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질서에서 비롯된 자유 - 러브 앤 아나키 [드라마/예능]

지배자 없는 상태가 의미하는 것은
글 입력 2024.08.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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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아나키. 여기서 러브는 우리가 그토록 잘 아는 사랑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나키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아나키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지배자가 없는 혼돈 상태를 아나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아나키의 존재를 처음 직면하게 되었다. 전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사랑과 무정부 상태? 보통 사랑의 반대말로 추구되는 혐오나 무관심, 혹은 비슷한 감정 상태와 동떨어진 '아나키'는 러브라는 보편적인 개념 뒤에 붙어 호기심을 자아낸다. 얼핏 보기에는 어떤 관계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일 뿐이지만, 이들은 드라마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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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며


 

2020년에 넷플릭스로 공개된 「러브 앤 아나키」는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는 스웨덴 드라마이다. 다소 급진적인 전개와 독특한 유머 코드, 그리고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수위 높은 장면과 청소년 시청 불가라는 연령 제한으로 화제가 되었다. 4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사랑으로 이목을 끄는 작품에서 나는 러브와 관련된 내용은 배제한 채, 로맨틱 코미디 뒤에 감춰진 아나키를 다뤄보고자 한다.

 

러브 앤 아나키의 주인공은 출판사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소피이다. 그녀는 잘나가는 미래 전략 컨설턴트인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다. 겉으로 보기엔 화목한 중상층의 가정처럼 보이는 단란한 가족이지만, 그 속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이 존재한다.


소피의 아버지는 아나키스트이다. 디지털화된 시대에서 현금 없는 계산 시스템에 반대하고, 의회 앞에서 우민화를 멈추라는 1인 시위를 하며, 자본주의에 굴복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는 뉴스를 보다가 화를 감추지 못하고 소피에게 전화한다. 그러나 소피는 그와 진실한 대화를 하기보다, 이 시대에서 현실적으로 살아남는 방법만을 전달하며 의사소통을 기피한다.


반대로 소피의 남편인 '요한'은 현실주의자이다. 자본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요한은 소피의 아버지를 보고 비뚤어진 현실 의식을 가졌다며 무시한다. 그에게 있어 주류는 당연히 옳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선 이들을 미친 사람으로 간주한다. 요한은 딸인 '이사벨'이 또래 대신 할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들에게 아나키란


 

다시 말해 아나키란 무엇인가? 이는 정부 없는 무정부 상태이다. 그러나 단출한 정의를 뒤집어보면 아나키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배자가 없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아나키즘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지배에 대한 반발을 내포한다.


드라마에서 아나키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소피는 과거에 한 소설을 집필했다.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씨앗임을 깨달은 소녀가 무럭무럭 자라 결국 숲을 이룬다는 성장 소설이다. 그 소설의 제목은 바로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러브 앤 아나키"이다.


현실주의자이자 자본주의자인 요한은 이 이야기를 사교계 모임에서 밝히며 희화화한다. 현재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아내가 허구의 소설을 쓴다는 사실은 그에게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요한은 소피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우울함에 빠진 딸 이사벨을 위로하는 소피는 자신이 과거에 썼던 소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그녀를 보듬는다. 그러나 요한은 소피의 모습을 보고 이상주의자 취급을 하며 조롱한다.


반면, 소피의 소설은 아버지에게 큰 자부심으로 남는다. 갈등 끝에 정신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에게 소피는 인생의 목적이 아버지처럼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토로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오로지 너 자신이 되어야지. 네 속엔 너만의 특별함이 가득해."라고 답하며 그녀의 뜻을 존중해 준다. 

 

그리고 과거에 소피가 썼던 소설을 언급한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지쳐있는 소피에게 "너는 인제 숲이야."라고 말하며 훌쩍 커버린 그녀의 본모습을 마주하도록 도와준다. 남편이 힐난하고 조롱하기 바쁘던 소피의 글은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다. 그의 말에 소피는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에 종사하려던 자신의 선택을 되짚어 보게 된다.


소피는 남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컨설턴트이지만, 정작 자신의 방향은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지속적이며 안주할 수 있는 삶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 나가는 삶을 두고 고민한다. 이 내적 갈등은 아버지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해결된다. 오로지 자신이 되기 위해 소피는 출판사 컨설턴트 일을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이혼을 다짐한다.


소피를 둘러싼 두 인물은 아나키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소피의 아버지는 앞서 언급했듯이 아나키스트이다.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무구한 관심을 보인다. 그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희망하며 사회적 평등을 위해 노력한다. 

