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시대 현대미술과 소통하기 -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미술/전시]

동시대가 주목하는 작가 4인,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의 작업을 향유하는 아주 사적인 가이드.
글 입력 2024.11.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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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국현)의 1, 2전시실에서 <올해의 작가상 2024 (Korea Artist Prize 2024)> 전시가 막을 올렸다.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네 명(혹은 팀)의 유망 작가를 선발해 후원하고, 작업을 선보일 기회를 부여하는 국립현대미술관 X SBS문화재단 주관의 중요 연례 전시이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미술계를 이끌어 가는 작가들의 이전 주요 작업과 신작을 만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동시대 미술의 최신 경향과 흐름에 관심이 많은 문화예술 애호가라면 반드시 올해의 작가상을 주목해야 한다.


10월 27일, 나 역시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방문했다. 화창한 개관 첫 주 주말, 선정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향유하기 위한 많은 인파가 국현에 몰렸다.


올해의 작가 4인은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이다. 전시 순서는 윤지영, 권하윤, 양정욱, 제인 진 카이젠 작가 순으로, 전시장에 들어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윤지영 작가의 (마치 내장을 엮어 만든 것 같은) 그물 형상의 조형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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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2024, 윤지영

 

 

전시장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그물은 우리 모두를 조금 당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용기를 머금고 그물을 비껴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이내 강렬하고도 섬세한 작가의 예술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윤지영 작가는 외부와 감추어진 내부에 대한 고찰을 개념적인 조형 작업으로 승화한다.

 

특히 가장 눈여겨봐야 할 신작으로 <호로피다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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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피다오>, 2024, 윤지영

 

 

전시장 입구에 놓인 얼굴 모양 조각은 작가의 작업이 생소한 감상자의 입장에서 처음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여러 전작을 지나 작업의 비화를 담아낸 비디오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호로피다오>와 완전히 공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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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피다오>, 2024, 윤지영

 

 

무형의 것은 어떻게 유형의 것이 되는가?

 

작가를 본뜬 얼굴 모양의 ‘봉헌물’은 그 속에 외부와의 경계를 넘는 ‘소리’, 즉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형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유형의 봉헌물이 된다.

 

우리는 작업과 영상을 통해 봉헌물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 내부에 담긴 무형의 기도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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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빌리지>, 2014, 권하윤

 

 

다음 전시장은 붉은빛으로 가득하다.

 

권하윤 작가는 애니메이션, VR 영상을 매개로 역사, 기록, 기억에 관한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DMZ를 주제로 다룬 전작 <모델 빌리지>, <489년>에 이어 이번 신작 <옥산의 수호자들>에서도 국가와 이데올로기 너머의 가치를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옥산의 수호자들>은 대만의 옥산(위산)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매개로 적대적 관계 속에서 친구가 된 이들의 실화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치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우거진 숲의 붉은 그림자 속에서 감상자들은 VR 기기를 착용하고 대나무 등불을 든 채 목소리를 따라 전시장을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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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년>, 2016, 권하윤

 

 

<489년>은 신작과 더불어 눈여겨보아야 할 흥미로운 작업이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군사적 긴장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공간, DMZ에 대한 이야기. VR 버전이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전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DMZ에 가지 못하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 상상을 실현해 내는 작가의 역량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권하윤 작가를 통해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것만 같았던 공간 속에 혼재하는 인간, 그리고 자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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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2024, 양정욱


 

양정욱 작가의 전시장에 입장한 우리는 다소 생경한 풍경 속에 놓인다.

 

키네틱 아트를 연상케 하는, 어떠한 기계적 움직임의 조형 작업을 앞에 두고 일단 자리에 앉아 비치된 작가의 글들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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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려는 사람의 그림 (비치된 책에 수록된 글)>, 2024, 양정욱

 

 

우리는 작가의 글들을 통해서 작업과 공명하게 된다.

 

양정욱 작가의 글은 짧고 단순하지만, 그 속에 담긴 담백한 진심은 심금을 울린다. 그의 작업은 단지 움직임, 오직 움직임에 목적을 둔 키네틱 아트가 아니다. 작가 본인이 겪고 우리가 모두 겪는 인간 삶의 단면을 조각 글과 이와 상응하는 조형 작업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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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작품 캡션과 스크래치, 2024, 양정욱

 

 

다른 작가들과 조금 차별화되는 전시 포인트가 있다면, 작품의 캡션 위에 새겨진 작품의 형태를 본 떠 휘갈긴 스크래치, 그리고 전시장 전체 내벽을 잇는 삐뚤삐뚤한 선 스크래치를 따라가는 재미를 꼽을 수 있다. ‘기억하려는 사람의 그림’. 삶의 순간을 기억하고 작업으로 승화하는 작가와 상응하는 표현이다.

 

그저 움직임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투영한 움직임.

 

양정욱 작가의 작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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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 2023, 제인 진 카이젠

 

 

마지막으로 제인 진 카이젠 작가의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마치 깊은 바닷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블랙박스 속에서 상호 연결된 7점의 영상 작업은 모두 ‘제주’라는 공통 주제이자 배경으로 집약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주요 작업에서는 제주의 민속 신앙과 역사,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신화와 제례 등이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제주 바다에서 진행되는 수중 제사의 거행과 영적인 퍼포먼스를 담은 <잔해>와 <제물> 영상은 굉장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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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2024, 제인 진 카이젠

 

 

특히 신작 <잔해>는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만가를 귀 기울여 들어 보기를 권한다. 제주의 아픈 역사와 관련된 아카이브 영상, 사진 자료와 바닷속에서 행하는 제례 장면이 교차하는 해당 작업 속에서 슬프고도 주술적으로 들리는 만가는 영상의 주제를 관통한다.

 

이 외에도 제인 진 카이젠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제주의 사람, 아이들은 모두 제주의 신화, 영적인 매개들과 살아 숨 쉰다. 꼭두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하얀 면직물로 서로를 연결하고 자연과 상응하는 할망들의 모습을 담아낸 영상들은 작가가 삶과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

 

이렇게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의 짧고 사적인 리뷰가 끝이 났다.

 

실제로 작가들의 작업을 마주한다면 글과 사진으로만 보는 것보다 크게 감동할 수 있기에 꼭 방문하길 권한다.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 네 작가의 작업 방식과 주제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1. 그들이 다루는 이야기에 관해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질문한다는 것 / 2. 개인의 삶과 고찰에서 출발해 사회적 논의와 대화, 공감으로 나아간다는 것의 공통점을 가진다.

 

결국 문화예술이 소통을 위한 매개인 동시에 소통의 주체라는 것이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동시대 예술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신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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