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이번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몰라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글 입력 2024.11.0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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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좋아서


 

그날은 시간대가 맞는 기차편이 없어 아침 버스를 타야 했다. 해운대까지 버스로 5시간. 꼭두새벽부터 캐리어를 끌고 나서는 길에도 실감이 잘 나질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일명 '부국제'를 간다. 그것도 혼자. 친구들 없이 도미토리를 이용하는 것도, 이렇게 긴 시간을 여행도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써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처음이 이렇게나 많구나. 수도 없이 몸을 실어 본 고속버스지만 새삼 감회가 남달랐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아침으로 싸들고 나온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고 있는데, 고속도로 한가운데 내가 있는 상황이 약간 우습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 엄청 진심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먼 길을 나서게 된 걸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부산 정도는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지역에 살 땐 정작 영화제에 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동하는 데만 꼬박 반나절을 투자하고, 따로 숙소를 잡고, 아무튼 온갖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나서야 이곳을 찾게 되다니.

 

아무튼 그렇게 붕뜬 마음과 함께 센텀시티 역에 내려 처음으로 영화의 전당을 향했다. 나와 비슷하게 캐리어를 드르륵 끌고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을 보니 묘한 동질감이 들면서도, 이렇게나 영화를 사랑하는 온갖 사람들 틈에 내가 껴 있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낯선 곳을 마주하고 있을 때의 긴장과 설렘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어설픈 티가 나면 안 될 것 같았다. 괜히 고개가 빳빳해졌다.

 

그러니까, 어설프게 굴기엔 너무 많은 마음들이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짐을 맡길 틈도 없는 사람들이 상영관 앞에 옹기종기 쌓아 둔 가방 더미, 상영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분주하게 자신의 작품을 찾아 줄을 서는 광경,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의 침대에 놓여 있던 영화제 팜플렛과 굿즈 티셔츠. 인파, 소음, 물건들... 그 모든 것에 섞여 있던 '무언가를 애호하는 마음'.


조금만 지하철을 타고 나가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지만, 그걸 뒤로 하고 나는 컴컴한 극장에 종일을 틀어박혀 있었다. 길게 휴일을 만들 수도 없는 처지라 징검다리 연휴 동안 억지로 만들어낸 시간. 그 귀중한 시간 동안 바다도 못 보고, 생각보다 더 타이트한 관람 일정 때문에 부산의 온갖 진미를 즐기기는커녕 내내 빵이나 씹었는데도 좋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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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위의 모든 감상은 약간의 핑계이기도 하다. 좋았던 영화나 행사장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싶은데, 촉박한 일정 탓에 축제의 모든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센텀시티 인근의 CGV와 롯데시네마, 영화의 전당 사이를 하루종일 뛰어다니며 만 보를 훨씬 넘게 걸었는데 부산에 머무르는 동안 본 영화는 총 3편(나처럼 처음으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꼭 넉넉잡아 천천히 둘러보는 것을 권한다. 센텀시티 부근의 영화의 전당, 남포 부근의 비프 광장으로 행사장이 양분되어 있어 모두 둘러보려면 최소한 3일 정도의 일정은 필요해 보였다)정도였다. 거기에 야외 무대 인사와 야외 토크 조금.

 

그런 내 말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감상의 진정성으로라도 짦은 체류 시간을 상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약간의 뻔뻔함을 빌어서라도, 꼭 소개하고픈 영화 한 편을 만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긴 서두를 던졌다.


비록 표본은 적지만,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고르고 또 골라 세운 관람 계획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밀도 있게 내 시간을 채워준 작품 한 편을 꺼내볼까 한다. 바로, 카자흐스탄 출신 감독 자카 압드라흐마노바의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다.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


 

모스크바에서 미용일을 하는 아이코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아빠의 부고 소식. 하지만 아이코의 반응은 미묘하다. 어딘가 부정적인 감정을 터트리지만, 그건 우리가 부모님의 죽음을 접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으레 예상하는 슬픔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그래, 아이코의 표정은 슬픔보단 분노에 가까워 보였다.

 

이내 아이코는 "나는 히어로다."를 거듭 외치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히어로. 무슨 일이든 이겨내고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은 존재. 갑작스러운 부고에 아이코가 몇 번이고 그 존재를 불러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어딘가 어색한 호출에 대한 답은 바로 아이코가 아빠와 이루고 있는 복잡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아이코는 아빠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그와 절연한 채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였다. 그 사정 한 줄로 단번에 많은 것이 이해된다. 어린 아이코에게 절대적인 존재였을 아빠. 그런 아빠의 폭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 견뎌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겨내기 위해 아이코는 가상의 히어로를 몇 번이고 불러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웅이야, 나는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어....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자란 아이코는 집을 떠나왔지만 과거의 기억은 쉽게 옅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따금 살아나기 때문이다. 여러 형태로 재생되는 기억이 아이코에게서는 어떤 방식이었는지, 영화를 통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든, 깊은 상처를 준 기억은 이후의 삶에도 참 질기게 따라붙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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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이코에게 아빠의 부고는 그 질긴 기억들의 트리거였을 것이다. 이제야 그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아빠의 존재감으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듯한 기분. 나름대로 자리잡은 자신의 일상에 원치 않던 균열이 생기고, 아직도 그런 트리거에 깨질 부분이 남아있다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자책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렇게 질기게 따라붙는 건 기억만이 아니다. 혈연. 천륜. 하늘이 이어준 것이라는 말처럼 내가 거스를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맺어진 인연. 그 불가역적인 인연은 마음처럼 쉽게 끊기지가 않는다. 한 톨의 기억, 한 톨의 기대가 그 증오와 함께 마음 한편에 계속 살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원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다시는 소식을 듣고 싶지 않을 만큼 증오스럽다가도, 그 증오스러운 존재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양가적인 마음이 아이에게는 공존한다.

