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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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있음에도 에로틱한 우정을 즐기며 가벼움을 따르는 한 남자.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한 여자와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떠나는 한 여자. 

 

그리고 여자가 떠난 뒤에도 그 흔적을 좇는 남자. 

 

네 명의 등장인물들은 존재의 가벼움 속에 몸을 맡기기도 그곳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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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이유


 

제목에서도, 작품이 시작할 때도, 그리고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은 바로 존재의 가벼움이다. 존재의 가벼움을 대하는 태도는 작 중 인물마다 다르더라도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이 진리만은 변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 기반이 되는 것이다.

 

 

Einmal ist keinmal. 한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존재가 가벼워진 근본적인 이유는 인생이 단 한번 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순간들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이 세상에 어떠한 무게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면 사라져버린 모래사장의 글씨들처럼. 무엇을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곧 쓰지 않은 글씨가 될 것이니까.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산다는 것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그렇기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삶에서 우리는 굳이 책임을 만들어서 떠안을 필요가 없다. 그것이 바로 가벼움을 따르는 남자, 토마시의 입장이다.

 

 

 

#2. 가벼움에 무게를 얹는 것은


 

하지만 그것으로 정말 괜찮은가. 곧 사라져버릴 인생은 의미가 없으니 그저 가벼이 보내버리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누군가의 영혼은 사라져버릴 시간에도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 다른 이의 목소리가 육체 속에 갇힌 영혼을 갑판으로 불러내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각 등장인물들은 날아갈 것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붙들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혹은 그 기류에 편승한 채 붙들려고 노력하지조차 않는다.

 

토마시만큼이나 가벼움을 추종하던 사비나의 경우는 사실 전자에 가깝다. 끊임없이 배반하고, 그 배반을 또 배반하던 사비나는 불확실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가끔 밀려오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눌려 그녀는 허덕인다. 믿지도 않는 키치를 믿는 척 자신을 속여보지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는 나약한 한 줌 키치로는 도통 붙들리지를 않는다.


그에 반해 토마시는 책임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오직 자유의지. 토마시가 생각하는 존재의 가벼움의 돌파구는 자유의지이다. 어차피 붙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가벼운 삶이라면 어떠한 책임에도 메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는 삶. 그렇기에 토마시가 선택한 테라자는 다른 모든 무거움의 피안에 있는, 그의 존재가 떠올라 사라지기 전 붙잡아 주는 단 하나의 말뚝이다.

 

테라자는 이러한 토마시가 자신의 존재의 가벼움을 붙잡아 줄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약하고 또 구시대적이다. 가벼움에 또 다른 가벼운을 더하면 무거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영혼이여. 그렇다면 베토벤의 무거움이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책임같은 개념들은 존재의 가벼움을 극복하기 위해 영혼이 고안해 낸 방법일 것이다.

 

 

 

#3.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그렇다면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위의 질문으로 시작했던 책은 끝끝내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되는 의문이 생긴다. 묵직함은 진정 아름답고, 가벼움은 무책임할까?

 

 

Einmal ist keinmal. 한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존재의 가벼움이 역사의 가벼움으로 확장되며 의문은 고조된다. 역사에서 같은 상황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의 어느 누가 정당한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든, 다른 나라의 어느 누가 부적절한 이유로 시위를 하고 있든 그저 그렇게 지나간다.

 

각자의 정의라는 것은 각자의 가벼움에 무게추를 다는 행위이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기준이랄 것이 없다. 역사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 시대의 키치는 변하는 법이다. 그 시대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끔찍한 낙관주의의 폭력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역사는 돌아오지 않되 변주되어 반복된다. 무거움의 추종자들이 근거없는 낙관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가벼움을 추종하는 자들은 과도한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존재는, 역사는, 그 방향이 항상 같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권리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부터 법률에 인권이 명시되기까지. 보편타당한 도덕이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의되던 그 수많은 시간들.

 

날아갈 것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잠시라도 붙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다면, 그 모든 가능성들을 무시하고 가벼움의 아름다움에 마냥 도취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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