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예술로 성공하기 위해 사회를 반영하고 이용한 개인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다비드는 18부터 19세기를 살아간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화가이다. 즉 다비드가 경험한 세대는 근대의 국민국가사회는 전세대의 왕조국가사회와 큼직한 차이를 만들었고 격변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다비드는 어떤 차이점을 인식하여 근대를 보여줬는지, 18세기의 아카데미와 다비드의 예술전략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다비드의 유년시절과 함께한 '아카데미'
근대적 의미의 예술은 18세기말 아카데미의 역사화라는 테마와 연결된다. 1770년 전후로 극적 사건에 대한 강조를 통한 주제의 부각은 새로운 역사화의 평가기준이었는데, 아카데미 시절 ‘마스르와 미네르바의 전투’를 주제로 한 다비드의 첫 경연은 내용에 있어서는 드라마틱함이 부족했고 형식적으로는 로코코라는 이전 관습을 따랐다.¹
이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된 낙선 끝에 로마유학으로의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다비드 작품의 특징인 교훈적인 메세지의 전달과 대담하고 단단한 고전적 구성은 아카데미, 로마유학, 살롱전 등의 당대 미술학파의 평가기준이 관계되었음을 보여주지만 로마 유학이후에 다비드가 나타낸 강한 정치적 주제들과 연극적 장치는 그가 갖고 있던 사유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왕실이나 전통 기득권층(귀족, 성직자)에서 독립되어 작가로서의 발언권을 가졌다는 것을 또한 드러낸다.
적선을 받는 벨리사리우스
유학시절 당시에도 고전과 르네상스 예술의 기법들을 배우며 과거의 것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지만 그는 단순한 답습에 멈추지 않고 시대정신을 반영한 그림을 그렸다. 이는 마르몽텔의 1767년 작 『벨리사리우스』를 바탕으로 그린 <적선을 받는 벨리사리우스>(1781)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다비드는 당대에 유행하던 벨리사리우스라는 주제를 다른 화가들의 답습된 고전주의와 달리 연극성이 돋보이는 인물의 표현과 배경이 뒤쪽으로 깊숙이 빠지는 공간감으로 관람객이 더욱 그림에 몰입하여 감정적으로 동요하게끔 유도했다.²
위대한 영웅성과 살롱의 변화
프랑스 대혁명 전후로 다비드는 진보적인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전략적으로 왕정개혁권 인사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호소해야 했다.
루이 14세, 15세의 집권이후 국가의 부父권을 비판하는 ‘위대한 영웅성’이라는 당대 프랑스의 이상적인 관념은 사회에 영향을 주기위한 직접적인 목적으로 제작됐다.
그가 그린 위대한 영웅들은 공동체의 ‘자유, 평등, 우애’라는 근대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관념의 이상을 담은 인물들이었다.³ 프랑스 대혁명 이후엔 살롱전은 큰 변화를 일어나 아카데미 회원 뿐 아니라 프랑스인과 외국인, 특히나 여성에게까지 개방했다.
이로써 다비드는 사회, 대중, 비평가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했으며 파리 살롱 회화에 영향을 끼치는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⁴. 그러니까 예술에서의 성공이란 자연의 미를 나타내는 뛰어난 재능보다는 예술가의 시대 영향력이 우위에 선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비드가 가졌던 작가 정신이란 새롭게 나타난 국민국가사회의 시대정신 반영이 필수적이었음과 동시에 사회를 이용하여 예술가 개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비드는 근대미술의 첫 주자라고 말할 수 있다.
¹ 박정선, 자크-루이 다비드의 초기 작품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학위논문, 2019, 31-32쪽
² 위의 글, 100-101쪽
³ 하상복, 자크-루이 다비드의 회화와 ‘위대한 인물’의 관념, 인문논총 제72권 제3호, 2015, 414-416쪽
⁴ 김선형, 프랑스 살롱전시회의 기원과 역사(1667-1799), 「프랑스문화연구」 제52집, 2022, 2-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