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번쩍번쩍 새 건물만이 정답일까 [영화]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2021)
글 입력 2024.07.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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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문제는 한국의 만사의 원인이라고 할 정도로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이다. 한국은 집이 없어 사람이 죽고, 집이 지하에 있어 사람이 죽는 국가다. 집을 많이 공급하면 좋을까? 새로운 집이 계속 생기면 해결되는 것일까? 오래된 집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지방의 오랜 도시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인천의 올드 타운, 중구가 있다. 원도심이라고도 불리는 중구 일대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초로 개항되며 근대화가 시작되었던 지역이다. 가장 먼저 변화를 맞이한 지역이라는 것은,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한 뒤 다시 가장 오래된 지역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구에는 다 허물어져 가는 적산가옥이 방치되어 있고, 이미 허물어진 잔해들이 산재해 있다.

 

구도심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주로 택하는 이분법적 구도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인천의 미래를 두고 흔히 택하는 재생론과 개발론, 그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영화는 카메라의 초점을 건물의 외관으로부터, 그 안에 살고 있는 인천 주민들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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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개발 만능론’이 맞을까?


 

가장 먼저 카메라를 돌린 곳에는 구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카메라는 침착하게 구도심 주민이 바라본 구도심의 발전 계획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도 오래되고 위험한 집을 영원히 남겨두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 역시 지역이 점점 노후화되고 공동화되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마을에 우울함을 느끼고,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이런 알짜배기 도시에 재개발 시도가 없었을 리 없다. 중구에는 대규모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다. 여러 기업들이 제안한 취지는 ‘지역의 문화적 활용’이었다. 거주자들 역시 처음에는 재개발 계획에 기뻐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될수록 기업들이 말하는 개발은 ‘역사 깊은 지역’이라는 중구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최신식’으로만 바꾸는,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이 실적과 숫자에만 집착하는 방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원 거주자들에겐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정책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거주자들이 떠나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인 재개발 방식이라는 것 역시 문제이다. 영화에는 약 50년을 중구에서 거주한 노부부의 사연이 등장한다. 젊은 시절 적산 가옥을 구매해 오래된 곳을 하나하나 가꿔가며 살아온 집은 이제 언제 팔려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낡은 집이 되었다. 이 집 마당에는 인상적인 나무가 하나 있다. 부부가 집에 살기 전부터 있었다는 이 나무는,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추측될 정도로 오래된 나무다. 이 집이 사라지게 되면 나무는 어떻게 될지. 노부부의 아쉬운 목소리가 따른다.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노부부는 마땅히 갈 곳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한때는 평생을 이곳에 살겠다 짐작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그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할 뿐이다. 카메라는 여기서도 노부부의 때가 탄, 그렇지만 오랜 역사와 추억이 담긴 낡은 집의 흔적을 조용히 담을 뿐이다.

 

이렇듯 지역의 재개발을 논할 때 가장 첨예하게 대립이 일어나는 부분은 원 거주자의 주거 이동 문제이다. 계속해서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기존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재개발 이주 지원 비용으로는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한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 주민들은 그럼에도 재개발 등으로 인해 갈등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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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힌트를 발견하다, ‘빙고’


 

빙고는 인천 중구 개항로 골목에 숨어있는 작은 아카이브 카페다. 이 카페의 2층 사무실에는 건축가 한 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의중 건축가다.

 

이의중 건축가는 1920년대에 지어진 얼음 창고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의외로 매입해 보니 지어진 후 한 번도 개조된 적이 없는 건물이어서 오히려 창고의 변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곳. 지금은 그럴 듯한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지만 처음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이의중 건축가는 ‘빙고’를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설명한다.

 

그가 추구하는 건축 재생은 단순히 모든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공간을 다시 고쳐 쓰는 것이다. 기존에 존재했던 도시의 흔적을 남겨, 다음 세대가 이 도시의 모습을 봤을 때 ‘이 공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카페 ‘빙고’는 어느덧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한 지역을 다음 세대에게 남겨준다’. 이 문장은 사실은 일본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문장이다. 도시재생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력을 남긴 건축가 나라무라 토오루의 건축 철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의중 건축가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건축가로 나라무라 토오루를 꼽는다. 그렇게 영화는 일본의 구라시키로 이동한다.

 

 

 

옆 나라에서 본 ‘오래된 미래’


 

나라무라 토오루를 중심으로 하는 6명의 건축가 그룹은 1988년도부터 지금까지 수백 채가 넘는 오래된 민가를 재생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일명 구라시키재생공방. 일본 패전 직전 미군의 폭격이 예고되어 있던 지역인 이 지역은 종전 선언으로 운 좋게 공습을 피해 가고, 방치되면서 옛 도심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역이었다.

 

이렇듯 오래된 구도심을 재생해 주민들이 다시 찾는 공간으로 바꾼 사례인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민간 주도의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힌다.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쓸 만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 도시 재생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도시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까지가 도시 재생의 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일본에는 또 다른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가 있다. 오노미치다. 이곳은 20~30대 젊은 세대가 주도해 재생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라시키 미관지구와는 차이점을 갖는다. 단순히 일본의 옛 동네를 바꾸어 새로운 상업적 공간으로 만든 것 외에도, 오노미치 도시 재생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낡은 집을 개조해 새로운 거주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인천) 도심 개발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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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 대해 내가 이야기한다'


 

영화는 인천의 이야기를 인천, 원도심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이끌어 간다. 감독 스스로도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며, 인천의 공동화 현상이 안타까워 첫 장편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주류가 아닌 지역에 실제 거주하고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또한 영화의 초반에는 주거지와 아파트 개발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후에는 상업적 공간, 문화 공간으로 변모한 구도심을 중심으로만 보여주고, 실제 거주지 변화 사례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 실제로 구도심을 재생해 거주지로 변화시킨 사례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옛 건물을 복원해 만든 문화적 공간의 사례를 보면, 한국의 도시 재생이 나아갈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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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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