 

이 노력은 대체로 1인 시위를 통해 투영된다. 그는 사람들의 찌푸린 시선에도 시위를 마다하지 않으며 자기 뜻을 가감 없이 보이기 위해 애쓴다. 기성세대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에게 아나키란 질서 있는 아나키이자 자유를 최대화하는 방법이다.


반면, 소피의 남편인 요한은 아나키즘에 대한 혐오를 보인다. 지배의 부재를 추구하는 아나키가 이상주의자만의 철학이라고 여기는 그는 아나키즘이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옛날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요한은 보이는 것이 중요한 인물이다. 자본에서 얻을 수 있는 치장된 삶을 동경하며 사교계에서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자기 아내일지라도 가차 없이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단 고정된 관념 안에서만 생각한다. 남과 다른 것을 참지 못하고 하대하며, 자신을 무엇보다 우위에 놓으려는 정복욕 또한 보인다.

 

 

 

소피의 자립


 

소피는 삶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받었던 두 인물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본다. 현실을 산다는 목적 하나로 남편과 같은 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피는 결국 자신을 위해 이혼이라는 새로운 길로 다가선다. 이후 소피가 자신의 사상으로부터 결정적으로 해방된 것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한다.


정신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소피의 아버지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의 연속에 낙담을 반복하다가 충동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소피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장례식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밝은 모습을 보이며 이질적인 장면을 자아낸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버지의 환상을 보며 망상을 거듭한다. 

 

결국 소피는 아버지처럼 정신 병원에 가게 된다. 환상 속의 아버지와 함께 정신 병동에 앉아 있는 그녀는 비로소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던 감정과 마주한다. 사실 소피는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했다. 일부러 대화를 피하며 외면했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내면에서 이루어진 이별을 계기로 아버지의 타계에 슬픔을 감지했던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린다.


마지막 화에서 소피는 출판사 소속 작가의 노벨상 수상 기념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출판사 컨설턴트에서 단시간에 CEO 자리에 올라 운 좋게 노고를 인정받을 수 있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을 속이고 돈 되는 곳을 쫓았어요.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개념을 근간으로 합니다. 재정적 이윤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남들처럼 그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강한 감정이 무서웠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전 애도도 안 했어요. 사회주의자셨던 아빠는 삶에 여러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죠. 전 아빠한테 그랬어요. '그렇게 살고 싶으면 사세요. 하지만 현대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현실주의자가 돼야 해요.’ 

 

문제는 이 삶이라는 게 항상 전략적으로 살면 존나게 지루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는 그대로 말할 겁니다.

 


소피는 노벨상 수상에서 실질적으로 공을 세웠던 인물을 지목하며 진심으로 축하한다. 혼란과 환희로 가득 차 있는 출판사에서 그녀는 버려져 있는 박스의 겉면에 마커로 글씨를 쓴다. 축제 분위기로 흥겨워 있는 건물을 빠져나와 홀로 백화점 앞으로 향한다. 

 

그리고 “사고파는 것을 중지하라!”라는 팻말을 들며 1인 시위를 펼친다. 그녀는 아버지가 인생을 바쳐 줄곧 해왔던, 그토록 이해가 가지 않던 행동을 자발적으로 한다. 사람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를 추모하는 동시에 자신을 억누르던 틀로부터 깨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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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으며


 

드라마는 사랑과 아나키, 그리고 자본과 엮일 수밖에 없는 출판사의 예술성과 상업성에 대해 다룬다. 각화마다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정확하게 단칼로 잘라 규정할 수 없는 문제들을 주제로 한다. 이들의 갈등은 자본과 예술, 기성세대와 신세대, 그리고 계급의 우위 사이에 위치한다.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드라마는 어느 하나를 콕 짚어 옳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한곳에 쏠려있는 무게 축을 가지고 의견을 단정 짓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어 보인다. 어떤 견해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이 견해를 강요하거나, 나의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주의해야 할 뿐이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다가오는 아나키의 의미는 자신이 가진 생각의 경도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1인 시위를 벌이던 아버지의 행동을 존중하고, 직접 실천에 옮긴 딸이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짐을 감행하고, 아버지의 생각에 공감하며 결국 자신의 가치관을 독립해 나간다.


소피는 과거에 집필했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간다. 자신이 씨앗임을 깨닫고, 나무가 되어, 숲을 형성한다. 주인공인 소녀가 반골 기질을 지녔지만, 그것이 무엇에 대한 저항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며 이야기를 미완성으로 마무리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정해진 고정 관념에 대한 저항일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녀는 숲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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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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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구운양파아몬드
    • 오늘도 잘 봤습니다 :D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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