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비하면서 기이한, 무서운 그림에 담긴 예술가의 사연 - 무서운 그림들

무더운 한여름, 색다른 ‘무서움’을 경험하고 싶은 당신에게
글 입력 2024.08.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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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사실 공포 장르에 강한 편은 아니다. 낮에 아무리 무서운 영화를 봐도 밤에 잠만 잘 잔다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가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SNS 피드에 뜬 공포 썰 같은 것들을 본 날에는 속수무책으로 잠을 설치곤 한다. 하지만 날이 몹시 무더운 요즘, 한여름에 제격인 공포물에 구미가 당기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듯싶다.

 

후폭풍을 익히 알면서도 굳이 공포물을 찾게 되는 이 심리가 새삼 이해가 되지 않는 어느 날,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결국 ‘스토리텔링’이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귀신이나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섬찟한 장소에는 대개, 까놓고 보면 억울하고 한스러운 기구한 사연들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공포물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곳에 등장하는 귀신이나 현상이 얼마나 무섭고 기이한 지보다는, 그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무서운 그림들>이라는 제목과, 이의 저자 ‘이원율’의 이름이 몹시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우선 왠지 순수예술이나 회화 장르, 그중에서도 특히 세계적인 명화들을 다루는 수식어로서는 다소 낯선 듯한 ‘무서운’이라는 주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술 서적 장르에서는 보기 드문 신선한 관점과 주제의식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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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특유의 스토리텔링 전개로 유명한, <헤럴드경제>에서 ‘후암동 미술관’ 시리즈를 연재 중에 있는 이원율 기자의 신작이라는 점 역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전작인 <결정적 그림>을 굉장히 재미있게 향유했던 감상이 이어져 주저 없이 후속작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다.

 

공포물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그것에 담긴 사연들이라면, 명화 속에 담긴 이야기를 조명한 <무서운 그림>의 목적은 이미 성공적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서늘한 분위기가 풍기는 신비로운 그림들은, 그 사연을 알고 나면 한층 깊어진 감상을 만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표지를 장식한 백합을 든 흰 원피스의 소녀 그림, 제임스 휘슬러의 <흰색 교향곡 1번: 하얀 소녀>가 본 저서의 주제의식을 내포하는 듯하다. 사랑하는 연인 조안나 허퍼넌을 모델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미를 담아내려 했던 휘슬러는 수많은 색들 중 가장 순수하고 밝은 흰색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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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흰색의 교향곡 1번, 하안 옷을 입은 소녀’, 1862 ⓒ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휘슬러는 허퍼넌을 그릴 때면 연백색 안료를 아낌없이 펴 발랐는데, 티 없이 맑은 연백색보다 아름다운 허퍼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연백색을 향한 휘슬러의 사랑은 도리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허퍼넌과 흰색을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휘슬러는 연백색 안료에 담긴 납 성분에 중독되었고, 평생을 납중독에 고통받다가 예순아홉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사랑할수록 죽어야만 했던 휘슬러의 기구한 운명은 신비로운 그림에 담긴 은은한 한기의 출처를 이해시킨다.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아름다움에 중독되었다는 어느 한 예술가의 비극처럼, <무서운 그림들>에 담긴 사연들은 예술과 스토리텔리의 조화가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한’ 예술 세계가 조명하는 역설의 미를 설명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한여름, 조금은 색다른 종류의 ‘무서움’이 미술 교양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

 

