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을 균형

가을에 문득 도착하기
글 입력 2024.10.2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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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안고 여름을 보냈다. 살아있어서 맥동하는 감각이 유난히 아우성치는 여름처럼. 몸에 감도는 체온은 갑갑하고, 초목은 남은 생기를 터뜨리듯 무성해지고, 비와 구름은 습기를 마구 밀어 넣는 여름처럼. 늘 작은 공처럼 움츠려있던 마음이 낯선 기지개를 활짝 펴더니 품에 안기 벅찰 만큼 커다래졌다. 그만큼 각별하게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니다보니 문득 가을이다.


여름의 일을 말하려면 그보다 더 과거로 물러나야 한다. 아무런 기대 없이 혼자 글을 쓰는 여러 밤의 뒷모습에게로. 그림자는 형체 없는 감정이나 모호한 관념을 이야기하기 위해 끌어온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글을 쓰고 있다. 그림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일 만한 글을 쓸 생각이 없다. 오롯이 내 안에서 끄집어낸 나로서의 글, 나만 알면 그만인 글. 혼자 겨우 서 있을 만한 아주 작은 품의 글을 생각하며 키보드를 두들긴다. 완성된 글을 공개해 두긴 하지만 역시 크게 기대하는 건 없다. 사람들 눈에 띌 필요는 없으니 - 차라리 마음 편하게 숨어 있고 싶으니 - 쓰고 싶은 문장을 계속 쏟아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글은 아니니까. 그림자는 자처한 고립을 능숙하게 합리화한다.


관념을 고스란히 꺼내둔 글. 손끝으로 건진 희미한 감정을 낱낱이 헤아려보겠다며 우연한 상상을 매만지며 써 내려간 글. 이런 글이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일까. 무언가 보이는 것 같은데 밀폐된 온실 같아서 온전히 다가갈 수 없는 글. 살피고 또 살펴도 그 속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우물 같은 글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는 늘 그런 염려 속에서 글을 썼고,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글을 완성하고, 내가 쓴 글이라고 자랑하지도 못하고 숨겼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니 그때 숨긴 게 글인지 나인지 조금 헷갈리지만.


‘나’를 반복하며 나서길 주저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속에 든 응어리를 해소하고 싶어서 써대는 문장들. 누군가에게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반복하는 독백. 정말 나만 알고 나만 꾸는 꿈이니까. 결국 자그마한 수렁을 닮은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독자는 무슨 죄로 이런 불친절한 글을 읽어야 하지, 싶은 생각도 들고. 어차피 작가가 되겠단 욕심은 없었고(이런 태도론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글쓰기가 일상이 되었으니 남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쓰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쓰는 외로움을 어찌 할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올해는 그 외로움을 모른 척할 여력이 없었다. 왜 내가 내 마음을 외면하고 있지. 사람들과 글을 쓰고 나누며 함께하고 싶은 마음, 그건 줄곧 품어온 것 같은데. 바라면서도 그럴 자격이 없다며 여태 혼자 움츠려 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여태 그렇게만 살아온 것 같았다. 늘 자신이 없는 채로. 그러니까 ‘자신’이 없는 채로. 파릇한 새싹이 땅 위로 움트는 봄에 속절없이 우울감에 휩싸였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써왔고, 여태 쌓은 글은 이만큼인데 막상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땅속에 웅크린 것 같았다. 심지어는 웅크리려고 버티는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은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무서웠다. 외면도 습관이 되고 어떤 고질적인 중독이 될 수 있구나 싶어서. 외면당한 마음이 숨을 틀 방도를 억지로라도 찾아야만 했다.


