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을 걷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폴라북스 ‘순정만화×SF소설’ 컬러버레이션 마지막 시리즈이다.
처음 순정 만화와 SF의 스펙트럼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생각지도 못한 장르의 교차랄까.
추천의 말에 “장르 이해의 저변을 넓히는 의미에서도 귀한 텍스트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 굉장히 동감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순정 만화와 SF가 같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 해봤고, 어쩌면 무의식중에 그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SF와 순정 만화의 범주를 너무 한정 지어 생각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는 <제멋대로 함선 디오타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제멋대로 함선 디오타마>의 등장인물 부분부터 차근히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당연히 ‘디오타마’의 환생인 ‘나머 준’이 주로 등장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내 생각은 박살 났다. 주로서 서술되는 인물이 ‘디오타마’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작중 가장 나이가 많은 월인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인물이 나와서 초반에는 책을 읽는 속도가 조금 느렸다. 또 앞에 나와 있는 원작 등장인물 부분으로 여러 번 되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에 익숙해지면서 원래 내가 책 읽는 속도로 올라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초반 부분의 대다수와 중간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NIMBY(님비)’와 ‘PIMBY(핌비)’였다. NIMBY란 Not In My Backyard의 준말로,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아니한 일을 반대하는 행동을 뜻한다. PIMBY는 Please In My Backyard의 준말로, 일부 사회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시설들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을 뜻한다. 님비 현상의 반대말로 핌비 현상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다.
다이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가방을 열어 얇은 이불처럼 보이는 천 무더기를 꺼냈다. 그리고 달 모형을 향해 다가가며 제 몸보다 더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 머리 위로 휘둘렀다. 표준중력의 1/6밖에 되지 않는 이곳에서 있는 힘을 다해 휘두른 현수막은, 다이의 키 높이 두 배 가까이 높이 떠올랐다가 달 모형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달의 뒷면 위로 '달은 지구의 쓰레기통이 아니다'라고 적힌 새빨간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다이는 행복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부유한 관광객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달은! 지구인들의! 쓰레기통이! 아니야!"
_p.38~39
작중에서 다이가 이런 말을 외친다. 지구인들이 여러 쓰레기를 지구에서 가져와 달의 뒷면에 파묻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지구에서 바라보는 달의 모습에는 손대고 싶어 하지 않아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에만. 내가 왜 님비와 핌비라는 단어가 떠올렸는지 이제 이해하겠는가?
그리고 작중에서 경찰인 제프가 “무슨 이유면 어때. 원래 복지라는 건 그게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혜택은 많은 사람이 다같이 누리는 거라고.”라고 한다. 이 말을 읽고 나서 여러 복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는 과거에 누군가가 목소리를 낸 결과라는 걸.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리라는 걸.
또 다이는 자신의 이름이 왜 디오타마인지, 왜 가족들이 줄곧 이름을 지어오던 방식에서 벗어났는지 생각을 해왔고 그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다이를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다.
문득 이 달에서, 처음으로 갓 태어난 생명을 안아보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 아이에게 디오티마라고 부르던 순간의 마음도.
"내가 네게 바란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단다."
그것은 이 달에서 시작하여 다시 미래로 나아가는 것.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 마음의 탯줄을 남겨둔 채 달에 도착하여, 때로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지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 다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 그 누구도 앞선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세계에서 오직 자신의 지도를 만들어 걸어가는 것.
_p.122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디오타마’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다이가 진화하는 영혼이 되기를 바랐다기보다는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길 바란 것이었다. 언제나 다음을 바라보고 누구보다 앞서 나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길.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다이에게 디오타마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유였다.
책의 후반에 그제야 자신의 이름이 지어진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된 다이는 경찰 제프가 복지에 대해서 말한 걸 활용하여 닷사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 다른 방법으로 성취해 내고 만다. 책을 읽으며 함께 따라가던 나는 다이가 얼마나 크고 넓은 꿈을 꾸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기어코 성취해 내고 마는지를 보면서 전율이 일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도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보람찬 결과가 아닐까. 다이가 포기했다면 얻을 수 없었던. 그런 결과를 얻어낸 다이가 그 순간만큼은 대단히 크게 보였다.
분명히 책을 처음 손에 들고 첫 페이지를 넘겼던 순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여러 방면에서 울림으로 다가온 책이 되었다. 순정 만화×SF소설이라는 것에서부터 내 생각을 변화시켰고, 님비를 떠올리면서 얼마나 이기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또 다이가 결국은 성취해 낸 것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도전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