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글보글, 그림에 녹아든 '사람 사는 이야기' - 큐레이터 송한나의 그림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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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얄팍한 지식과 관심으로 유명 예술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몇 차례 접해본 적이 있다. 다른 책들과 <그림 사는 이야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책의 작가가 ‘경험해 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점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로 비유하자면 수프를 먹을 때 건져 올리는 감자•당근 등이 책에서 소개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고, 이와 함께 먹게 되는 뭉근 수프 국물이 지은이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다. 호기심 많은 딸에게 박물관을 데려가 제한선 너머의 것을 궁금해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부모님, 대형 미술관에서 유수한 작품들을 접하며 품었던 의문. 송한나 작가만이 꺼내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 서두에서부터 그 장에서 소개하고픈 작품 이야기를 스며들게끔 만든다.
송한나 작가가 어떤 재료를 통해 맛깔난 수프를 끓여냈는지 책 속 예시와 함께 살펴보자.
수프 맛에 깊이를 더하는 레시피 : 작가만의 이야기
한때 내가 역사와 예술을 사랑하는 애호가인지, 아니면 직업 때문에 애호가가 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후 더 이상 나 자신과 직업을 굳이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자만했던 것 같다. 예술에서조차 명확한 답을 내리려고 했다.
- p.13
‘그저 휘갈긴 낙서’라는 평가 속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들이미는 조지 몰튼-클락의 작품을 소개하며 송한나 작가가 남긴 감상이다. 친숙한 캐릭터를 그렸지만, 불명확한 선과 선 사이 경계로 인해 관람객은 상당히 오묘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그림의 불명확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빼곡히 채워가며, 나만의 그림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조지 몰튼-클락의 작품이 주는 매력이다.
작가가 서두에 밝힌 이 솔직한 고백이 특히 와닿았던 이유는 해당 문장에서 내보인 일과 대상(예술) 간의 혼돈이 충분한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로서 매일같이 작품을 보고, 평가하는 과정이 작품에 대한 온전한 감상을 막는다는 것. 어쩌면 작품을 유심히 보는 것조차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수행해야 할 역할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비록 예술의 일선에서 근무한 이력은 없지만, 한 켠에 계속해서 예술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 입장에서 생각해 볼 지점이 명확한 문장이었다. 과연 나는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예술을 자유로이 향유하고 느끼는 것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약 이보다 더 깊게 다가간다면 내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모하게 될까? 나 역시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나갈 스스로의 상상력에 판단을 맡겨보기로 했다.
조광훈 예술가의 <백조가 될 줄 알았던 미운 오리 새끼>를 소개할 때 역시, 송한나 작가는 스스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작품에 녹아든 메시지에 새로운 향을 더했다.
대부분의 챕터에 조금씩 지은이의 일대기가 녹아있지만, 미운 오리 새끼라는 주제를 받아들인 송한나 작가만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많이도 아팠던 어린 시절, 상실감을 배가시켰던 언니와의 비교. “넌 어쩜 이렇게 언니와 다르니? 언니의 반만 닮아보렴”이라는 꾸지람이 어린 지은이에게 남긴 상처. 누구나 유년 시절, 사회 초년생 시절 등을 겪으며 느꼈을 법한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더 가깝게 그려냈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된 지금보다 어렸을 때의 스스로가 비교의 희생양이 되기 쉬운 것 같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지만) 턱없이 세상을 조금 경험한 상황에서 성적 등 여러 잣대로 이리저리 평가되는 일상, 한데 모인 또래의 무리 사이 오묘하게 형성된 보이지 않는 선 등이 그렇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너와 내가 사는 이야기를 그림 속에 성공적으로 우려냈다.
맛있게 수프를 끓이는 법 : 다양한 속재료
생수병, 아이스박스, 포장마차 의자, 대걸레, 고무 호스 등 누군가 버린 듯한 물건들이 쓰임새, 모양, 무게도 제각각인데 저울 위의 눈금은 모두 같은 무게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은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우리’의 소속이라는 필연을 깨달은 것이다.
- p.143
위 문장은 송한나 작가가 예술가 이완의 작품 <우리가 되는 방법>을 관람한 뒤 남긴 감상이다.
이 작품은 황학동의 버려진 물건들을 모은 뒤 동일한 무게 5.06kg에 맞춰 저울 위에 물건들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일반적인 회화 작품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다.
'그림 사는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접할 때 자연스레 생겨나는 선입견은 이 이야기의 초점이 회화에 국한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벽에 일렬로 걸려있는 그림들을 바라보며 그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이따금씩 '밟히는 그림'을 골라내는 모습들 말이다.
그런데 책은 회화 그 이상의 장르를 아우른다. 도예/혼합매체는 물론, NFT 예술가(비플)의 작품까지 책 속에 녹여냈다. 비교적 최근 그 존재를 드러낸 NFT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친절히 안내해 주는 것은 덤이다.
송한나 작가는 앞서 소개한 이완 작가뿐 아니라 도자기 안에 우리네 삶의 터전인 집을 담아놓은 강준영 작가, 아트 토이로 개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가 카우스 등 가지각색의 매력을 뽐내는 예술가들을 한 데 모아두었다.
이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조명함과 동시에, 점점 더 플랫폼과 형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는 예술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처럼 책을 읽다 보면 다소 낯설게 느껴지던 작가들의 예술관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프에 담긴 속재료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각각의 질감과 고유의 향이 어떤 맛을 만들어내는지 느껴보자.
[김서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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