무작정 글 모임을 신청했다. ‘나’를 말하는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서, 사람들과 함께 글을 써보고 싶어서 용기 내 봤다고 나를 소개했다. 난생처음으로 관념 속으로 도망치지 않은, ‘현실에 발붙인 나‘를 쓰며 여름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글로 쓸 만한 일을 찾는 것부터 너무 어려웠다. 여태 너무 재미없게 인생을 살았나. 분명 삶의 순간들을 자주 회피하고 혼자를 자처하긴 했지. 그래도 열심히 기억을 뒤졌다. 잊어버렸던 많은 기억들, 게 중 쓸 만한 걸 찾아 끄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얘길 왜 써야 하지. 이걸 누가 읽지. 의문이 많았지만 과제 완수를 위해 뭐라도 끄적이다 보니 물꼬가 텄다. 어느 밤부터 댐 벽이 무너지듯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막상 말하려니 부끄러운 기억을 두 눈 꾹 감고 하나씩 곱게 펼쳐냈다. 혼자 하는 공상이나, 누구와 말도 못 나눈 외로운 생일날이라던가, 징그럽게 술 취한 모습 같은 거. 그런 얘기를 쓰고, 쓰고나서 더 선명하게 확인하는 외로운 고문을 매주 실천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있나. 적당히 볼만한 얘기를 지어서 쓰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자주 했었지만 거짓말까지 하며 쓰고 싶은 글은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마음에 곪았던 응어리를 지금 꺼내지 않으면 땅속에 영영 웅크려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불안이 벅찬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어느 순간부터 간절함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여름이 무르익는 내내 쏟아내고 부끄러워하고, 하지만 생존하고 싶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온도든 습기든 극단적인 여름처럼 멀쩡히 일하는 낮과 감정에 질척이며 글 쓰는 밤을 반복하며 웅크린 기억을 여름날의 수풀처럼 세상 밖으로 무성히 피워냈다. 슬픈 마음으로 다짐하다가도 쓰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손끝에 분노가 어린 듯 키보드를 두들겼다. 보듬어주지 못한 슬픔은 언제라도 주체하기 어려운 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감정적으로 쓴 탓에 두서없는 글을 들고 매주 모임에 갔다. 못난 글을 읽어주는 사려 깊은 모임원과의 대화 속에서 내 글에 대한 여러 얘기를 들었다. 문장이 감각적이고, 수채화 같은 인상을 주고, 어쩌면 시를 쓰는 게 더 좋겠다는 얘기들. 혼자서는 확신하기는커녕 알아차릴 도리가 없던 감사한 얘기들. 글을 나누는 기쁨을 바짝 긴장한 몸으로 맞이하며 여름을 보냈다.


무엇보다 응어리를 하나씩 꺼내고 펼치는 시간을 보내며 마음에 새로운 빈자리를 마련했다. 감췄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아 부어오른 마음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 속은 한결 비워낸 기분이었다. 무언가 일상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마저 일었다. 이것도 내가 줄곧 품어왔던 마음이었을까. 작은 쇠공이 아니라 큼지막한 풍선 같은 마음을 품고 ‘보다 나은 글’을 찾자고 다짐했다. 나만 보면 그만인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보고 나눌 수 있는 나의 글을. 내가 줄곧 바라오던 것을 마음 다해 찾아보자고.


한편으론 좀 더 일찍 용기 내서 사람들을 만났다면 지금 더 더 좋은 글을 쓰고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내 삶은 지금에야 이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와 글, 이제는 사람과 세상을 글 쓰는 자리에 함께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에세이를, 시를, 어느 문장이든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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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처음 느끼는 감정과 새롭게 이는 상념으로 달뜬 마음을 하나하나 차분히 자리 잡아주며 가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것이 꽤 무던하다. 낯설 만큼 평화롭다. 평소의 일상이나 감정이 모난 부분 없이 폭 낮은 물결무늬를 그리며 흘러간다. 숨 쉬는 것도 한결 가볍고 몸에 닿는 온도도 적당하고, 크게 불편한 마음이나 일도 없다. 몸 안팎으로 숨 막히듯 짙었던 여름과 너무 크게 대비되어서 사뭇 생경한 기분으로 가을을 지내는 중이다.


