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지중해변의 두 오페라 지존

글 입력 2014.10.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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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지중해변의 두 오페라 지존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2006년 7월 6일 목요일 이른 아침, 나는 액상 프로방스로 향하는 테제베를 타고 가다 그만 종착역인 마르세유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그 해의 액상 프로방스 음악제를 찾아 떠난 나의 여정은 마르세유라는 암초에 걸려 자칫하면 좌초될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다행히 마르세유에서 잡아탄 택시 덕에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공연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참으로 아슬아슬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마르세유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으니 나의 뜻하지 않은 마르세유행은 이제 와서 보면 행운으로 여겨진다. 잠시 틈을 내 둘러본 마르세유 시가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들은 야자수들로 흥건했던 거리 풍경과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이었다. 비록 그 곳의 오페라극장을 둘러만 보고 그 안에서 오페라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섯 개의 원주가 굳건히 심어져 있지만 장대하다고는 볼 수 없는 극장 정면의 위용은 오페라극장으로서 알맞은 스케일로 다가왔다. 극장 내부는 외부보다 훨씬 아늑한 화려함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85만 인구의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오페라극장으로 손색없는 고풍스런 무대커튼막과 4층까지 켜켜이 올라가 있는 객석은 이방인의 마음에 뜨거운 이국취미를 불러일으켰다.



- 프랑스 최대 항구도시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

    마르세유는 우리에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5-0 참패의 수모를 안겨준 잔인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그 곳의 벨로드롬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게 5-0의 대패를 당해 사령탑 차범근이 월드컵 도중 경질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우리에겐 이처럼 잔인한 도시 마르세유는 그러나 남프랑스 최대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를 품고 있는 황홀한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정면2.jpg▲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정면 - ⓒ Opera de Marseille


    마르세유에 처음 오페라극장이 문을 연 것은 1787년 10월 31일로 지금으로부터 227년 전의 일이다. 당시 프로방스 지역의 총통인 보보 사령관이 입회한 가운데, 한 무리의 배우들이 공연물을 올린 것이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의 첫걸음이다. 1919년 11월 13일에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아프리카의 여인’ 리허설 도중 발생한 대화재로 극장의 절반 가까이가 전소되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로부터 1년 후인 1920년 11월 16일, 가스통 카스텔이 설계한 새로운 오페라극장 건립안이 확정되어 신(新)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은 1924년 12월 3일 개관하게 된다. 이후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은 지금까지 1823석의 객석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정도 객석수면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오페라극장으로서의 위상을 뽐내기에 충분한 규모인 것이다. 그러나 규모만 있고 내실은 없는 국내 오페라극장들과는 달리,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의 내실 또한 매우 탄탄한 것이다.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내부객석.jpg▲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내부객석 - ⓒ Opera de Marseille


    당장 이번 2014/2015 시즌 프로그램을 일별해 보면, 폰키엘리의 ‘라 지오콘다’로 문을 열어 로시니의 ‘모세와 파라오’, 오베르의 ‘미약’,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소게의 ‘마리안의 변덕’, 푸치니의 ‘토스카’,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베르디의 ‘팔스타프’까지 총 여덟 편의 오페라가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무대를 장식하게 된다. 그 사이 사이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의 리사이틀과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치오피의 협연무대, 베이징 국립 경극단의 ‘흰 뱀의 전설’ 같은 초청무대들이 편성되어 풍성함을 더한다. 상주악단은 로렌스 포스터(1941- )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마르세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오페라를 반주할 당시에는 마르세유 오페라 오케스트라로 불리다가, 관현악 무대를 가질 시에는 마르세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이 악단의 음악감독으로 2012/2013 시즌부터 활약하고 있는 로렌스 포스터는 명조련사로 이름높은 명장이다. 휴스턴 심포니와 몬테 카를로 필, 로잔 체임버, 바르셀로나 심포니 등을 거친 베테랑답게 그가 부임한 이후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은 위상이 이전보다 더욱 격상된 듯한 모양새다. 이런 마르세유를 오페라의 메카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은 오페라가 무엇인지 모르는 문외한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무대커튼막.jpg▲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무대커튼막 - ⓒ Opera de Marseille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커튼막그림.jpg▲ 마르세유 오페라극장 커튼막그림 - ⓒ Opera de Marseille


    프로방스 알프 코트 다쥐르주의 주도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마르세유는 2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남프랑스 코트 다쥐르 일대의 오페라생활을 책임져 왔다. 이렇듯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에 오랫 동안 숨은 곰삭은 오페라의 비경을 만나러 떠날 용의와 용기가 있는 자 누구인가.



