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6 : "저희를 존중한다면, 달의 환경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달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저희한테도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지오웰의 '1984' 소설 속 감시사회는, 중국의 수십만대 CCTV 사회로 구현되었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마치 기계 부속품처럼 되어가는 현재의 사회와 닮아있습니다. 이처럼 SF 소설 작가들은 때로는 과학자들보다도 더 날카로운 상상력으로 미래를 예견하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달의 뒷면을 걷다' 또한 전혜진 작가의 SF소설로서, 미래에 달에서 태어나게 된 '월인'과 지구에서 달로 가서 살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존 권교정 만화 작가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를 재해석하여, 전혜진 작가의 시선을 담은 SF소설입니다.
최근 테슬라(TESLA)와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인공위성을 자주 쏘아올리며, 화성으로의 이주까지도 설계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급부상하였습니다. 이 시기 '달의 뒷면을 걷다'를 읽어보면서, 우주로까지 인간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I. '달의 뒷면을 걷다' 소설 출간의 의의
이 소설은 '슌정만화 X SF' 컬래버레이션 시리즈 중 세번째 작품으로, 예전 SF만화를 소설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전혜진 작가는 권교정 만화 작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P.202 : 수학교육과를 나오고 만화가가 된 권교정 선생님은 그 꿈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분이었다....(중략)....나는 현재 한국 SF작가들 중 여성 작가의 비율이 높은 데는 199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된 SF 순정만화의 위대한 역사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다.
II. 소설 속 가상 설정
소설 주인공 '다이(디오티마 우코)'는 달에서 태어난 '월인'입니다. 소설의 첫 장면은 '다이'가 할아버지가 일하고 있는 '달의 뒷면'으로 운전해가는 모습부터 시작이 됩니다. '다이'는 달 기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아서 우코'의 손녀라는 설정입니다. 이외에도 몇가지 흥미로운 설정이 있습니다.
① 달에서 태어난 '월인'이 지구에 갈 수 없는 이유 - 달 중력은 지구 중력의 1/6입니다. 이에 소설 속에서는, 달에서 태어난 '월인'은 달의 중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 도착하면 즉시 쇼크를 일으키며 죽는다고 설정했습니다. 따라서 달에서 태어난 '다이'와 그녀의 남동생 '라테라사'는 절대 지구에 갈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세계우주기구'가 '쇼크' 사례를 발견한 이후부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지구에서 달로 이주했던 사람들의 임신과 출산을 금지했고, 이로 인해 '월인'은 '다이', '라테라사', 그 외 3명만 존재한다고 설정하고 있습니다.
② 지구에서 태어난 '지구인'이 달에서 3년이상 살 수 없는 이유 - 소설은 또한, 지구에서 달로 간 사람들은 방사선 등의 영향을 받아 일부 사람들이 '우주암'에 걸리게 된다고 설정해 두었습니다.
P.72 : 2075년의 비극적 사고 이후로 2076년 세계우주기구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며 안전하게 달 개척을 하기 위한 '달 거주법'을 통과시켰다. 달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전면 금지되었다. 지구 출신들은 달에서 최대 3년까지 근무할 수 있으며, 달에서 근무할 때에도 18세 미만의 자녀를 동반할 수 없다. 18세 미만의 지구인은 관광 목적의 1개월 이내의 단기 체류만이 허가된다. 지구 출신이 달에 영구 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가족으로서 월인을 보호할 떄 뿐이지만 달에서 낳은 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십수 년 이상 달에 남아있던 지구인들은 대부분 우주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III. 달에 살게 된다면 나타날 수 있는 문제
위와 같은 가상 설정 아래, 전혜진 작가는 여러가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을 풍자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① 쓰레기 매립 문제 - 실제로 우주 쓰레기는 점차 증가하고 있어 현재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 <승리호> 등에서도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함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점도 그 때문입니다.
P.39 : 다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더욱 목청을 돋우어 소리질렀다. "이틀 전에! 달에 산업 폐기물을 매립하는 법안이 승인되었습니다. 바로 여기 세계 우주기구에서요. 달이! 무슨 지구인들 쓰레기통입니까!"
