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캐드펠 수사 시리즈

글 입력 2024.08.24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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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 나는 추리소설을 꽤나 좋아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괴짜탐정의 사건노트', 셜록홈즈 전집, 애거 크리스티, 히가시노 게이고 등 디깅을 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대표작들은 모두 섭렵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독서가 취미'란 한 잔의 차와 원목 탁자와 함께하는 고상한 것이라기 보다 종이를 통해서도 웬만큼의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추리소설의 매력은 다른게 아니라 다음 한 줄 한 줄이 궁금해 손에서 놓지 못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한국 정서가 담뿍 담긴 소설을 읽고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판타지 소설을 읽고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지만 개중에도 불가항력적으로 읽어내려가는 책은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정보 습득을 위한 독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즐기기 위한 독서를 한 기억이 까마득하다. 예전보다 매체가 훨씬 늘어나기도 했고 어째서인지 활자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져 '재미'를 책에서 찾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여름 휴가를 맞았고, 오랜만에 가지는 공백에 좋은 기회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캐드펠-수사-시리즈-표지-모음.jpg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 배경은 1137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병화롭게 허브밭을 가꾸며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캐드펠 수사에게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라는 임무가 부여된다. 부수도원장을 위시해 귀더린으로 떠난 수사들은 귀더린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맞닥뜨리고, 급기야 반대파를 대표하던 영주가 화살에 맞아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2권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에 왕위를 둘러싼 혈전이 벌어지던 1138년의 잉글랜드. 전쟁의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도 음산학 내려앉는다. 아흔네 명의 포로가 처형당한 끔찍한 밤이 지나고, 시신의 수습을 위해 파견된 캐드펠 수사는 시신이 한 구 더 있는 것을 발견한다. 미지의 시신을 둘러싼 진실, 그리고 공포와 의심, 협잡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

 

3권 수도사의 두건 - 전 재산을 기탁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겠다고 수도원에 찾아온 한 주가 독살을 당한다. 그리고 범행에 쓰인 독극물은 캐드펠 수사가 '수 도사의 두건'이라는 풀로 제조한 맹독성 약물임이 밝혀진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캐드펠 수사 앞에 피해자를 둘러싼 거미줄처럼 얽 히고설킨 복잡한 가족사가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에는 젊은 날 캐드펠 수사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가 서 있는데·······.

 

4권 성 베드로 축일 -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슈루즈베리에서 성 베드로 축일장이 열린다. 축일장의 수익 배분을 두고 수도원과 시민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장사꾼들과 구경꾼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띤 슈루즈베리. 삼 일간의 축일장을 준비하던 중 한 거상이 알몸으로 단검 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의 아름다운 조카딸과 캐드펠 수사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영리한 게임을 시작한다.

 

5권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 오만한 늙은 남작과 어린 고아 상속녀의 결혼 행렬이 수도원을 찾 는다. 이 행렬을 지켜보는 의미심장한 눈빛들 속에서 캐드펠 수사 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혼례식 전날 밤 신랑이 처참하게 살 해당하고, 현장에서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몇이 발견되는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던 캐드펠 수사는 진정한 안식을 찾아 고행의 여정을 수행하는 한 늙은 영혼의 마지 막 결투를 목격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묘미는 전개가 급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만큼 인물과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 공을 들인 것이 느껴졌다.

 

마술의 트릭을 알아내겠다는 심보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 읽는다든지, 언제 살인이 일어나는지 뒷장을 몰래 들춰본다든지 하지 않고 그저 중세와 종교에 대한 서사로 먼저 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마치 상사의 뒷담을 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오는 캐드펠 수사와 존 수사의 대화라던가, 쇼네드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엘리스 피터스의 미스터리는 역사적 디테일, 마을과 수도원의 중세 생활상, 생생한 캐릭터 묘사, 우아하고 문학적인 문체 등 이야기 그 자체로 즐거움을 선사한다."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추천사에 천만배정도 공감을 표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내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에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중학교, 고등학교 때 한번도 세계사를 배운적이 없다. 그래서 수도원, 왕위를 둘러싼 싸움 등이 그저 세계관 처럼 느껴진다는게 이 책의 진가를 반푼 어치도 못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 교양 수업으로라도 세계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이후 6권부터 21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역사 공부를 병행하며 남은 시리즈는 더 깊이있게 탐독하고 싶다.

 

나 뿐만 아니라 왕년에 셜록 홈즈에 꽂혔었다 하는 사람들은 이 책으로서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은 것만 같은 광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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