- 모나코로 향하는 길목에 숨은 니스의 오페라 명소

    마르세유를 만나고 반년이 흐른, 2007년 1월 14일 일요일, 모나코로 향하던 길목의 니스역에 잠시 내렸다. 모나코행 기차로 갈아타기 전에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지체없이 니스 오페라극장으로 향했다. 반년 전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던 나는 이번에는 비슷한 입지의 니스 오페라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1885년 2월 7일에 개관한 지금의 니스 오페라극장은 코트 다쥐르 해안에 면해 있어 탁월한 입지조건을 자랑하는 전세계 오페라극장의 보물이다. 1083석의 객석수를 갖춘 크지 않은 규모지만, 이 역시 그네들만의 경이로운 내실화전략으로 130년 동안 전세계 각지의 수많은 오페라 애호가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당장 이번 2014/2015 시즌의 문을 연 베르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의 희소성에 탄복할 겨를도 없이, 푸치니의 ‘투란도트’,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로시니 ‘세미라미데’, 알레비의 ‘유대여인’이라는 타이트한 프로그램은 오페라 마니아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더구나 그 앞을 유유자적 흐르는 니스의 바다는 나그네의 시름을 달래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2007년 연초에 대면했던 니스의 겨울바다가 못내 그립다.

니스 오페라극장 정면.jpg▲ 니스 오페라극장 정면 - ⓒ Jaussein


    당시 그 곳 니스의 어느 허름한 레코드가게에서 구입한 장-마르크 코쉬로 지휘 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반, 아르튀르 오네거의 오라토리오 ‘화형대 위의 잔다르크’는 지금도 내가 애청하는 아취 가득한 명반이다. 여배우 뮈리엘 샤니가 읊는 잔다르크의 대사들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황홀하다. 이 음반의 주인공, 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47년에 창단된 후 지금껏 67년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면서 안토니오 데 알메이다와 피에르 데르보 같은 명장들을 자신들의 수장으로 모셨던 지중해의 대표 악단이다. 2010년 9월부터는 니스 출신의 명지휘자 필리프 오갱(1961- )이 음악감독으로 재임 중이다. 오갱은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의 수장으로도 있는 명실상부 니스가 낳은 마에스트로다. 니스 필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는 니스 오페라극장에서의 오페라 반주다. 그 외에도 관현악 연주회를 비중있게 열고 있는데, 이번 시즌은 필리프 오갱 외에 네메 예르비와 제프리 테이트 같은 거장들이 번갈아 지휘봉을 들 예정이다.

크기변환_123니스 오페라극장 객석.jpg▲ 니스 오페라극장 객석 - ⓒ Jaussein

크기변환_123니스 오페라극장 객석2.jpg▲ 니스 오페라극장 객석2 - ⓒ Jaussein


    기존 제국극장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건립된 니스 오페라극장은 1885년 2월 7일 베르디의 ‘아이다’로 개관테이프를 끊었다. 제국극장 시절부터 니스 오페라극장은 수많은 걸작 오페라들을 프랑스 초연한 역사적 장소로도 각인되어 있다. 1873년 베르디 ‘운명의 힘’과 1881년 바그너 ‘로엔그린’, 1895년 차이콥스키 ‘예프게니 오네긴’, 1902년 바그너 ‘라인의 황금’이 모두 이 곳 니스 오페라극장에서 프랑스 초연됐다. 소프라노 레진 크레스팽이나 몽세라 카바예, 테너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메조소프라노 발트라우트 마이어와 안네 소피 폰 오터 같은 명성악가들이 한창 전성기 시절에 니스 오페라극장을 자주 들러 수다한 명연을 일구어냈다. 그만큼 규모는 작지만 수많은 명인들이 이합집산하는 지중해의 오페라요람이 니스 오페라극장인 것이다.

니스 오페라극장 샹들리에.jpg▲ 니스 오페라극장 샹들리에 - ⓒ Jaussein

니스 오페라극장 외관.jpg▲ 니스 오페라극장 외관 - ⓒ Jaussein


    마르세유와 니스. 코트 다쥐르 해변을 병풍삼아 무수한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이 두 도시는 지금도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오페라 지존으로 군림 중이다. 마르세유와 니스로 떠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그 곳 바닷가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마르세유 오페라극장과 니스 오페라극장을 지나치지 말기 바란다. 큰 기대를 품지 않고 방문한 이 두 오페라극장은 이제까지의 당신이 경험 못한 오페라의 신세계를 펼쳐보이며 갖은 희열을 선물해 줄 테니 말이다. 마르세유와 니스에 가면 지중해를 병풍 삼은 삼라만상 속 특별한 오페라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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