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몹시도 불었던 지난 2022년 겨울,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공연 '히사이시조 영화음악 콘서트'를 보기 위해 잠실로 향했다. 졸진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부드러운 강약 조절로 꾸며진 연주와 풍성한 셋리스트 등으로 예상치 못하게 겨울 선물을 받았다.
그날 처음 WE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만났다.
WE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예술 감독이기도 한 김재원 지휘자가 이끄는 민간 오케스트라다. 연간 70회 이상의 콘서트로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롯데콘서트홀 등 주요 공연장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클래식을 넘어 오페라, 필름 콘서트, 영화음악 콘서트처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데, 이번 콘서트는 영화 음악계의 선두이자 거장으로 불리는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을 주제로 무대가 열렸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연출
가장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로 무대 연출이었다. 특히 조명은 한스 짐머의 음악이 영화음악으로 사용된 것을 말없이 설명했다. 관객이 음악의 분위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각 영화의 특색을 살려 조명을 달리한 점은, 영화의 주제로까지 이어진 섬세함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Main Theme]의 서론이 잔잔히 시작되던 무대는 어두운 조명을 받아 어둡고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크 나이트'의 주제에는 '선'과 '악'의 대립이 있다. 이 주제처럼, 음악이 고조되며 현악기와 관악기의 세션이 서로 다른 선율을 연주하는데, 빠르고 높은음을 내는 현악기는 빨간색, 무겁고 진중한 소리를 내는 관악기는 파란색의 조명으로 비춰진다. 두 영역의 소리와 음악, 더 나아가 영화에서의 가치가 충돌되는 모습을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볼 수 있어 콘서트에 깊이와 연출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오케스트라, 조화
위 악기들 외, 북과 하프, 피아노 등 정말 많은 악기를 한눈에 보고, 소리를 귀에 담을 수 있었다. 수십 명의 WE 필하모닉 단원들은 그 다름의 조화로 최고의 화음을 만든다. 다른 음역과 템포로 연주되는 세션들이 부딪히면서도 아름답게 융화되는 모습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이어져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전자 기타도 이번 무대에서 수십 대의 현, 관악기와 어우러졌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현대와 클래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 악기들과 현대 악기가 한데 모이는 '다름'에서 '조화'를 찾을 수 있었다.
영화 '인셉션'에 수록된 [Time]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다채로운 화음으로 압도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누어진 파트가 각자의 선율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거대한 하나의 파도처럼 요동친다.
1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었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오롯이 경험한 오케스트라의 힘이었다.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
다시 잠잠해지는 곡 말미는, 요동쳤던 파도를 다시 잠재우는데 자연스럽게 '글래디에이터'의 끝을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 막시무스와 콜로세움을 비추며 화면이 어두워지던 영화처럼 말이다. 이렇듯,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곡의 장면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더욱 무대에 몰입할 수 있다. 영화음악 콘서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그러나 주객전도가 된다면 온전한 관람이 어렵다. 이를테면 처음으로 콘서트의 막을 열었던 영화 '인터스텔라'의 곡, [First Step]
이 콘서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음악 콘서트가 아니라,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 콘서트인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음악으로 말하고자 했던, 또 연출하고 구성하고자 했던 무대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영화와 감독보단, '한스 짐머' 그의 음악 이야기에 더욱 집중해 보면 좋겠다.
낯선 영화의 음악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더욱 새로운 배움으로 풍성한 관람이 가능하다. 새로운 음악과 더불어, 몰랐던 영화에 대한 호기심까지 일석이조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