아침 10시. 이번에 좋아하게 된 김소연 시인의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들고 산책을 나왔다. 하늘이 참 가볍고 시푸르다. 채 걷히지 못한 안개가 산 중턱에 누워있고, 가장 먼저 물들기 시작한 메타세쿼이아가 부드러운 갈색빛을 비친다. 여름이 욕심을 부리는지 햇빛은 눈 부셨지만 제법 가을이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몇 주 전에 도서관 앞 벤치마다 둥근 차양이 씌워졌다. 날 좋을 때 앉아서 시간 보내면 좋을 것 같아 눈여겨봤었는데 그 '좋음’을 실천하러 가는 길이다. 도서관 앞에 도착해 고개를 조금 들면 해와 눈을 맞추는 자리에 앉았다. 이른 시간의 고요한 공기를 느끼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다. 별 이유 따지지 않고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달리 뭔갈 바라지 않을 테니 삶에 이런 순간이 드문드문 잘 이어진다면 인간 평균 수명은 채우고 살 마음이 생길 것 같다. 그러니까 습관적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 상태, 할 일을 꾸준히 하는 지구력이 충분하고, 요즘 되뇌는 주문 “기대 금지. 자의식 죽이기”를 잘 기억하고, 불가피한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말이지. ‘좋음’의 조건을 일일이 나열하자니 아차 싶다. 이 모든 게 균형을 이룬 지금이야말로 정말 귀한 순간이 아닌가. 그래도 앞으로는 이런 순간을 더 자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보지만 실망하지 않을 미래를 위해 주문을 외며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다.


더워서 벗어둔 겉옷을 끌어다 다리 위를 덮는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무릎에 닿는 햇빛이 따가웠다. 아직도 성질을 부리는 햇빛이 밉다가도 덕분에 또렷이 반짝이는 공원이 예뻐서 마냥 싫어할 수 없게 된다. 좀 덥다 싶으면 불어오는 바람이 박하 향처럼 차갑다. 다리가 저려서 잠시 책을 덮고 잔디밭에 나가 기지개를 켰다. 고갤 숙이니 파란 잔디 위로 내 그림자와 그 옆에 벤치 그림자, 위로는 나무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운 장면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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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


요즘 플래너에 기록하는 작업이 밀리지 않는다. 일기도 빼먹는 날 없이 잘 채운다. 꼬박꼬박 하루를 산다는 의미다. 여름 이후론 내 글이 사람을 꾸준히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내 글을 보여준다는 건 여전히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이 크고 작은 만남과 대화가 쓰는 일상에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감각을 그런 방식으로 어렴풋이 배우는 중이다. 그 기쁨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내 모습이 좋다.

 

사람의 안팎을 아우르는 삶의 균형이 시소라면, 마음은 시소의 중심을 찾는 고요한 분주함으로 평생을 사는 것 같다. 감정이 조금만 휘청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툭 얹히기만 해도 손쉽게 기울어지는 게 사람이고 마음이니까. 끊임없이 기울어지는 시소 위에서 가장 차분하게 머물기 어려운 자리가 중앙일 테니까. 가장 안정적인 자리가 가장 어렵다는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어서, 여러모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이란 행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그런 상념을 스쳐 보낸다.


차분한 마음이 되려고 시소의 중심을 찾아다니는 종종걸음들을 잘 기억하고 싶다. 현실에 지칠 때는 틈을 내 좋아하는 책을 펼치고, 불안이 밀려오면 지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열심히 외친다.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 지치면 혼자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서고, 홀로 쓰는 외로움이 두려우면 내 글이 가진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내하며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러니까 지금 도래한 작은 평온을 위해 내 마음이 얼마나 바빴는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을 반복했는지 잘 기억하고 싶다.


따가워. 손등에 햇빛 알레르기가 울긋불긋 올라왔다. 겉옷 소매를 팔에 끼우고 시집을 다시 펼친다. 무릎에는 온기를 등 뒤로는 한기를 맞으며 문장에 시선을 보낸다. 햇빛을 반사하는 하얀 책장이 너무 환해서 눈이 시리다.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게 또 좋다고 생각한다. 열렬한 따스함… 마음속으로 웅얼거리는데 갑자기 건너편 호수 분수대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이어폰을 빼고 잠시 물소리를 듣는다. 미소 짓는다. 오롯하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언제든 다시 시작될 불안한 마음들을 떠올린다. 종종걸음. 그 종종걸음을 위해 오롯이 쉰다. 지금. 마음과 시소마저 잊고 가만히 부유한다.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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