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ADHD - 원래 대부분의 현실은 당황스운건가봐요 #1
-
ADHD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만 2N살, 성인이 된지 N년이나 지난 후에 말이다.
생각해보면 의심할 수 있는 여지는 수도 없이 많았다.
툭 하면 물건을 잃어버려서 덤벙거리지 말라고 꾸중을 들었음에도 내 손에 간직되는 것보다 도로 위로 떨어져 잃어버리는 물건들이 많았다. 어느 날은 가방을 잃어버려 하루종일 찾아 헤맨 적도 있고, 또 어느 날은 내가 분명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에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지갑을 1년 동안 12번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술자리 안주로 종종 회자된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갑과 카드를 찾아가라'는 내용과 함께 내 이름이 수 번이나 박제되어 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말이 정말 많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말이 많았다. 근 15년만에 보는 초등학교 선생님은 감동의 재회 후 당시의 나를 회상하며 아련한 눈빛으로 '너는 정말 말이 과하게 많았지'라는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덕분에 '너는 참 밝은 아이었지', '너는 정말 말을 잘 듣는 아이었지' 등의 말을 기대했던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말하고 싶어 머릿 속을 꽉 채우는 내용을 도저히 입이 따라가지 못해 툭하면 말이 빨라졌다. 내가 아무리 천천히 말을 해도 누군가는 말이 너무 빠르다고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고, '이것보다 더 느리게 하라고?'라는 황당함이 마음 속을 꽉 채울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내가 거북이처럼 말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던 와중 '너처럼 말이 빠른 애는 처음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흥분하면 말을 더듬었으며, 주장하고 싶은 바가 너무 많아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입술을 달싹였다.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느냐'는 소리는 귀에 피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특히 성인이 되고 첫 알바를 시작했을 때, 유독 그날따라 차분하고 침착하게 일을 한 것 같아 홀로 뿌듯해하고 있던 나에게 알바 점장님께서 '제발 천천히 침착하게 하라, 왜 이렇게 산만하냐'고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직도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나의 뿌듯함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흐물흐물 해졌던 순간이었다.
무언가에 몰입하면 깊게 빠져 '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그것만을 붙들고 있었고, 그 반대로 성에 차지 않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기 싫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내 성적은 1등급과 7등급을 고작 한 학기만에 오고 간 적도 있다. 그 과목에 흥미가 없으면 책장을 펼치지도 않지만, 한 번 '해야겠다' 마음 먹으며 그 과목에 꽂히면 고작 한두 달만에 1등급을 기어코 받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때로는 6개월동안 18키로를 빼기도 하고, 주 6일동안 술자리에 나가며 술독에 빠져 살기도 하고, 하루 12시간동안 게임만 하기도 했다.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해야 직성에 풀렸고, 그렇게 한 번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는 그것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렸다.
항상 말도 안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하루에 20시간 동안 일만 했던 적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나'에 취해서 잠도 자지 않은 채 일만 하고, 마침 휴식시간이 생기면 기뻐하기 보다는 불안해하며 그때 할 일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런 나 스스로를 보며 이렇게나 바쁘고 열심히 사는 나야말로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집중할 생각 자체를 안했다. 친한 친구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나는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외웠다. 아직도 나는 내가 아끼는, 자주 만나는 대학 동생이 무슨 학과를 다니고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 이상 말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길어지니 이만 줄이겠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모든 것이 ADHD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ADHD일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ADHD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마음 속으로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ADHD의 증상들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게으름'과 너무도 유사하다. 시간 약속을 못지키고,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툭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꼼지락 거리고, 정리 정돈을 잘 안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말을 직설적으로 하며, 자기중심 위주의 사고를 한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상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오직 'ADHD이기 때문인가봐'라는 불확실한 (의사로부터 진단 받지도 않은) 말로 도망치려고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하게 다가왔다.
