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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생기면 산을 꼭 같이 가봐라!"

 

고등학교 시절 별명이 '진달래'였던 역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명언이다. 아마 산을 오르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보니 사람을 사귐에 있어 좋은 시험지라 생각하셨던 듯 하다.


하지만 나는 나부터 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산을 타며 힘들 땐 힘든 티 팍팍 내고, 말수도 없어진다. 산을 오를때마다 스스로를 시험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항상 나를 테스트하듯 산에 오르다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순간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더랜다.

 

오늘은 그렇게 하나씩 모은, 삶과 이다지도 닮아있는 산의 법칙들을 세 가지 정도 소개하려 한다.

 

 

 

1. 산을 오르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내게는 등산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관악산을 오르던 때, 분명 같이 출발했건만 친구는 조금씩 앞에서 그림자를 늘여가더니 이미 저 멀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머릿속으로 ‘나의 체력은 왜 이렇게 저질스러운가’ 하며 스스로를 심판대에 올렸다. 그간 운동을 미루고 다리근력 증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과거의 안일함을 느끼면서!


하지만 사실 체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산을 오르는 속도는 다르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건 각자의 보폭이, 또 호흡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누군가는 조금만 숨이 차면 쉬어가길 원하고, 누군가는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를 때 비로소 쉼을 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출발은 함께했지만 같은 시간이 지났을 때 통과하는 지점은 모두 다르다.

 

만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보폭, 같은 호흡으로 움직인다면 흡사 행군과도 같은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또 절대적인 속도의 정답이 없는 만큼, 내가 뒤처진다고 해서 불안해할 것은 없다. 나의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저 멀리 앞서가던 사람이 그루터기에서 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니 말이다.

 

 

 

2. 선택. 선택의 연속이다.


 

산을 오르는 데에도 많은 분기점과 루트가 있다. 산 정상인 연주대를 남겨두고 2/3 정도 등반을 완료하였을 때, 누가 봐도 산 전문가 같은 아저씨 한 분이 나와 친구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마치 오징어 게임처럼 너무나 유혹적인 ‘제안’을 하셨다. “자 첫 번째는 쉽지만 지루한 길, 두 번째는 빠른 대신 조금 위험한 길! 어떤 걸 택할 거여?” 정말이지 요즘 유행하는 쟁쟁한 밸런스 게임에 버금가는 선택이었다. 이미 지쳐 단 1분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던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대단한 난이도의 ‘바위산 코스’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아저씨를 뒤따라 간 곳에는 집채만 한 바위산과, 바로 몇 발자국 옆의 낭떠러지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익스트림 스포츠’ 그 자체였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며 아저씨께서는 아찔한 절벽을 배경으로 나와 친구의 사진을 여럿 남겨주셨다.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렇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오른 정상에서 한숨을 돌릴 때, 나의 선택에 비로소 만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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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였던 길에 분기점이 생기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우리 인생에서의 많은 지점에서도 그렇다. 역시나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언제나 나의 선택으로 얻고, 또 그렇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극악 난이도의 코스를 선택함으로써 빨리 정상에 도달했고, 둘도 없는 무용담과 추억, 사진을 얻었다. 하지만 만약 쉬운 코스를 택했다면 주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둘러보았겠지만, 특별한 경험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선택했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정진하는 뚝심도 필요하다. 사실 나는 본래 번복도, 후회도 많은 편이라 어려운 코스를 가면서도 자꾸 선택의 순간을 떠올리며 과거의 나를 질책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역시 나의 선택을 믿고, 눈앞의 길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빨리 ‘정상’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3. 오르막은 힘들다. 원래가.


 

얼마 전 동네 아파트 뒤편의 산에 오르며 물든 가을을 만끽했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산책이었지만, 오르막에 진입한 순간 산을 걷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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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을 오르면서도 거의 힘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도 당연할 것이, 이전 같았으면 오르막에서도 평지에서와 같은 속도를 유지하려고 발 보폭을 크게 크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애초에 오르막을 “빨리” 오르려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나의 상태와 호흡에 맞춰 가장 편한 보폭을 택했고,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하여 ‘어떤 일을 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면 그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위로를 주었던 김수지 아나운서의 말처럼, 오르막은 원래 오르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인생의 고비와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보이지 않는 인생의 오르막에 진입해 있다는 것. 또 그때에는 원래 성큼성큼 속도를 내는 일이 배로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어도 더 이상 앞길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기대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르막이 결국 우리를 이끄는 곳은 최소 완만한 길, 최대 산의 정상일 것이니.


 

 

4. 에피소드


 

이 에피소드들에 함께한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는 내 친구는 등산화부터 시작해 스포츠웨어, 등산스틱과 장갑을 하나씩 갖춰 점차 프로 등산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20대가 등산 취미를 갖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말이다. 친구에게 ‘넌 왜 그렇게 산을 좋아하니’ 하고 물었다.


“올라야 돼서 좋아”


올라야 돼서 좋다니. 생각지도 못한 간단한 답변이자, 오늘의 이야기를 갈무리하기 좋은 요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내일을 맞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야 할 것 같은 우리의 인생에도 마피아처럼 나지막한 의문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문득,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럴 때는 ‘올라야 하는’ 산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은 그저 앞에 놓인 길이 있으니 걷고, 오르는 것이 마땅한 곳이니까!

 

산을 오르듯, 인생도 마땅히 놓인 하루하루를 지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납득이 된다.


앞으로 산에서는 또 어떤 인생의 법칙을 발견하게 될까.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속편을 쓰게 되는 그날까지 또 산을 오르고, 열심히 인생을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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