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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작화로 많은 알티를 탔던 <룩백>의 짧은 클립을 본 적이 있다. 보통 이렇게 알티를 타는 클립이 전부거나 스토리가 없을 확률이 큰데 <룩백>은 러닝타임 내내 이 작화를 유지하면서 스토리까지 탄탄했다.
재학 중인 학교의 교보에 네컷만화를 기고하며 주변에서 만화가를 하라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듣던 후지노는 히키코모리인 쿄모토의 네컷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오기가 생긴 후지노는 친구, 가족들과 멀어지면서도 그림 실력 향상에만 집중하는데, 주변 관계를 망치면서도 그림에만 매진했지만 쿄모토를 따라잡지 못했던 후지노는 만화 그리기를 포기한다. 졸업식 때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쿄모토에게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후지노는 내키지 않아 하지만 쿄모토의 집에 간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 안으로 들어간 후지노는 쿄모토의 방처럼 보이는 곳 앞에서 네컷만화 프레임을 발견하고 만화 그리기를 포기한 이후 처음으로 만화를 그린다. 손에서 놓친 네컷만화는 쿄모토의 방 문틈으로 들어가고 후지노는 도망친다. 방 안에서 네컷만화를 본 쿄모토는 후지노의 만화임을 알아보고 후지노를 쫓아 집 밖으로 나온다. 어눌한 말투로 후지노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자신의 팬심을 드러낸 쿄모토는 입고 있는 옷 등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놀라서 도망쳤을 때와는 달리 쿄모토의 존경심 가득한 말을 들은 후지노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춤추듯이 리듬을 타며 걸어간다. 그림 잘 그린다, 만화가 해도 되겠다는 칭찬만 들어도 들뜨는데 자신의 예전 만화 제목을 읊으며 어떤 점이 좋았다고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만화 그리는 걸 그만둘 수 있을까. 이상한 자세로 방방 뛰며 걸어가는 이 연출은 3D에서 묘사하기 어려운 약간의 오버스러움 때문에 오히려 그런 후지노의 심리를 잘 보여줬다.
이후 둘은 서로의 집에서 함께 만화를 그리고 시내에 놀러 가기도 하는 친구 사이가 되고 단편 만화를 투고하는 만화가가 된다. 단편 만화를 계속 성공시키면서 정식 연재 제의를 받지만 쿄모토는 미술 대학에 진학하고자 제의를 거절한다. 후지노는 계속해서 함께 만화를 그릴 줄 알았던 쿄모토에게 실망하고 쿄모토는 후지노의 욱한 마음에서 나온 말을 듣고 상처를 받고 각자의 길을 간다.
후지노는 어시스트를 쓰면서 <샤크 킥>이라는 만화를 연재하며 성공하지만 자신과 스타일이 잘 맞는 어시스트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PD와 통화를 하면서 켜둔 뉴스에서 쿄모토가 진학한 미술 대학에서 흉기를 든 괴한이 습격하여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속보를 듣는다.
어시스트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후지노가 다시 쿄모토에게 연락하여 당시 모진 말을 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둘이 합을 맞춰서 만화를 그리겠거니 했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될 줄은 몰랐다.
이후 후지노의 반응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더 슬프게 느껴졌다. 소리를 지르면서 오열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을 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승승장구하던 <샤크 킥> 연재도 중단하고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상황으로 만화를 포기하고 가라테를 선택한 후지노가 위기에 처한 쿄모토를 구해준다는 상상까지 한다. 후지노는 쿄모토를 밖으로 불러낸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상상을 하게 되지만 둘이 어렸을 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서로 만나서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될 운명이라는 걸 더 확실히 보여준 것 같았다.
난 이런 결말에 약하다. 주인공이 무너져 내리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덤덤하게 다시 살아가는 결말. 현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복하면서 살아가겠지만 이상하게 미디어에서 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걸 보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평소와 달라진 건 작업실 통유리창에 붙인 쿄모토의 네컷만화뿐, 다시 해가 지고 밤이 될 때까지 본업을 하다가 불을 끄고 나가는 후지노로 끝나는 엔딩 크레딧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서로의 라이벌이자 원동력인 관계를 이렇게 잘 나타낸 작품이 있을까. 친구 사이에도 미묘하게 동등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룩백>은 한쪽이 존경하는 관계로 시작했지만 다른 한쪽을 아래로 보지 않고 한쪽이 부족한 점을 다른 한쪽이 채워주는 관계로 성장한다. 쿄모토가 후지노를 부르는 호칭이 ‘선생님’에서 ‘쨩’으로 바뀔 때, 둘 관계가 완전히 정립된 걸 느낄 수 있었다. <룩백>에는 서로의 가족을 비롯한 제3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고 해봤자 정말 잠깐 나오는 엑스트라 정도. 오직 후지노와 쿄모토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더 와닿았다.
전혀 다른 부류의 인물들이 어떤 공통점을 매개로 만나서 교감하는 이야기는 언제 봐도 좋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 그런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룩백>은 일종의 구원서사라서 그 여운이 더 깊게 갔던 것 같다. 굳이 쿄모토의 엔딩을 그렇게 내야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쿄애니 방화사건 등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비하인드를 듣고 보니 그 설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애니화가 되면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도 있는데 <룩백>은 애니화가 엄청 잘 된 케이스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만약 오역, 작붕 등의 이유로 고민하고 있다면 큰 화면에서 볼 수 있을 때 보러 가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