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가 사는 이야기가 곧 그림 사는 이야기이다 - 큐레이터 송한나의 그림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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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사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림을 인간으로 접근한다. 그림과 소통한다는 관점으로 저자는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품들을 사람 소개해 주듯 풀어내고 있다. 그림으로 대화를 나눈 저자의 언어가 곁들어진 책으로 10명의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익숙한 작가도, 처음 보는 작가도 있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듯 책을 읽어내면서 나와 친해지는 작품과 아무리 유명해도 나와 맞지 않는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10명의 작가에게 드러난 두드러지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 사는 일상과 밀접한 것이 그림의 영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의 그림도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살면서 느껴봤을 법한 감정들이기에 그들이 남긴 그림은 어딘가 친숙하고 그들이 그림을 그렸던 마음에 공감이 된다.
그림이 던지는 위대한 질문도 여기서부터 비롯됨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완성품만 작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한 마음에서부터 예술이 시작된다. 또한 NFT든 소셜미디어 게시 방식이든 미디어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전달 방식은 그림이 사람들에게 닿는 과정까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 책을 통해 그림 사는 이야기가 결국은 내가 사는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요소를 끌어내어 보여주는 보석 같은 그림 이야기를 들어보자.
설명하기 어려운 그때 그시절 희미한 기억과 선명한 감정들
조지 몰튼-클락 - 즉흥적인 순간의 감정이야 말로 가장 진솔된 감정이다. - 조지 몰튼-클락은 기억 속 캐릭터를 그림으로써 사고의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를 만들어간다. 익숙함과 불편함의 경계를 미끼로 독자들을 끌어당겨 관람자의 상상력이 그 경계 속에서 헤매며 걸어가게 만든다. 크로키, 낙서를 이용해 작가는 순간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뒤엉킨 선으로 완벽하지 않아 보이는 형체야말로 그가 그리고자 한 기억 속의 대상이다. 우리 일상도 완벽할 수 없듯이 때론 정립되지 않은 불완전한 것들이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담 핸들러 - 가식 없는 귀여운 그림들로 진정성에 대해 묻다 - 아담 핸들러의 그림들은 성장하면서 잃어버리는, 또는 갖고 싶은 희미한 경험들과 감정들을 구체화시킨 것 같다. 핸들러 작가는 ‘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관람자 본인의 감정을 상기하고 또 다른 경험을 상상하길 바라는 소통의 예술을 추구한다.’라고 전했다. 작가가 솔직하게 느낀 감정이 그림을 통해 또 다른 감정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직설적으로 그려낸 피사체는 내가 느꼈던 옛 감정들을 날것의 감정으로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다.
조광훈 - 미운오리새끼는 사회, 현실과 타협하며 성장하는 우리의 성장 과정 - 오리를 조각한 조광훈 작가는 실상은 조직과 사회라는 호수를 유영하고 있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나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누구나 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되고 싶은 백조를 품고 있지만, 사실은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시답지 않은 오리면 좀 어떤가. 물속에서 보이지 않는 발버둥을 치는 오리는 어쩌면 백조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우아해 보이는 백조가 되기 위해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능만을 쫓지 말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아껴주는 것은 어떨까? 그의 작품들은 사회와 타협하며 살아가려는 이 세상 모든 오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내가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하며 시작된 예술
카우스 - 아무나를 위한 예술이 벽에서 시작되다. - 토론토 미술관에서 실제로 카우스의 조각품을 본 적이 있다. 단순히 재밌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캐릭터인 듯 아닌 듯했지만, 표정도 없이 오직 거대한 몸집만으로 미술관 한가운데에서 서서 ’나 좀 봐줘요.‘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토스팟처럼 보이기도 해서 나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경험을 떠올려 보니 ‘익숙한 캐릭터를 통해 전 세계인과 소통하고 싶다.’ 는 그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아이콘으로 눈이 없는 새로운 카우스 캐릭터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뱅크시 - 한 개인이 사회에 내던지는 목소리가 그림이라는 확성기를 만나다. - 뱅크시가 선택한 거리라는 도화지는 오히려 그의 그림만이 지닌 큰 영향력을 보여준다. 한순간으로만 남을 수 있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그 메시지가 더 오래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작가가 스토크스 크로프트 지역에 남긴 벽화, 병원에 걸린