 

아주 가끔 주어졌던 부모의 애정은 평소의 폭력과 대비되는 만큼 그 파급력이 크다. 아이코가 어린 시절 아빠에게 선물받은 곰인형 하나를 어른이 되기까지 간직하고 있던 것처럼. 그리고 충족되지 못한 마음의 어느 부분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아이인 채로 남아있다. 결국 장례식장을 찾은 아이코가 이후 보이는 행적에서는 그런 상처들이 고스란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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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심정으로 고향을 찾은 아이코. 그곳에서 아빠가 새롭게 꾸린 가정의 일원들을 마주친다. 아빠의 두 번째 부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동생 코코. 앳된 소녀 티가 나는 동생은 좋아하는 인형을 방에 가득 채워줄 만큼 다정했던 아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평범한' 슬픔을 내비친다.

 

그리고 그런 코코의 슬픔이 아이코의 눈에는 삐딱하게만 보인다. 훌쩍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의 인형을 마구 흩뜨리고, 한껏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아이코. 그런 아이코의 모습은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어른의 모습이라기엔 너무나 철없는 어린 아이 같다.

 

내게는 그렇게나 증오스러웠던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나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그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악했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자신이 겨우 품고 사는 인형 하나, 끝내 붙잡고 놓지 못한 희망과 애정이 이복 동생의 방에는 보란 듯 널려있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 내가 느낄 수 없는 슬픔, 네가 느낄 수 없는 증오. 그런 감정의 불합치가 아이코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순식간에 그녀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우리를 발견하다


 

모든 것이 상처로 다가오는 와중, 카자흐스탄 고유의 풍습으로 인해 아이코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고향에 머무르게 된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이복동생과는 물론, 자신이 당하던 학대를 방관했던 다른 가족들과도 자꾸 삐걱거리는 아이코. 그런 아이코의 냉담함은 주변인들을 찌르지만, 사실 가장 상처입는 건 아이코 자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아이코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젖힌 건 의외의 인물. 바로 아빠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한없이 어색할 수 있는 관계지만 그녀는 아이코의 표면적인 태도를 그저 비난하기보단, 그런 뾰족함 속 감춰진 상처를 알아본다. "너는 슈퍼 히어로가 아닌, 불쌍하고 어리석은 늑대"라는 부인의 말을 들은 아이코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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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알아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복잡미묘한 상황. 이처럼 아이코를 둘러싼 모든 것은 양가적이다. 더없이 증오했지만, 그 증오스런 존재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이코. 존재 그 자체로 아이코의 상처를 들쑤시면서도, 유일하게 아이코의 마음을 알아보기도 한 사람은 다름아닌 아빠의 두 번째 가족.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아이코의 상처만을 비추거나, 아이코와 코코의 상황을 그저 대비시키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입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후반부 코코의 가출이다. 혼란스러운 집안 상황과 계속되는 아이코와의 갈등 속, 어린 마음에 집을 나가버린 코코. 그런 코코를 발벗고 나서 찾아낸 건 다름아닌 아이코였던 것이다.

 

이렇게 후반부의 극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인물들 간의 갈등이 봉합되는 듯하지만, 결국 아이코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길을 나서는 아이코를 배웅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처음 아이코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 느낀 불편한 분위기와는 분명 대비된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것은 '이별'의 장면이다. 화합이나 결합이 아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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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이 작품에서 느낀 메시지는 상처 그 자체보다는 선명한 상처 이후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이토록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과 관계들 가운데서, 결국은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는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내가 본 일면이 얼마나 강력했든 그것이 한 사람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의 연약함이 동시에 남을 상처입히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내가 품은 상처는 나의 어둠인 동시에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 모든 양면성을 결국 인정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이야기. 삶의 연속은 꼭 완전한 회복을 전제하거나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이런 애매모호함이 인류 공통의 감각이라는 걸 확인하는 일은, 그 어떤 위로보다도 강력한 위안이 되기도 했다. 온전한 용서도, 온전한 무뎌짐도, 온전한 극복도 없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나선형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는 우리의 모습. 먼 이국의 영화에서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결국 다 똑같구나, 하며 연결감을 느끼는 일. 그 느낌이 더 없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과연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런 모습과 그런 경험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다큐멘터리를 주력으로 하던 카자흐스탄 감독의 첫 극 작품. 언제 국내에 개봉될지도 모르고, 만약 상영이 된다고 해도 쉽게 도전할 마음을 먹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은 넘쳐나고, 쓸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니, 익숙하고 편한 선택지들에만 자꾸 눈이 가게 되니까.

 

그래서일까. 돌아가는 길에는 자꾸 어떤 생각들을 곱씹게 되었다. 내가 조금은 무리를 해서까지 현장을 찾은 건, 이 영화 한 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미지의 상영작들, 어쩌면 앞으로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는 작품들의 더미에서 나만의 이야기 하나를 건져가는 일. 그것만으로도 이 축제는 더없이 즐거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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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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