그러나 지금까지는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쓰레기에 대해 고려했다면, '달의 뒷면을 걷다'에서는 지구인들이 달에 지구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문제에 대해 고려하고 있습니다. 상상해보면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구 내부에서도 쓰레기를 태평양이나 다른 나라에 매립하는 문제가 있는데, 미래에 달이 개발된다면 지구의 쓰레기를 달에 매립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② 달 자치 집단 문제 - 달이 인간의 거주지로서 개발된다면, 어느 나라에 속하게 될까요? 자체적인 정치 집단이 생겨날까요, 아니면 전세계 각국의 우주기구가 관리하게 될까요?
먼 옛날 콜롬버스가 항해하던 시절처럼, 먼저 선점하여 거주지로 개발하는 나라가 해당 행성을 갖게 된다면, 이제는 우주에서의 제 2차 식민국 전쟁이 일어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누가 먼저 행성을 가질 것인가, 혹은 달에서 살게 된다면, 달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만일 달이 특정 나라에 귀속되지 않는다면, 달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달 거주 기구' 등이 만들어지게 될텐데, 해당 의사결정을 '달에 사는 사람들'이 하게 될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게 될지 의문입니다.
③ 달 거주인의 사생활 - 앞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이 소설 속에서는 '다이'라는 주인공을 포함하여 월인은 5명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과 기자들이 월인들을 연구하고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에도 달 탐사 프로그램을 예약한 여러 유명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은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때 만일 달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미래에 생겨나게 된다면,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질 것입니다. 우주에는 여러 인공위성도 많다보니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P.84 : 물론 미성년자, 특히 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다이의 갓난아기 때의 얼굴은 노출될지언정 이름까지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의 초기 이민자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과학자와 기술자로 서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처지였다.
④ 방사선으로 인한 질병 - 우주암? - 소설 속에서는 지구인들이 달에 가서 살면 우주암이 발병하여 사망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현재 항공사 승무원들 중에서도 백혈병 등을 앓게 되어서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인정받는 분들이 존재합니다. 직업특성상 방사선 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인데, 만일 우주에서 살게 된다면 정말 소설 속 '우주암'과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질병들이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
⑤ 달의 앞면과 뒷면 -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서로 같아, 항상 지구에서는 달의 앞면만 보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인간이 달에서 살게 되면서, 지구가 보이는 달의 앞면은 거주지로 삼되, 각종 자원 채굴 등을 위한 개발지는 달의 뒷면에 주로 두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 이유는 소설 속 사람들이, 지구에서 보이는 달의 앞면 모습은 보존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반면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모습은 개발하여 그 모습이 훼손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⑥ 정신 질환 문제 - 소설 속에서는 달에 살면서 우주만 보다보니, 지구에 대한 향수병과 우울감이 합쳐져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구가 보이는 달의 앞면에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았으나, 지구가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신 질환이 나타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가상 상황을 설정했습니다.
꽤 그럴 듯해 보이는 설정입니다. '바다만 보고 살면 사람이 미친다'는 말도 있듯이, 잘 변하지 않는 우주의 풍경만을 보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정신질환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달에서 살게 된다면 이러한 부분도 고려해볼 만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IV. 소설 추천 이유
① 다양한 문제 상황 설정 - 아직 우주에서 산다는 것은 먼 이야기 같지만, 기술들은 점점 더 빠르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법이나 규칙, 문화 등이 그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아노미'라고 부릅니다. 이때 '달의 뒷면을 걷다'와 같은 소설을 통해 사람들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상상해보고, 이에 미리 규칙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는 부족할지라도 인간의 상상력이 담긴 우주SF소설 등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② '다이'의 적극적 태도 - 주인공 '다이'는 여러가지 '월인'에 대한 차별과 맞서 싸웁니다. 지구의 쓰레기를 달에 버리는 것에 대해 시위를 하기도 하고, '월인'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우주정거장으로도 못 오도록 규제했지만 이러한 규정을 바꾸고 결국 우주정거장에서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또한 달에는 대학이 없었으나, '월인'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설립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영화 '히든 피겨스'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히든피겨스'에서는 흑인 여성들이 '흑인'이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지적 능력과 업무 태도에도 불구하고, NASA에서의 취직이 제한되거나 애초에 NASA에는 유색인종은 들어갈 수 없는 '백인 화장실'만 존재하는 등의 차별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화 주인공들은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하나씩 바꾸어 나가고 결국 백인이든 흑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문화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 소설 속 '다이'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