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엇이 빈곤한 것일까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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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이 좋은 아빠거든요. 남들은 꿈 하면 직업을 말하잖아요. 그런 얘길 들으면 갑갑한 거예요.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한참 걸릴 거고, 단지 돈 벌려는 수단으로만 직업을 가지려면 한참 걸릴 거고, 단지 돈 벌려는 수단으로만 직업을 선택하면 제 삶이 힘들 거고요 (...) 다들 좋은 아빠는 꿈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게 꿈이고 그걸 찾으라고요. 자식과 아내,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다 바칠 거냐고, 가족은 꿈과 별개라고 그러더라고요. (...) 고민이 많았죠. 미래에 대해서. 결론은,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 그때 가면 길이 보이겠지, 이런 생각이에요. 지금은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해요. -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
들어가며
미국의 시트콤 드라마 [프렌즈]. 뉴욕에 사는 여섯 친구의 일상을 유쾌하게 다뤘고, 이들이 서로에게 남발하는 미국식 조크와 개그는 지금 보아도 폭소를 이끌어내기에 [프렌즈]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시트콤이 될 수 있었다.
[프렌즈]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에게 달려가 고민을 토로하고 조언을 구한다. 시트콤 특성상 원활한 방식으로 해결되진 않지만, 어떻게 흘러가던 친구들끼리의 사이가 돈독해지는 결말이 된다.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도움을 주던 친구가 도움을 받기 위해 친구들에게 달려가고... 이런 플롯으로 [프렌즈]의 에피소드는 진행된다.
그러나 여섯 명의 친구들이 정확히 3대3, 절반으로 갈라서는 일이 벌어진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우정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은 두 집단으로 갈라져 상대 집단에게 불만을 제기하고 토라지며 갈등하게 된다. 이 균열의 원인은 경제적 지위의 차이였다.
함께 먹고, 놀고, 마시고, 여행을 갈 때, 상대적으로 빈곤한 친구들이 부유한 친구들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은 탓이었다. 부유한 친구들은 큰 고민 없이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지만, 빈곤한 친구들에게는 즐거워야할 친구들끼리의 한 끼 식사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프렌즈]에서는 두 계급으로 갈린 친구들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해주어 갈등이 원만하게 잦아들은 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이전처럼 다시 잘 지내는 모습을 화면 속에서 보여준다.
또래들 사이의 빈부격차. 드라마에서는 한 회 차의 갈등 소재로 소비 되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에게는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벽이 된다. 그리고 그 벽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성장한 여덟 명의 청소년들을 추적 관찰해 인터뷰 한 책이 강지나 작가의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이다.
소개가 길었다. 그러나 현 시대의 빈곤이 청소년에게 야기하는 것은 굶주림과 추위로 대표되는 생명의 위협이 아닌, 보편을 이룩하기 위해 강제된 자아의 형성이기에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난해해 보일 수 있다. 그러니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천천히 알아 가보도록 하자.
- 여덟 개의 우주가 책 속에 담겨있지만, 이 글에서는 개별의 서사보다 그들의 삶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을 몇 가지 짚어보려고 한다. -
빈곤하기만 빈곤 청소년은 없다
역설적이지만, 책 속에서는 빈곤하기만 한 빈곤 청소년은 없었다. 무슨 말이냐면,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에서 받은 상처보다 주변 사람들. 즉,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심심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어머니는 노름에 빠져 성인이 된 자녀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등 빈곤 청소년에겐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는 일보다 주변에 산재된 불안 요소를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러한 불안 요소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 또 금전적 부담을 짊어지며 해결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돈만으로는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빈곤한 마음을 지닌 어른들에게 노출된 아이들이 스스로 이를 깨우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게다가 돈은 아이들에게 직업 선택에 대한 강박으로 작용한다. 이는 어떤 직업을 갖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사회 진출의 시기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 직업을 고르기보다 돈을 벌어야하기에 남들보다 이르게 사회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빈곤한 청소년이 돈을 벌어서 향유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그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바를 추측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정상가족’이었다. -단어만 적시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사족을 달자면, 책에서 일컫는 ‘정상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가정의 형태를 뜻한다-
즉,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가정. 일일드라마에서 나오는 가정같이 대가족 형태도 이에 포함된다. 바꿔 말하면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퀴어가족, 1인가구와 같은 형태는 한국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정상가정’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빈곤 청소년의 경우, 자신이 속한 가정 형태가 ‘정상가정’이 아니기에 자신이 빈곤에 처했다고 규정 짓게 된다.
책의 사례에서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 볼 수 있다. 좋은 삶의 목표라고 보는 이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은 현재의 행복을 뒷전으로 한 채 ‘정상가정’을 이룩하면 행복해진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착각을 아이들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 보았다. ‘정상가정’ 프레임 이외에도 잘못된 효의 중시나 여성 위기 청소년을 착취하는 남성성을 비판하며 빈곤 문제의 해결이 단순한 재원의 확충에 있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답답한 현실, 해법은 없는가
명쾌한 해답은 제시되지 않지만 말수가 적은 아이, 연우의 사례에서 어떻게 빈곤 청소년이 슬기롭게 자신의 미래를 계획해 나가야 하는지 엿 볼 수 있었다. 수많은 학원을 다니기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또래 친구와 달리, 연우는 중학생 시절부터 혼자 이곳저곳 돌아다니거나 도서관에서 온종일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연우에게 학원을 가지 않는 시간은 고스란히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그 빈 시간 동안 연우는 무엇을 좋아하는 지 곰곰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연우에게도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빈곤 청소년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충분한 성찰을 통해 일찍이 자아정체성이 형성되었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희망하는 직업을 결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확충되는 것도 빈곤을 해결하는 열쇠라고 본 것이다.
마무리하며, 이 글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전부 숨길 수는 없었지만 책에 수록된 인터뷰의 내용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에디터의 편집을 거치지 않고 아이들, 이제는 어른이 된 청년들의 숨결을 온전히 느끼기 위함에서 비롯되었다.
청소년 빈곤에 대한 해결방안이 떠오르지 않아도 좋고, 실행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해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다음으로 읽을 책을 골라야 한다면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적극 추천한다.
[김한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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