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개 속 무진 [도서/문학]
-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정말 ‘무진’이라는 곳이 있을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소설 속 가상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지역이 너무 구체적이고 산속 어딘가에 존재할 법하여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무진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하고 또 어딘가 모르게 침체되어 보인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으면서도 무진을 빠져나가는 순간 사라진다. 나는 이러한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다른 곳이 아닌 오직 무진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소설 속에서 대범하게 일어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기 때문에 읽으면서 영화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
무진
『무진기행』 속 무진은 신비한 듯 보이면서도 우울하고 어딘가에 침체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주는 곳이다. 중심인물이 무진에서 겪는 짧은 일 또한 ‘무진’이라는 지역이 주는 분위기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무진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이지만 어딘가에 있을 법 같은 곳이다.
하지만 독특한 점은 중심인물에게 ‘무진’이라는 지역은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심인물은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 김승옥, 『무진기행』, 9쪽. 무진으로 향한다. 무진은 중심인물의 고향이자 중심인물의 과거가 담겨있는 곳이지만 매번 상황이 좋지 않을 때만 그곳으로 향하는 중심인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심인물은 무진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그 과거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심인물의 과거는 외로웠고 쓸쓸함의 연속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통제로 인하여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거기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스스로도 이겨내지 못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들은 중심인물이 무진을 가기 위해 들린 역에서 미친 여자를 보며 되살아난다. 미친 여자의 비명을 통해 중심인물은 무진을 실감한 것이다.
나는 중심인물이 과거와 달라진 현재에서도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고 보았다. 아내와 장인어른은 중심인물에게 든든한 지원을 해주지만 중심인물은 “풀을 뜯으면서 나는, 나를 전무님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무 선출에 관계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호걸웃음을 웃고 있을 장인 영감을 상상했다. 그러자 나는 묘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김승옥, 『무진기행』, 34쪽. 라고 생각한다. 중심인물이 아내와 장인어른에 대해 마냥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중심인물이 과거와 환경이 바뀐 현재에 이르러서도 가끔씩 무기력과 쓸쓸함을 느끼며 생활할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중심인물은 무진에 있을 때 바뀐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던 것이다.” 김승옥, 『무진기행』, 9쪽.
나는 이 문장을 통해 중심인물이 무진에서 행하는 생각과 일은 오로지 ‘무진’이라는 작은 마을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생각과 일이라고 보았다. 다른 곳이 아닌 오직 무진에서만 일어나는 거침없는 일은 처음 만난 인숙과의 일탈일 것이다.
인숙은 무진에게 있어 아내와 다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다. 중심인물은 인숙과 있을 때 “옛날의 내가 되었다.” 김승옥, 『무진기행』, 44쪽. 라고 말한다. 그녀와 있을 때 중심인물은 세월을 잊고 자신이 겪어온 감정을 잊고 순간에 몰입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나는 그것이 중심인물의 일탈이라고 생각했다. 무진에서의 시간은 일주일로 제한되어 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라도 일탈을 느꼈던 것이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중심인물은 아내의 전보를 본 후 이렇게 다짐한다. 중심인물은 무진에서 아내를 배반하는 행동을 했고 그 행동에 책임지지 않았다. 인숙과의 시간은 중심인물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중심인물은 무진이 아닌 곳에서 아내에게, 장인어른에게, 자신을 전무로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들의 곁에서 무기력한 삶을 보내며 한정된 책임 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무진은 중심인물의 무책임이 서울과 달리 허용되는 곳이다. 중심인물은 그곳에서 일탈을 하고 작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마저도 무진을 빠져나오며 사라진다. 중심인물이 무진을 빠져나오며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편지를 인숙에게 전하기 못하고 찢어버린 이유는 인숙을 무진에서만 사랑할 것이라는 걸 중심인물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개
무진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안개이다. 안개는 중심인물이 무진의 명산물이라 생각한 만큼 무진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이 공간의 특성을 더 보여주는 듯 했다. 거대한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중심인물이 무진에서 일어나는 일과 닮아있다.
나는 안개가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뚜렷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중심인물이 인숙에게 느끼는 사랑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 뚜렷이 존재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배반, 중심인물의 무책임, 사랑을 느끼기 전 중심인물 곁에 웅크리고 있던 무기력, 쓸쓸함의 감정을 생각했다. 중심인물의 인숙을 향한 사랑에는 안개가 껴있다. 많은 것이 감추어져 있고 희미하다.
안개는 형체를 가려 존재 여부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나는 중심인물의 인숙을 향한 사랑도 결국 불확실한 사랑이라고 보았다. 무진에서는 인숙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심인물이 무진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는 인숙을 향한 사랑마저도 희미해져 사랑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해질 것이다.
안개의 다른 특성은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는 것이다. 안개가 끼면 가까운 것은 물론이고 먼 곳까지 보이지 않는다. 무진에 있는 중심인물에게 먼 곳은 서울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있을 집과 가족은 잠시 중심인물과 떨어진다. 그 떨어진 시간 동안 중심인물은 안개 낀 무진에서 인숙을 사랑하게 되지만 안개가 없는 서울에서는 다르다. 중심인물이 쓴 편지에는 서울에 가서도 중심인물이 인숙을 사랑할 것이라 써놓는다.
하지만 중심인물은 결국 그 편지를 찢는다. 위에서 내가 언급했듯 중심인물은 무진을 떠나 안개 없는 서울에 가게 된다면 인숙을 서울로 부르지 못할 것이고 무진에서의 일은 잊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소설 초반에 무진에서의 일을 잊고 살았다던 중심인물의 독백처럼 중심인물은 또 한 번 무진을 잊은 채 서울에서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안개는 짧은 시간 동안 중심인물의 생각을 흐리게 만들고 중심인물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안개가 사라지면 형체가 확실해지듯이, 흐릿했던 것을 눈앞에 뚜렷이 마주하듯이 중심인물은 자신이 무진에서 했던 행동을 실감하고 안개에 흐려진 감정이 결국 짧게 지나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부끄러워할 것이다.
[김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