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분리된 것 같지만, 사실은 연결된 사회 –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글 입력 2024.09.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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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2022년 초연된 작품으로, 이번이 재연이다. 연극 <사이코패스>, <자객열전>, <명왕성에서> 등을 집필한 박상현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으며, 공연은 각기 다른 5개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5가지 이야기로 구성되는 옴니버스(omnibus) 형식이다.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남녀가 서울의 등산로에서 다시 만나는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이태원의 부동산을 배경으로 하는 ‘해방촌에서’, 아버지 땅 문제로 누나 집에 모여 어릴 적 살던 곳을 추억하는 ‘노량진에서’, 해외 입양인에 관한 연극을 연습하는 ‘오슬로에서 온 남자’, 부대찌개 집 할머니의 기일에 모인 가족 이야기인 ‘의정부 부대찌개 집’으로 극은 구성된다.


5개의 공간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 분리된 관계에 있지 않다. 이들은 장소에 따라 그들에게 부여되는 달라지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때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누군가를 통해 그들이 만났던 사람 또는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이에 5개의 이야기가 서로 분리되고, 그 안의 인물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이야기와 인물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음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적 변화가 드러나며, 이러한 변화로 인해 달라진 사회 구성원들과 한국인 간 맺는 관계 또한 달라진다.


작품 속에는 유년 시절 해외로 입양 갔다가 생모를 찾고자 한국에 왔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욘 크리스텐센, 한국인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베트남에서 온 엄마와 함께 도망 나왔지만, 다시 혼자가 되어 떠돌던 띠하, 해방 후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북에서 내려와 고향을 잃고 떠돌던 이들이 하나로 모인 해방촌에서조차 떠나야 했던 남자 등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경계에 머물러야 했던 인물들이다. 이런 점에서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여러 조각이 합쳐져 만들어진 조각보처럼, 각기 다른 여러 시간을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합쳤다는 점에서 ‘시간의 조각보’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장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중년의 남녀가 우연히 서울의 등산로에서 다시 만나 그때를 회상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때, 벨기에에서 노인과의 대화를 곱씹게 된다. 2장 ‘해방촌에서’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부동산 중개인과 셰프인 그의 친구, 그리고 매물을 보러온 한 여자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이 대화에서 어릴 적 해방촌에 살던 중개사는 남들과 다른 정체성 때문에 목사인 아버지가 떠났고, 아버지는 자책감에 해외로 봉사활동을 다니다가 현지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재의 변화한 해방촌 모습까지를 말한다.

 

3장 ‘노량진-흔적’에서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임야의 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모인 세 남매가 노량진에 살던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미군 부대에 다니시던 아버지, 동료 노무자들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그 중 이북에서 내려온 해방촌 김 씨라는 아저씨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그 땅을 산 이유를 점차 알아가게 된다. 4장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서는 유년 시절 노르웨이로 입양 가 오슬로에서 성장하고 살아온 욘 크리스텐센이 중년이 되어 모친을 찾으러 한국에 온 그의 삶을 평소 그를 지원해 오던 봉사자들과 연출가가 하나의 작품으로 연극화한다. 5장 ‘의정부 부대찌개’에서는 돌아가신 할머니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 미군 부대 주둔 시절을 회상하며, 가게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작품은 “코리언들은 왜 자기 것들을 잘 쓰고 잘 간직하고 잘 키우지 못하고, 왜 걷는 것까지 남의 나라에 와서 하는 거지?”라는 말에 방점을 찍으면서 시작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중년의 남녀에게 벨기에에서 온 노인이 한 말이다. 그 노인은 한국인을 입양한 사람이었다. 이 말은 이 작품을 통틀어 중요한 테제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다소 어색해 한 번에 그 의미가 각인되지 않는다. 세 개의 동사 중 두 개의 동사는 긍정이고, 마지막 하나의 동사는 부정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뉘앙스를 보면 세 개의 동사는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코리언들은 왜 잘 쓰지도 못하고, 간직하지도 못하고, 키우지도 못하고, 왜 걷는 것까지 남의 나라에 와서 하는 거지?”라고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이 말은 극을 엶과 동시에 극을 닫는다. 1장에서 20세기 ‘세계 최대 입양아 송출국’이라 불리던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던 이 말은, 5장에서 성장하고 변화한 한국을 표상한다. 21세기 현재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에서 한국인과 그들과 피가 섞이지 않은 한국-베트남 혼혈인 띠하가 ‘가족’을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부대찌개에 대한 논의 또한 획일성에서 탈피하여 다양함으로 나아가는 문화 융합적인 태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의정부 부대찌개’라는 획일화된 틀에 갇혀, “부대찌개는 이래야 해”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이제 없다. 그들은 할머니가 하던 의정부 부대찌개 음식점을 뷔페식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는 부대찌개 음식점으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한다.


작품은 이 장면을 통해 앞서 언급된 인물들, 즉 사회의 경계선 밖에 서 있었던 성소수자,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이,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국적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 해외 이민자들이 이제는 공동체 안에 자연스레 각기 각색의 모습으로 섞여 들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생모를 찾기 위해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에서 한국까지 왔지만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 욘 크리스텐센과 달리 부모를 모두 잃었지만, 새로운 가족을 찾아 행복한 미소를 되찾은 띠하의 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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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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