문학이다.

 

여느 SF 소설처럼 인류의 미래가 여전히 현재의 불행과 불평등을 종식하지 못했더라도, 지구에서 본 무수한 별들처럼 서로 닮은 슬픔이 여전히 산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절망 사이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의지가 담겨 있으면서도 순정 만화 특유의 씁쓸한 정서가 짙게 묻어났다.

 

본 리뷰에서는 ⟪달의 뒷면을 걷다⟫ 속에서 언급한 '진화하는 영혼'에 관한 고찰을 나누려 한다.

 

 

 

호기심으로 살고 호기심으로 죽는 인간이란 모순


 

소설은 달에서 태어나 지구로 가는 것이 금지된 월인, '디오티마'의 짧은 로드 무비와 같은 형식으로 전개된다. 애칭으로는 '다이 Di'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자신과 같이 달 태생인 아이들이 지구로 가던 중 고중력 쇼크로 죽었던 일을 비롯해 달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생기는 우주암으로 양친을 잃었던 비극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은 달을 개척하는 데 성공하게 했지만, 이에 대한 대가인지 우주암과 고중력 쇼크라는 부작용의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는 호기심을 인간의 본질로 설정한 작가의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끝없이 흘러가는 미래를 바닥나지 않는 인간의 탐구심으로 계속해서 끌고 가는 것은 과연 어떤 미래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호기심을 가지고 인류를 그 호기심 너머의 미래로 견인하는 인간이 과연 진화하는 인간인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과연 인간을 진일보하게 하는 열쇠인가.

 

이야기를 읽다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이의 할아버지인 아서와 다이를 제외하고는 달에 머무르는, 달 뒷면 연구를 이끌어가는 연구원들은 계속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 달에 있더라도 3년 뒤 돌아갈 푸른 행성을, 그 미래이자 과거를 줄곧 그리워한다.

 

그들의 현재는 달이라는 현재에 있지 않다. 진보는 눈앞에 있어도 그리움과 미련은 늘 등 뒤에 있다. 사람은 이를 원한다고 떨쳐낼 수 없다. 애석하지만,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의지와 그리움은 대척점에 서 있다.

 

강한 탐구심을 지니고 달을 탐구하는 데 열을 올렸으면서도 죽기 전에는 지구를 그리워했던 항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은 진보를 원하는 듯하면서도 어느 정도 나아간 후에는 과거의 향수에 목을 매는 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 뿐만 아니라 우주암 때문에 지구로 돌아가면 곧 죽는다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음에도 지구로 꼭 가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다.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그 걱정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한 오르페우스처럼, 확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지구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지닌 사람의 모습은 애절하기까지 하다.

 

그리스 여인 디오티마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달 뒷면에 대한 열망은 구체화된 현실이자 미래로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트라우마와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호기심은 사람을 환희에 젖게 하기도 하지만, 갈구할수록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지구에서 태어나 달에 온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한 미래에서도 조금도 발전하지 않는, 그렇기에 불변하는 호기심이 인간 본질의 핵이자 거역할 수 없는 마음임을 작가는 암시한다.

 

다이의 목소리를 빌려 달마저 식민지로 삼는 인간의 바닥 없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환멸을 내내 읽어낼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연민 또한 엿볼 수 있다.

 

 

 

외로운 별처럼 빛나는, 진화하는 영혼


 

그렇다면 나머 준과 같은 진화하는 영혼은 그리움을 모르는 인간인가. 그것도 아니다. 아서 우코와 디오티마 우코는 둘 다 지구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던 과거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두 눈은 앞을,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다.

 

아서는 달이 희망, 고통, 꿈이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한 곳, 달에 있었기 때문에 달을 희망이라 불렀다. 아서는 손녀 다이에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쌍둥이를 목숨으로 구한 존 H. 서얼이 그랬듯 타인의 삶의 지침이 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흘러 아름다웠던 과거가 희미한 빛으로 점차 스러져갈지라도 다이가 그 빛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다 그저 자신의 삶을 개척해 살아가기만을 바랐다.

 

 

"내가 네게 바란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단다."

그것은 이 달에서 시작하여 다시 미래로 나아가는 것.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 마음의 탯줄을 남겨둔 채 달에 도착하여, 때로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지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 다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 그 누구도 앞선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세계에서 오직 자신의 지도를 만들며 걸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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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면에서 다이는 그가 바라는 대로 훌륭하게 자라고 있었다. 코스모폴리스인 제프와 선생 호쿨리니는 초반에 다이를 말썽꾸러기처럼 취급하기도 하지만, 다이의 저항은 그들의 시선과 인식을 뿌리치고 다이는 미래에 삶을 스스로 일궈내는 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다이는 지구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달에서 자신의 삶을, 월인의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월인의 권리를 외쳤다. 가슴 아픈 과거에 체념하고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다이는 지구인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그것이 자신과 월인을 향한 환멸로 변질되도록 두지 않은 것이다.

 

이는 다이가 오로지 월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는 아니다. 지구에서도 다이의 행보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잠시 언급되었을 뿐이지만, 작금의 현실에 대입해보았을 때 이러한 사람들마저 없었다면, 다이가 그리는 월인의 미래와 그 진화에 대한 그림에 감화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다이의 싸움은 아주 길고 외로워졌을 수도 있다.

 

아서와 다이가 제시하는 진화하는 영혼이라는 인간상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서 궁여지책을 구상하는 인간이 아니다. 고작 다섯 명 남은 월인 중 단 한 명의 월인 일지라도 그 다섯에게 진화를 가져오기 위한, 나머 준이 말했던 것처럼 그저 작은 한 걸음을 똑바로 걸을 줄 아는 인간이 바로 다이였다. 아픈 추억으로 가득한 달에서 계속해서 다이를 돌보며 미래 세대인 다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이 아서였다.

 

더 나아질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인간, 그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달의 뒷면을 걷다⟫를 덮고, 우리가 지향할 것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진보가 아니라 우리 다음에 올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등을 받쳐주고 밀어줄 수 있는 인류 그 자체의 진화여야 한다는 한 가지 울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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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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