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것 - 박찬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영화]

가장 순수한 사랑, 순애
글 입력 2024.11.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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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한다. 먹어야 하니까 살아야 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 중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한다, 는 말이 왠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후자의 말은 삶이 먹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전자의 말은 그래도 살았으면 좋겠어, 하는 따뜻한 당부가 섞인 말처럼 들린다.

 

이 따뜻한 당부를 순수한 사랑 속에 담아 전하는 영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의 연이은 성공 이후 개봉한 박찬욱, 정서경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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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자신일 수 없는 사람들


 

어느 날 자신이 싸이보그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공장에서 피복을 벗긴 전선으로 충전을 시도하다 신세계 정신병원으로 실려오게 된 소녀 영군(임수정 역). 병원에서 다양한 공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구 짓는 작화증을 가진 아주머니, 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왕곱단,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 남자, 허리에 묶은 살색 고무줄을 날 때부터 함께 태어났다 믿는 남자 등.

 

신세계 정신병원은 자기자신을 현실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의 공상을 의사들은 병이라 칭한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것은, 신세계 정신병원 속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이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직시한 이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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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군은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주장한다.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영군은, 자기 존재의 목적을 찾기를 갈망한다. 이는 죽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살고 싶어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군이 바라는 것은 '기계화된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다. 그렇게 살지 못할 바에야 죽어도 상관 없다고, 끝까지 싸이보그로서 살아가다 죽겠다는 것이 영군의 각오이다.

 

 

 

2. 네가 누군지 알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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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 당도한 영군은 밤마다 병원을 돌아다니며 사람이 아닌, 병원의 기계들과 인사를 나눈다.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끼리, 기계는 기계끼리. 그것이 영군의 세계 속 맞는 이치이다.

 

이런 영군의 모습을 발견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일순(정지훈 역)이다. 일순은 자신이 토끼 가면을 쓰면 사람의 습관과 신념, 그 무엇이든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틀니를 끼고 자판기와 수다를 떠는 영군에게 일순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다.

 

그리고 사람의 습관, 마음, 그 무엇이든 훔치는 일순에게 영군 역시 관심을 가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과 같은 인간의 마음을 일순이 훔쳐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3. 라이스 메가트론과 평생AS


 

영화 속 수많은 이들이 영군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애를 쓴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살 수 있는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되니까.

 

그러나 정작 싸이보그이기에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영군의 의사는 무시된다. 영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삶보다 싸이보그라는 자신의 정체성임에도. 영군의 의사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신세계 정신병원의 환자들뿐이다.


“환자 동의도 없이 왜 밥을 먹이냐”며 항의하는 일순은, 영군에게 밥 에너지를 전자 에너지로 바꿔준다는 ‘라이스 메가트론 장치’를 만들어 준다. 이 장치를 영군에게 심어주기 위해 일순은 그의 등에 마음의 문을 그리고, 문을 열어 청소하고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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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메가트론 장치를 갖게 된 후 영군은 밥을 먹으려 여러 번 시도한다. 신세계 정신병원의 모두가 영군이 밥 한 술을 떠먹기 위해 노력하는 광경을 숨죽여 지켜본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영군은 밥을 먹기에 실패한다.

 

라이스 메가트론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고장나거나 하면 등을 걱정하는 영군에게 일순은 직접 만든 명함을 내민다. 평생 무료 AS를 해주겠다며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일순의 자신만만한 말은, 그 어떤 대사보다 로맨틱하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 옆에서 평생 함께 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싶은 대로 살도록 해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사랑을 그려냄에 기꺼이 성공해낸다.

 

 

[양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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