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들을 핑계로 한참 동안 책과 멀어졌다. 책은 읽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읽는 것이라는 신조를 잃어버리던 중, 도서관에서 김영하 작가님의 강의를 들어 볼 기회가 생겼다.
강연의 주제는 ‘왜 여전히 책을 읽는가’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바로 ‘읽지도 않는 책을 사는 이유’였다. 새 책이 나오거나 베스트셀러에 어떤 책이 오르거나, 누가 추천이라도 하면 참지 않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가끔 서점에 들르면 빈손으로 오지 않고 책 한 권이라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는 이런 습관들.
이들이 반복되다 보니 책은 늘지만, 읽는 속도는 늘 생각을 하질 않는다. 꾸준히 읽어도 사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데, 심지어는 읽히지 않아 속도가 더욱 더뎌지기만 한다. 그렇게 책은 점점 쌓여만 간다. 우리는 왜 자꾸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사는 걸까?
우리는 책을 살 때, 언젠가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책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부푼 기대를 안고 산 책은 얼마 안 가서 지루함만을 안겨주고, 다시 자연스레 책과 멀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독서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책을 구매하는 이 무한의 굴레에 빠져버린다. 이런 걸 두고 ‘지적 허영’이라고 한다는 것을 들었다.
책을 읽던 읽지 않던 자신의 부족, 갈증을 독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엄청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책은 읽을 때만 비로소 가치가 생기지도 않는다. 강의 내용에 따르면 책은 ‘특별한 재화’로 여겨진다고 들었다. 집에 꽂아두면 어느새 눈에 들어오고, 읽히지 못하고 꽂혀 있는 책을 보면 ‘언제 다 읽지?’ 등의 지적 겸손 상태로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오늘같이 무엇인가 소재가 필요할 때, 책의 제목은 큰 영감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거에 비해서, 책은 우리 삶에 참 효용적인 자극을 제공한다. 책 자체의 재화 적효능과 구매한다는 행위의 원인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게 된 이 강의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한강 작가의 책만 엄청나게 팔리게 된 상황이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벨상이라는 세계적인 상을 우리나라의 언어로 적힌 소설이 수상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며,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인정받은 한국어 소설이라니.. 평소 책과 멀어졌던 사람 역시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책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구미가 당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보면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멀어졌던 책과 조금씩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계기로 자신의 독서취향을 발견할 수도, 꿋꿋하게 완독하므로 자신과는 결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빠져볼 수 있는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지적 허영에 빠져 있다고, 과시적 독서라고 욕할 수 있어도 스마트폰 같은 것들에 빼앗긴 책과의 시간을 조금은 찾을 수 있게 되는 계기는 아닐까?
방 안 책꽂이에 빼곡히 채워진 미처 완독하지 못한 책들의 냄새를 맡으며, 그리고 한국어로 적힌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탄하며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