썰 중독자로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꼽자면 렘브란트 판레인의 <야경>을 고를 듯싶다. 원제는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민명대>인 본 작품은 민병 대장이었던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가 그의 민병대원들과 함께 당시 거장으로 유명했던 렘브란트에게 의뢰했던 초상화이다. 후세에 의해 2세기 반가량 <야경>이라는 전혀 생뚱맞은 이름이 붙은 본 작품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진 것과는 달리 등장부터 욕먹고 이후 잘리고, 말려지고, 난도질당하고, 심지어 염산까지 뿌려지는 갖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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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야경’, 1642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자신들의 위엄을 기리기 위해 초상화 제작을 의뢰했던 민병대원들은 완성작을 건네받고는 분노했다. 위엄 있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원했던 민병대의 바람과는 달리 서커스단을 연상시키는 완성작은 우선 첫 번째로 더치페이를 약속한 민병대원들 각자의 비중이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전신이 다 등장한데 반해 눈코입만 나와도 감지덕지할 정도로 누군가는 두 눈만 겨우 나오거나, 누군가는 코만 두드러진 채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렘브란트가 제멋대로 가상의 인물들을 추가하기까지 했는데, 그들의 비중이 민병대원들 중 일부보다 훨씬 컸다는 것도 불만의 원흉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대해 정작 렘브란트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이 그림이 회화의 정점을 찍은 자기만이 선보일 수 있는 새로운 실험작이라 생각한 렘브란트는, 민병대원들의 항의를 뭘 모르는 이들의 투정으로 받아들였다. 남의 돈을 받은 작품에 제멋대로 실험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당시 최고의 화가로서 칭송을 받던 렘브란트는 외려 당당해 하며, 오만하게도 오히려 민병대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떠넘기듯 작품을 받게 된 민병대원들이 아무렇게나 보관한 것을 시작으로 작품에 서서히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민병대>라는 이름의 원제는 어쩌다 <야경>이라는 생뚱맞은 이름을 갖게 됐을까? 그 비밀은 바로 변색에 놓여있다. 대낮을 배경으로 밝게 그려진 원작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잘못된 보관으로 인해 서서히 어두워졌고, 한 세기 후 아무 배경지식 없이 사람들이 본 작품을 접했을 당시에는 이미 까맣게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를 ‘한밤중 민병대가 순찰하는 모습’으로 오해한 후세 사람들이 <야경>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경>의 실체는 1940년 그림에 보호제를 새로 칠하던 중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 무려 2세기 반 만에 밝혀진 비밀이었다.

 

이야기를 재밌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반전’이라고 생각하기에, 무려 2세기가 넘어서야 밝혀진 명화의 비밀은 마치 추리극을 감상한 것 마냥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다. 한낮을 배경으로 했던 그림이 전혀 엉뚱한 ‘야경’이라는 이름으로 힘겹게 생존해, 한참의 세월 후에 정말 우연에 의해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서사가 마치 잊힌 영웅의 일대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작품의 비밀이 ‘빛’에 놓여있었다는 반전미 넘치는 서사는, ‘빛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층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

 

무려 100개의 명화를 담고 있는 책이지만, 희한하게도 책장을 덮는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첫 번째로 등장했던 아르놀트 뵈클린의 <페스트>였다. 제목에서 바로 연상되듯이 유럽 대륙을 죽음으로 휩쓸었던 ‘페스트’를 주제로 그려진 본 작품은, 사신으로 형상화된 페스트를 등장시키며 죽음의 공포와 전염병의 무자비함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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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뵈클린 ‘페스트’, 1898 ⓒ 바젤 시립 미술관

 

 

죽음을 주제로 한 암시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뵈클린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런 뵈클린이 죽음을 그리는 화가가 된 데에는 그의 개인적인 생애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위의 ‘페스트’와 연계되듯 평생 총 14명의 자녀를 두었던 뵈클린은 전염병 등으로 다섯 명의 아이를 잃었고, 나머지 아홉 명 중 셋 역시 뵈클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식들의 죽음에 절망했던 한 화가는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뵈클린의 작품이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이 조금 정리된 지금 가장 떠오르는 건 예술의 사회성인 듯싶다. 똑같이 죽음을 주제로 하지만 초반에 개인적인 슬픔을 조명하던 뵈클린의 작품들은 그의 생의 족적에 따라 사회적인 슬픔으로 확대되었다. 

 

그의 작품들 중 ‘페스트’가 유독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재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페스트의 위험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전염병을 향해 지닌 화가의 개인적인 슬픔이 비슷한 아픔을 겪은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염병을 향한 경고는 팬데믹을 앓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현시대에까지 충분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때론 어떤 문화 예술들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그 존재가치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러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세상이 점점 고도화될수록 더 큰 의미를 지닐 거라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많은 역할을 대체해가는 시대에는, 단순히 있는 것을 알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표현의 영역에 있는 예술, 그중에서 예술가의 시선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미술에는, 그 무엇보다 한 사회와 시대상에 대한 그만의 인식, 즉 세상을 바라보는 각 예술가만의 ‘세계관’이 투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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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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