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로막힌 사유의 깊이 [공연]

서울시발레단 더블 빌 <한스 판 마넨 X 차진엽> 중 차진엽 <백조의 잠수>
글 입력 2024.10.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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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발레단의 더블 빌 <한스 판 마넨 X 차진엽>이 공연되었다. 8월 후반부에 있던 창단 공연 <한여름밤의 꿈> 이후로 선보이는 두 번째 작품이다. 해외 안무가 라이선스 작품으로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와 차진엽의 <백조의 잠수>를 30분 가량의 짧은 분량으로 선보였다. <캄머발레>는 전막 발레의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레퍼토리 작품이기에 이번 더블 빌에서는 초연되는 작품인 차진엽의 <백조의 잠수>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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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엽 안무가는 대표작인 <원형하는 몸 : round1.2>을 통해 물과 순환, 그리고 몸이 가진 원형(原形) 에 대한 탐구 주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러한 안무가에게서 이번 <백조의 잠수>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물, 생명이었으며, 태고의 무대에서 수면 아래로 잠수하듯 리타데센도의 순간에 빠져들어 완전히 몰입되는 몸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번 작품 또한 제목인 <백조의 잠수>가 원작 <백조의 호수>를 재구성해 원작의 이전, 이후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기대를 하고 갔지만, 실망감은 밀물처럼 기대를 몰고 돌아왔다.

 

<백조의 잠수>는 화이트 플로어와 바닥에 까는 특수한 무대장치 때문인지 사전예보와 다르게 먼저 공연되었다. 리타데센도(Ritardscendo)라고 읽히는 이번 작품의 제목은 ‘ritardando’(점점 느리게)의 ‘ritard-’와 ‘decrescendo’(점점 작게)의 ‘-scendo’를 합하여 느림이 갖는 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고자 안무가가 새로이 만든 합성어이다. 마치 클래식 음악 악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큰 변화없이 잔잔히 줄어드는 깊이감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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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암전되고, 무용수 무릎치만큼 보일만큼 올라간 막 뒤로, 위에 매달려있는 유리 조형이 보인다. 유리조형 위로 비춰지는 조명은 마치 수면 아래서 태양빛이 일렁이는 현상을 연출하였으며, 조형이 위로 올라가면서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잠수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흰 망사 의상을 겹대어 입은 무용수는 양말을 신은채로 뒷걸음으로 등장하는데, 웨이브 동작을 통해 몸의 물결을 생성하며 등장한다. 여기서 등장한 무용수는 태초의 생명이자 물 속에서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백조’가 됨을 표상하는 등장인물이기도하다.

 

하지만 처음 장면에서 손바닥만한 유리 조형을 가지고 깊은 바다속을 표상한 점은 관객들이 공감하기에 역부족이다. 유리조각이 올라감과 함께 음향 소리, 그리고 뒷 배경에서 미디어 아트가 함께 보여지지만 이머시브 음향이라기엔 너무나 소리가 작았고, 뒷 배경은 흰 커튼이 내려와져 있어 흰 효과를 주는 미디어 아트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6월에 재공연되었던 <거의 새로운 춤>(전미숙 안무)에서 선보인 차진엽의 <새롭게 포맷되는, 오래된 춤과 새로운 설정의 공존>에서는 3개의 미디어면이 무대를 채워주고, 직접 물속에 잠수한 모습과 물 속을 촬영한 영상을 함께 보여줌으로서 훨씬 감각적으로,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물 속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무대에서 보여진 장면으로는 깊은 물속의 생명이 탄생하는 장소까지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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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들의 움직임 또한 천차만별이다. 안무가의 디렉팅이 물속에서 무겁고 밀도있게 쓰는 움직임이라는 점은 느껴졌지만, 무용수들의 몸과 움직임에서 그러한 질감이 나왔는지는 의문이다. 흰 색 의상을 입고, 천천히 몸의 곡선을 그리며 움직였지만, 너무나 물 속을 표현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일뿐더러 안무가의 디렉팅이 무용수들의 몸에 완전히 습득되어있지 않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대 중반부가 되면 막이 처음과 같이 내려오고, 뒷쪽에 애어 벌룬 형태의 바닥에 까는 미끄럼틀을 설치한다. 파도의 곡선과 그 위를 무용수들이 유연하게 넘나들며 유영하는 모습을 기대한 바이지만, 무대에서 볼품없는 풍선으로 취급되었다. 무용수들은 본 풍선을 가지고 연습한지 몇 안되어 보였으며, 5월달에 있었던 국립발레단의 <인어공주>(존 노이마이어 안무) 무대 연출과 구성에 비하여 매우 현약한 모습이 드러났다. 존 노이마이어도 기존의 고전 동화 <인어공주>의 서사전개를 완전히 바꾸고 안무가만의 색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이를 무대위에서 화려한 무대로 풀어내었지만, 같은 심연의 주제로서 차진엽 안무가의 작품은 다소 평이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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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엽 안무가의 서사 전개 상 작품에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물속에서 느끼는 해방감, 자유로움, 그리고 생명의 가치, 자신의 몸에 대한 회고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하지만 본 의도를 충분히 펼치기에 빈약했던 무대 장치, 소품은 무대를 오히려 축소시켰으며 부족한 무용수들의 기량, 음향효과, 원작 <백조의 호수>와 동떨어진듯한 작품 내용은 참신함과 기존의 안무가가 가진 개성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서울시발레단의 더블 빌 <한스 판 마넨 X 차진엽> 중 차진엽의 <백조의 잠수>는 안무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작품에서 실현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또한 현시대에서 ‘컨템포러리’의 용어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8월부터 포부있게 출범한 서울시발레단의 행보가 앞선 두 무대로 보아 걱정되는 바이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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