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로막힌 사유의 깊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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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발레단의 더블 빌 <한스 판 마넨 X 차진엽>이 공연되었다. 8월 후반부에 있던 창단 공연 <한여름밤의 꿈> 이후로 선보이는 두 번째 작품이다. 해외 안무가 라이선스 작품으로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와 차진엽의 <백조의 잠수>를 30분 가량의 짧은 분량으로 선보였다. <캄머발레>는 전막 발레의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레퍼토리 작품이기에 이번 더블 빌에서는 초연되는 작품인 차진엽의 <백조의 잠수>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차진엽 안무가는 대표작인 <원형하는 몸 : round1.2>을 통해 물과 순환, 그리고 몸이 가진 원형(原形) 에 대한 탐구 주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러한 안무가에게서 이번 <백조의 잠수>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물, 생명이었으며, 태고의 무대에서 수면 아래로 잠수하듯 리타데센도의 순간에 빠져들어 완전히 몰입되는 몸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번 작품 또한 제목인 <백조의 잠수>가 원작 <백조의 호수>를 재구성해 원작의 이전, 이후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기대를 하고 갔지만, 실망감은 밀물처럼 기대를 몰고 돌아왔다.
<백조의 잠수>는 화이트 플로어와 바닥에 까는 특수한 무대장치 때문인지 사전예보와 다르게 먼저 공연되었다. 리타데센도(Ritardscendo)라고 읽히는 이번 작품의 제목은 ‘ritardando’(점점 느리게)의 ‘ritard-’와 ‘decrescendo’(점점 작게)의 ‘-scendo’를 합하여 느림이 갖는 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고자 안무가가 새로이 만든 합성어이다. 마치 클래식 음악 악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큰 변화없이 잔잔히 줄어드는 깊이감을 내포한다.
무대가 암전되고, 무용수 무릎치만큼 보일만큼 올라간 막 뒤로, 위에 매달려있는 유리 조형이 보인다. 유리조형 위로 비춰지는 조명은 마치 수면 아래서 태양빛이 일렁이는 현상을 연출하였으며, 조형이 위로 올라가면서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잠수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흰 망사 의상을 겹대어 입은 무용수는 양말을 신은채로 뒷걸음으로 등장하는데, 웨이브 동작을 통해 몸의 물결을 생성하며 등장한다. 여기서 등장한 무용수는 태초의 생명이자 물 속에서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백조’가 됨을 표상하는 등장인물이기도하다.
하지만 처음 장면에서 손바닥만한 유리 조형을 가지고 깊은 바다속을 표상한 점은 관객들이 공감하기에 역부족이다. 유리조각이 올라감과 함께 음향 소리, 그리고 뒷 배경에서 미디어 아트가 함께 보여지지만 이머시브 음향이라기엔 너무나 소리가 작았고, 뒷 배경은 흰 커튼이 내려와져 있어 흰 효과를 주는 미디어 아트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6월에 재공연되었던 <거의 새로운 춤>(전미숙 안무)에서 선보인 차진엽의 <새롭게 포맷되는, 오래된 춤과 새로운 설정의 공존>에서는 3개의 미디어면이 무대를 채워주고, 직접 물속에 잠수한 모습과 물 속을 촬영한 영상을 함께 보여줌으로서 훨씬 감각적으로,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물 속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무대에서 보여진 장면으로는 깊은 물속의 생명이 탄생하는 장소까지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점이 아쉽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또한 천차만별이다. 안무가의 디렉팅이 물속에서 무겁고 밀도있게 쓰는 움직임이라는 점은 느껴졌지만, 무용수들의 몸과 움직임에서 그러한 질감이 나왔는지는 의문이다. 흰 색 의상을 입고, 천천히 몸의 곡선을 그리며 움직였지만, 너무나 물 속을 표현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일뿐더러 안무가의 디렉팅이 무용수들의 몸에 완전히 습득되어있지 않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대 중반부가 되면 막이 처음과 같이 내려오고, 뒷쪽에 애어 벌룬 형태의 바닥에 까는 미끄럼틀을 설치한다. 파도의 곡선과 그 위를 무용수들이 유연하게 넘나들며 유영하는 모습을 기대한 바이지만, 무대에서 볼품없는 풍선으로 취급되었다. 무용수들은 본 풍선을 가지고 연습한지 몇 안되어 보였으며, 5월달에 있었던 국립발레단의 <인어공주>(존 노이마이어 안무) 무대 연출과 구성에 비하여 매우 현약한 모습이 드러났다. 존 노이마이어도 기존의 고전 동화 <인어공주>의 서사전개를 완전히 바꾸고 안무가만의 색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이를 무대위에서 화려한 무대로 풀어내었지만, 같은 심연의 주제로서 차진엽 안무가의 작품은 다소 평이해보인다.
차진엽 안무가의 서사 전개 상 작품에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물속에서 느끼는 해방감, 자유로움, 그리고 생명의 가치, 자신의 몸에 대한 회고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하지만 본 의도를 충분히 펼치기에 빈약했던 무대 장치, 소품은 무대를 오히려 축소시켰으며 부족한 무용수들의 기량, 음향효과, 원작 <백조의 호수>와 동떨어진듯한 작품 내용은 참신함과 기존의 안무가가 가진 개성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서울시발레단의 더블 빌 <한스 판 마넨 X 차진엽> 중 차진엽의 <백조의 잠수>는 안무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작품에서 실현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또한 현시대에서 ‘컨템포러리’의 용어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8월부터 포부있게 출범한 서울시발레단의 행보가 앞선 두 무대로 보아 걱정되는 바이다.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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