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도 배는 떠오르고 – 아침바다 갈매기는 [영화]

그래도 해는 떠오르듯, 그래도 배는 뜬다.
글 입력 2024.11.1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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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 산다. 고향은 대구광역시 인근의 경상북도 어딘가, 소도시. 주변 사람에게 고향 이름을 말하면 어딘지 모르는 곳. 나는 알지만, 남들은 모르는 곳에서 왔다. 이 영화를 단순히 재미로 보기에는 나에겐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시골 출신, 국제결혼의 다문화 가정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 시골 사람의 텃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배척시켜 닦인 길만을 걸어봐서 이방인을 만난 적 없는 사람. 그렇지만 지금은 서울에 사는, 이곳에서는 나도 이방인인 사람.

 

 

메인 포스터01.jpg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다큐멘터리 무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촌 마을 사람들의 마음 아주 깊은 곳을 낱낱이 파헤친 영화다. 그들 뇌의 단면도를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솔직한 전라의 영화.

 

 


네 사람


 

영화에는 선장인 영국, 선원 용수, 용수의 어머니 판례, 용수의 베트남인 아내 영란이 등장한다. 용수는 언젠가 이 동네를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자신의 계획을 도와줄 것을 영국에게 청한다.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보험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아내 영란에게 사망보험금을 주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자신도 베트남으로 밀입국하는 것. 이 모든 작업은 영란과 판례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모르게끔 진행할 것.


영국은 정이 많은 선장이다. 그러나 아주 강경한 이 시대의 노인이다. 해병대 군인으로서 베트남 전쟁 당시 참전하였으며 해병대 문신이 팔뚝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딸 한 명은 자살하고, 남은 딸 하나는 부녀관계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가부장적이고 맡은 바에 충실하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못한 아주 전형적인 우리네 기성세대 아버지인 그가 바로 영국이다.


이런 영국에게 일평생 흐리멍덩하던 눈을 반짝이며 본인을 죽은 것처럼 위장해달라는 용수의 청을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영국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용수에게 그러겠노라 대답했을 것이다. 딸들이 모두 자신을 떠난 뒤, 어느 정도는 용수를 자기 자식처럼 대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용수는 어찌 보면 참 이기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만큼 과감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남자이자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국제결혼으로 만난 아내를 사랑하고 영란에게 보험금을 주겠다고 생각한 그 대범함을 나는 높이 산다. 어머니에게는 일언반구 없이 훌쩍 떠나버린 것은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판례와 영란이야말로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에 휘말려 아들 또는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물들. 판례는 이 동네에서 산 지 오래되었으며, 용수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란은 한국말에 서툴고 마음 붙일 곳이라곤 용수와 판례, 영국이 전부다. 친구는 거의 없고 이 동네에서 2년을 살았으나 여전히 배척된다. 이 사건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휘말려 아픔이란 아픔은 모조리 겪는 인물이라고 본다.

 

 


그래도 배는 뜬다.


 

그래도 태양(해)은 뜬다. 라는 말은 여러 글에서 볼 수 있는 문장 중 하나다. 나는 이 관용구를 인용했다. "그래도 배는 뜬다." 이 어촌 마을에서는 해가 뜨나 안 뜨나 배는 뜬다. 용수의 수색이 일시 중지되는 상황 속에서 판례의 이러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11월이면 5시에 깜깜해지는데도 일 나간다. 그런데 왜 벌써 돌아오냔 말이야.”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어촌은 오후 5시든 6시든 상관없이 불 환히 켜놓고 배를 띄운다. 항해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바람과 물살뿐이다. 해가 있고 없고는 어촌 사람들에게 중요한 게 아닌데도, 오후 6시면 수색 작업을 멈춰야 한다는 정부 지침을 거론하는 경찰에게 판례가 악을 쓰며 한 말이다.


이 대사를 빌려, ‘그래도 해는 뜬다’를 변형한 문장이 바로 ‘그래도 배는 뜬다’이다. 그래도 내일의 배는 뜨지. 그 배가 수색을 돕는 민간 어선이든, 작업을 하는 어선이든지 간에. 그래도 배는 뜬다.

 

 


이름 이영란


 

극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인물이다. 타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2년 살았으며 일 배우고, 남편을 잃고 유산을 하고, 한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며,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고, 시어머니로부터 쫓겨난 인물. 이렇게 한 줄로 적어놓으니 이만큼이나 비루한 인생이 없다. 그러나 영란은 이 동네를, 판례를, 용수를 미워하기만 하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떠나느냔 말에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혼자 남을 판례를 걱정한다. 동시에 판례는 베트남으로 가야 하냐는 영란의 말에 화를 낸다. 그런 말은 하지도 못하게, 친근한 우리네 할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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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의 본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영란은 그저 영란일 뿐.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영란에게 가장 처음으로 느꼈던 소속감이 이름이지 않았을까. 영란이 영란일 수 있도록 본명의 언급을 줄인 것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게 아닐지 짐작해 본다.


장면 중 영란의 친구가 등장해 베트남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사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이 동네 사람들이 지겹다.’ 친구의 말에 영란도 동의했다. 그러나 말의 말미에 판례는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에게 잘해주었다며 말을 흐렸다.


영란에게는 그야말로 사건의 연속이다. 선장님은 자꾸 사망보험금을 받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화를 내지. 판례는 정신을 못 차리고 부둣가에서 온종일 용수가 돌아오길 기다리지. 이웃집 선장님은 이상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기까지.


이 모든 일련의 사건 속 가해자는 당신이고 피해자는 오로지 영란이었다.


 

 

그냥 사는 삶


 

영화의 막이 내리고 감상에 젖어 극장을 나올 무렵, 영국을 맡은 윤주상 배우를 만났다.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어 나 또한 줄을 서서 사진을 요청했다. 사진을 찍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가만히 듣다가 윤주상 배우가 느낀 ‘영국’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냥 사는 삶이에요.” 윤주상 배우는 영국이 그냥 주어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 그만큼 안타까운 사람이 없다고.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에 그냥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반문했다. 나는 윤주상 배우의 말에 무언으로 동감했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용수가 자작극을 벌인 데에는 ‘그냥 사는 삶’을 그만두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은 그냥 살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사람이고 용수는 결국엔 그냥 사는 삶을 그만두고자 한다. 영국은 어쩌면 그런 용수를 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런 어려운 부탁을 단번에 들어줬을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자신은 돌이킬 수 없으니 용수는 다를 수 있을 거라고.

 

*

 

이 영화는 시골 사람이라면 모두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을 조명한다. 대도시의 사람들은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고.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장단점을 파악하기 쉬운 것처럼, 어촌 생활을 아주 가까이 찍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불쾌한 진실과 감정을 마주하라.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한 현실 속 이방인을 기억해 내라.

 

 

 

권민기 명함.jpg

 

 

[권민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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