, 매매에 주된 목적이 있는 미술시장을 향한 비판을 담은 , 그리고 뉴욕 거리에서의 작품들은 사회에 필요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목소리들을 대변했다. 작가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그림을 그려서는 안되는 곳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못 사서 안달인 엄청난 가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현재의 위상을 갖기까지 작가의 여정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알려진 것이 없는 작가라는 또 다른 그의 타이틀은 작가 자체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게 그림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음 또한 시사한다. 사회 속 작은 개인들에게 위로의 손을 건네는 작품들
허보리 - 감정의 상태를 지각하고 돌봐주다. - "살면서 좋은 감정만 느끼기에도 부족한데 이런 감정까지 느낄 시간이 어디 있을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허보리 작가의 작품은 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을 돌보아 준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만화경 속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사람의 감정을 일상에서 쉽게 보는 채소나 동물, 수도꼭지에 빗대어 그렸기 때문이다. 일하고 난 후 집에 와서 녹초가 된 얼갈이배추, 퉁퉁 부은 다리의 침대 위 오징어는 내가 일상 속 하찮은 감정이라고 외면했던 순간들이었다. 허보리 작가의 초현실주의 그림에서 관람자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형태가 아닌 감정의 상태이다.
강준영 - 그림은 듣는 법을 알게 하는 언어이다. - 강준영 작가는 누구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집’을 노래한다. 작가는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 것이라 전했다. 특히 그림 또한 언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언어를 그림의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그림에 적힌 이해하기 쉬운 직관적인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감상자와 세상을 연결하는 예술가’라는 작가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그는 본인이 직접 수집한 굵직한 위로의 문장들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었다. 아카이빙 과정 자체가 작품의 영감이 되고 그가 소통하고 싶은 표현방법은 선별되어 우리에게 그림으로 전해진다.
이완 - 우리라는 단어의 가치를 반문하다. -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나만의 모양새를 재단하지는 않는가? 경험이나 가치가 사회가 원하는 모양이 되도록 우리는 자신을 사회에 동화시킬 때가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회가 원하는 무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나의 무게는 떼 지고 더해지는 과정을 거쳐 결국은 ’우리가‘ 된다. 이완의 1cm, 5.06kg, 고 유시 같은 작품들은 ‘우리’가 사회의 합집합이어도 누구나 저마다의 시간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감을 보여 준다. 규격화된 도량마저 개개인에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마다의 가치와 판단 기준이 다른 개인이 사회가 되어 ‘우리’라는 단어를 형성하기까지가 어렵고 무겁기에 더 아름다운 과정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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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흡입력 있었던 이유는 저자가 그림과 소통한 방식과 더불어 그림이 미술 시장 안에서 어떤 의미로 전 세계와 관계 맺고 있는지도 소개하는 데 있다. 작품들이 시장의 흐름 속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림을 구매하고 소장한다면?’이란 질문에도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림 소장과 관련된 권리들부터, 그림에 따른 적절한 액자를 고르는 것의 중요성, 투자할 때 고려해야 할 것, 저작권과 인격권, NFT와 비트 코인, 작품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한 작가가 선택한 매체들까지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림과 나눈 대화를 풀어놓은 책이다. 친구와 나눈 대화가 지루하지 않듯이 이 책도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 저자가 예술 작품과 나눈 사적인 대화를 흥미롭게 듣다 보면 관련 지식도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책이다. 그림을 만나서 나눈 대화를 전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그림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림을 어떻게 접근해서 보는지가 궁금한 마음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똑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 무엇을 보고자 하는지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같은 그림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감상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꽁꽁 감추고 가둬두려는 닫힌 마음은 작가가 세계에 내놓은 작품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나의 감상을 더 나누고 싶어졌다.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듯이 그림이 언어가 되어 세상을 설득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동안 글이라는 매개체를 주로 고집해왔다면 이 책을 읽은 후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세계와 나의 것을 더 나누고 싶어졌다. 이제 나에게 남겨진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이미지 방식으로 나를 세계를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신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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