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살기 위하여 일정한 곳에 마련한 건물이지만, 나에게 집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요즈음 나를 괴롭히던 화두는 집이다. 이전에 <희붓한 시절의 공간>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집이었다. 집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 포근하고 아늑한 쉼터,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공간.
이사를 많이 다닌 우리 가족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집이었다. 보통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 평균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뜻일터. 길고 긴 문장 속에서 숨기고 싶은 말은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많은 집'이라는, 그래서 버젓이 있는 집을 두고 다른 집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다.
나에게 집은 여러 의미로 변했다. 그건 집안의 금전적인 문제를 뜻하기도 했고, 빚을 말미암아 빛을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는데, 우리는 늘 시도에서 그쳤다. 빛 저 너머엔 어둠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눈앞의 빛이 찬란해서 잊고 살았음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괴로운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나를 꿈꾸게 한 집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안녕, 하고 손 인사를 건네는 안온하고 마음이 놓이는 집. 어질러 놓여 있는 무색무취의 향연이 아니라 단단하고 깊게 뿌리내린 그런 취향의 집이 그리웠다.
나는 몸서리칠 때마다 그런 이야기가 있는 타인의 공간 속을 파고 들었다. 가라앉은 감정들은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가 펼쳐 본 이들의 공간은 단지 아기자기하고 예뻐서가 아니라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세계가 어둡고 침침했던 과거에서 벗어났기에 빛이 났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작더라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작은 집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마음이 쉴 곳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게 집이든, 단골 가게든, 근사한 풍경이나 여행지이든 벗어나도 익숙하고 권태로운 '그 집'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있는 집을 그리워해서 틈만 나면 돌아오는 반복을 거듭했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 집'이 그리웠던 건, 추억이 어려서가 아니었다. 문과 문 사이의 작은 공간, 문간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간에는 시골 판타지와 자기만의 방, 원목의 따뜻함과 작은 새소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야만 단단히, 부러운 이들처럼 뿌리내리며 살 수 있었다.
마르고 갈라진 땅에서 나무는 잘 자라지 않는다. 물과 바람이 충분하며 비옥한 토양에서 나무는 하늘만 바라보며 뻗어 나간다. 우리 집, 아니 이제 내 집은 그런 공간이어야만 한다. 집도 상호작용의 공간이니까.
타인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깨닫는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추억, 취향이 담긴 곳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