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에 묘한 힘듦을 느끼고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시간. 근 한 달 아니 몇 년간은 따뜻하게 행복하고 든든할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타인의 성공에 이리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배 아픈 축하가 아닌, 든든한 축하 또한 처음이었다.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은 필자에게 이런 의미다. 그간 느낄 수 없던 진정한 축하와 든든한 롤모델이 생겼다는, 그런 새로운 용기의 의미이다. 글의 창작과 공연의 창작. 창작이라는 분야를 같이 향유하고 있는 필자에게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용기 낼 수 있는 힘이며, 이유가 된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처음 한 일은 학창 시절 같이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친구들과의 연락이었다. 다들 흥분해 있었고 몇 분 정도 그렇게 환희를 표현하다 과거 우리의 감상평을 다시금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당시에 우리는 이 책을 굉장히 기분 나쁜 책으로 이야기했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들의 향연과,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마치 내 피가 차갑게 식어 발 끝이 저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과거의 우리를 기억해 냈다. 필자는 급식 먹기 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계속 읽다간 급식을 못 먹을 것 같다며 밥 먹고 다시 읽겠다고 한 기억도 있다.
우리가 한강 작가의 책을 기분 나쁜 책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 당시 그 기분을 말할 수 있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그 기분을 어떠한 단어로 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외면해 오던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에 모든 걸 다 알고 있단 오만을 가지고 있던 내가 하염없이 작아지는 그런 기분. 그런 기분이 우리에겐 기분 나쁜 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것이다.
교과서로만 배웠고, 그마저도 시험기간에만 급히 외우고 까먹었던 그 사실들을 직면했던 순간은 이제 영원히 기억될 것이고, 역사는 잊히지 않을 것이며 전 세계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겐 명예롭고, 누군가에겐 부끄러울 역사가 전 세계에 기억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 같다. 더 이상 과거의 아픔이 잊혀 가는 아픔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하여 반복을 멈추는 아픔이 된 것 같아 감사하다.
"어디서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우리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야."라는 글이 책에서 나온다. 책을 읽던 학창 시절에는 해당 글을 읽으며 끝없는 무기력함을 맛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의 이름을 대지는 못할 수 있지만, 적어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한강작가의 수상이 감사해진다.
‘노벨상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보다 감사를 먼저 그리고 더 크게 전달하고 싶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용기가 되어주는지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주실 분이라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확실하고 싶어 이렇게 한 번 더 말한다.
모두가 외면하는 사실을 직면하고 글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과, 그 기록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후자인 사람들이 만들어 갈 또 다른 기록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