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1년 앞두고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20키로가 훌쩍 넘는 캐리어 두 개에 미어터질 것 같은 배낭을 메고 가족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씩씩한 척은 다 해놓고 게이트 앞에서 엄마가 앞주머니에 꽂아둔 도톰한 편지를 읽으면서 사연 있는 사람마냥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살다 살다 첫 자취생활을 타국에서 할 줄이야. 내가 머물었던 도시는 프랑스인들이 여름 바캉스 때나 찾는 작고 한적한 항구도시였다. 도시 이름을 딴 대학교가 떡하니 있었지만, 젊은 학생만큼이나 어르신도 많았던 소박한 도시였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잔잔하고, 평화롭고, 무료했다. 그렇게 건조하게 그저 살다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주변 지인들이 죄다 소매치기를 당한 씁쓸한 경험을 갖고 있는 반면, 난 그들의 소맷자락도 본 적이 없었고, 거리를 걸을 때마다 아시아인들에게 시비를 거는 서양인들을 만난 적도 딱히 없었다.
안락한 숙소, 유학생을 존중하는 교수와 학생들, 평화로운 동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지만 난 이곳에서 쉬이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말도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문화도 다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라서 동양인도 얼마 없었기에 이따금 버스를 타거나 광장을 나가면 몇몇 현지인으로부터 진득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말이 좋아 교환학생이지, 다른 행성에서 온 것과 다름없는 기분이었다. 그렇다할 오락거리가 없는 동네였기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딱히 할 일이 없어 주변을 산책하거나 방에 틀어박혀있거나 했다.
그 날은 10월의 첫 번째 토요일이었다. 내가 머물던 도시는 매달 첫째 주 주말은 버스를 무료로 운행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마트보다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대형마트는 고기 종류도 다양하고, 식재료를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었기에 난 첫째 주 주말만 되면 장바구니를 들고 버스에 몸을 싣고는 했다. 여느 때처럼 자주 쓰는 양파나 파 따위를 진작 담아두고, 그 날은 애호박과 가지를 보면서 어느 것을 사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 옆에서 감자를 담고 있던 무슈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도 역시 애호박을 집으려는 건가 싶어 한걸음 옮겨주었다. 그때 그가 길고 윤기 나는 애호박을 내 쪽으로 건네면서 말을 걸었다.
-이게 좋아 보이네.
처음엔 내게 주는 건 줄 모르고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러네요, 길쭉하고...좋아 보이는데요?
그분은 받으라는 듯, 한 번 더 내 쪽으로 애호박을 흔들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이곳에는 공부를 하러 왔나?
-네, 교환학생이에요.
-젊은 친구가 노인들 사이에서 장 보는 게 뭔가 새롭네. 요리도 하나?
-네, 직접 해서 먹어요.
-애호박으로 뭘 만들 생각이니? 프랑스 요리 해본 적 있어?
사실은 달걀 물 입혀서 전이나 부쳐 먹을까 싶어서 고른 것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내 프랑스어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뭔가 무슈의 기대를 부응하고 싶었다.
-라따뚜이나 해볼까싶어요. (실제로 프랑스인들은 라따뚜이를 자주 먹는 편이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가지랑 애호박을 두고 서 있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적당히 가벼운 대화 끝에 그분은 즐거운 저녁식사가 되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헤어졌다.
서툰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느라 상당히 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꽤 들떠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사는 어르신들이 그러듯 프랑스에서 사는 마담과 무슈도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을 참 좋아했다. 설령 그게 프랑스어를 더듬더듬하는 유학생일 지라도 말이다. 반년이 지나니 기차역 맞은편에 있는 빵집 아저씨와 친해졌고, 광장으로 가는 길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노년의 마담과 20분가량 수다도 떨었다. 학교 친구들과 함께 가본 아일리쉬 펍에서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을 둔 신사 분으로부터 맥주 한 잔을 받기도 했다.
이방인이라 정을 붙이지 못한 줄 알았는데, 이방인이기에 얻어가는 것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툭툭 걸어오는 일상의 대화들. 그 모든 것이 내게 이방인의 삶이 주는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타국에서의 일상은 다를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은 어디서든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애호박 하나 때문에 나눈 대화로 냉소적이었던 마음이 풀어진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들과 나눈 대화에서 난 이방인이 아닌 프랑스의 한 학생이었기에 비로소 내가 이곳에서 자연히 머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 낯설고도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