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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푹 눌러쓴 두건, 성긴 잿빛 옆머리, 깊은 주름, 따뜻하고 장난기 있는 잿빛 눈, 참전 군인으로 살았던 거친 과거를 묻어둔 채 수도원에 귀의하여 허브밭을 가꾸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캐드펠 수사. 허브향이 바랑을 타고 날아오고 친절한 노수사의 잿빛 눈이 빛날 때, 인간의 삶을 뒤흔드는 살인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추리 소설은 지금은 독서광이 된 내가 책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 첫 장르이자 모든 시간을 쏟아붓게 만든 분야였다. 추리 장르만이 갖는 긴장감 어린 템포와 촘촘한 사건, 충격적인 반전 등이 당시 책의 매력을 모르던 나에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재미를 알려주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꾸준하게 책을 읽어오던 나에게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을 기회가 찾아왔고, 꺼져가던 추리소설에 대한 열정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이게 되었다. 사실, 추리 소설을 많이 읽어왔다 자부한 나에게도 이 시리즈는 처음 접하는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일본 추리 소설에 초첨을 두고 읽어왔기에 기회가 없었지 않았나 싶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높은 완성도와 유명세를 자랑하는 영국 추리 소설로 총 21권 구성으로 현재까지 5권이 출간된 작품이다.

 

 

 

그 시대에 던져 논듯한


 

내가 이번에 접한 ‘캐드펠 시리즈’는 완간 30주년 기념으로 개정된 책인데, 첫 표지부터 시선을 확 끌어들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캐드펠 시리즈는 역사와 추리가 결합된 작품으로 역사추리소설 클래식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성향을 담은 이유에서일까 표지 또한 나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과 감각적인 타이포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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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중세 영국에서 살아가던 12세기 베네딕토회 수도사 캐드펠(Brother Cadfeal)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뽑아보라 하면 바로 그 시대로 던져 논듯한 수준 높은 고증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분명 내가 살아보았는지도 알지도 못하는 중세 시대임에도 그 모습과 상황을 어렴풋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서술이 진행된다. 이러한 부분은 당시 시대의 전통, 관습과 수도사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는데, 덕분에 중세 영국이라는 낯선 배경에서도 작품에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의 역사추리소설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인간 군산 하나하나와 관계, 인간적 삶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장미의 이름>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고전 추리 소설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과 다르게 고대의 퍼즐을 푸는듯한 미스터리를 극대화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낯선 장소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사건이기에 더더욱 그 해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추리, 그 이상을 넘어선 인과


 

그 시대를 통째로 옮겨 논듯한 섬세한 고증과 필체를 <캐드펠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타 추리 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치밀한 인간관계의 모습 또한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는 전쟁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 기술과 탐정 능력에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그의 능력은 어쩌면 가장 사건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 고요한 수도원에서부터 보이게 된다. 특히나 그는 이러한 능력 이외에도 논리적인 부분과 공감적인 능력에서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덕분일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작품의 특징이 잘 살아나게 된다.

 

시리즈의 첫 번째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에서 다뤄지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부터 네 번째 작품인 <성 베드로 축일>의 축일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세 등 믿음과 이성, 관계까지 다른 추리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사람’에 집중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개연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캐드펠 시리즈>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 만큼 역사적 사건이 스토리의 주요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수록 작품을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는데, 역사가 아직 낯선 이들을 배려해 사건과 용어의 설명을 달아놓은 모습에서 얼마나 작품에 진심인지 또다시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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