특히나 나는 '글러먹음'과 '나약함'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한다면 그것은 내가 글러먹었기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를 혐오할 때도 내가 글러먹고 나약해서임을 강조하며 혐오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스스로를 ADHD라고 의심한다면, 안그래도 글러먹고 나약한 내가 스스로에게 도피처까지 제공하려고 하는, 나약함과 글러먹음의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런 끔찍한 인간이 내가 될 수는 없었다.
거기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기에 내가 ADHD가 아닌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나는 나름의 좋은 대학을 다녔고, 그림이라는 집중력을 요하는 취미를 아주 오랜 시간 가져왔다. 다시 말해 어느정도 공부를 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으며, 좋아하는 것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 어느정도의 성과를 냈다.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나의 이력서에 나열되어있는데, 만약 내가 ADHD라면 이게 가능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즉 나에게 ADHD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고, 모든 ADHD 증상들은 그저 '나의 글러먹음과 나약함과 그로 인한 우울증' 때문이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ADHD임을 의심할 수 있는 순간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가 ADHD를 의심하게 된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몇 달 전, 나는 '꼼꼼함'을 요하는 업무를 하며 약 두 달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수를 저질렀다. 정말,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60일동안 내내 하루에 십 수번씩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
스스로가 꼼꼼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업무를 하며 실수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전까지도 나는 꼼꼼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실수를 했고, 그 때마다 '앗차, 귀여운 내가 귀여운 실수를 해버렸다'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갔다.
팀원들과 함께한 덕분에 나의 실수로 인하여 내 업무에 지장이 온 적이 없었다. 팀원들이 '여기 사소한 실수했어'라고 말하면 나는 바로 수정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했을까봐 불안한 것은 팀원들에게 교차검증을 요청하여 실수를 없애고 확실하게 마무리 지었다.
또한 꼼꼼하지 못한 만큼 사람들 앞에서 서서 발표를 하는 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일,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서 더욱 힘을 내었다. 나는 말을 잘하고, 사람을 잘 대하고, 아이디어 내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선호하는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하니 나의 '꼼꼼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실수에 대하여 진지하게 문제 삼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렇게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조금 꼼꼼하지 못하고 덤벙거리지만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 것 뿐이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나 스스로를 정의 내리게 되었다. 아주 해맑게.
하지만 홀로 일을 하게 되며 내 실수를 짚어줄 사람이 없어지자 팀원이라는 옷으로 덮여있었던 나의 속살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인과 문서 작업이었는데, (여담으로, 숫자 관련 업무는 진즉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학창시절부터 멀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스스로를 수십 번이나 강조하고 질책하며 몰아붙여도 숫자와 글자의 나열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꼼꼼하지 못하여 발생되는 동일한 실수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 모니터를 바라보아도 내 초점은 금시에 흐려졌고 결국 나도 모르게 문장을 대충 읽고 넘기게 되었다.
이미 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방황했던 때였다. 업무까지 못하면 정말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였기에 '잘 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머릿 속을 지배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실수는 쌓여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던 어느 날 밤, 중요한 물건까지 잃어버려 정신 없이 전화를 돌렸던 나는 나의 실수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잠에 들기 직전 베개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그리고 마치 짐승과도 같은 내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 '이건 병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
만성적인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기존에 다니고 있었던 병원의 선생님께서는 내가 'ADHD인 것 같다'는 말을 하자 '그것이 ADHD 때문이 아니라 현재 여러 방면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라 그것이 영향이 갔을 수도 있다. 약을 복용하며 경과를 지켜본 뒤 다시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나는 약을 먹었다. 당연히 실수가 잦았던 업무에서는 잘렸기에 내 실수를 마주할 일이 적어진 상태로 약까지 꾸준히 복용하자 정신 건강은 다시 예전 만큼만 아파졌다. 그러나 내가 ADHD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도저히 나를 떠나지 않았고, '거액의 비용이 들 수도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걱정의 어투에도 나는 기어코 ADHD 검사를 하겠다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로부터 2주 뒤, 그러니까 2024년 10월 21일 오전, 나는 병원에서 ADHD 검사를 시행했다.
[김푸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