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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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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여름 대신 꿉꿉한 장마가 찾아오면 유독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몇 번의 장마를 거치며 이제는 [Rainy Playlist]에 박제되어버린 곡들. 비가 쏟아지던 밤 그중에서 들을 노래를 고르다 발매 시기를 보고 깜짝 놀란 곡이 있다. 바로 샤이니의 다섯 번째 앨범 [1 of 1]의 수록곡, ‘투명 우산’이다.


이 노래에 쌓인 시간이 벌써 7년이라니. 한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해 졸업하고도 중학교 1학년을 마칠 세월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투명 우산’은 묵묵하게 나의 장마를 책임졌다. 만약 노래에 성격이 있다면 ‘투명 우산’은 묵묵함일 것이다.

 

 

 

 

 

빗속에서 담담하게 마주하는 이별의 끝


 

단순히 세월이 오래 지나서는 아니고, 이 노래가 이야기하는 바가 그렇다. ‘투명 우산’ 속 화자의 성격을 그려본다면 그 또한 묵묵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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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처럼 우린 만나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그려가듯 함께 했었고

스케치하듯 그린 선과

우리를 채워가던 색 다

어느샌가 흐릿해져 가

 


화자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 인연의 끝에 서 있다. 어쩌면 뻔하고 슬픈 이별 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투명 우산’은 뻔하게 이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투명 우산’에 담긴 건 수채화 같았기에 빗물에 번질 수밖에 없었던 첫 만남, 혼자가 될 내일이지만 유난스레 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마지막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투명한 비에게 느끼는 고마움이다.


 

아직까지 믿을 수 없는 이 결과

엉켜있는 맘을 풀 수 없는 건가

자책하지도 미워하지도

자칫하면 공기마저 외면되는 복잡한 이 상황

너의 뒷모습을 머릿속에 남겨

지워지지 않는 깊은 곳에 너란 이름 새겨

눈을 감는 이 시간도 내겐 아까워

앞을 가리는 이 비가 투명해서 고마워

 


이별의 순간 속에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놀랍게도 화자는 진심으로 이 비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대부분은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시간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하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눈에 담는다. 오히려 눈을 감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다.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인연을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

내민 투명한 우산에

잊지 못할 너의 뒷모습도

가릴 수가 없는 걸

 


마지막 인사 대신 건넨 우산이 굳이 ‘투명 우산’이어야만 했던 이유도 섬세하게 와닿는다. 비도, 우산도, 그 무엇도 지금 이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투명하기에 흐릿한 빗속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별. 뼈아픈 지금을 오롯이 눈에 담아야 한다면, 느껴야 할 것은 담담한 슬픔이다.


이만큼 담담하기에 화자가 느끼는 슬픔과 애정은 더욱 깊숙이 가슴에 박힌다. 샤이니 멤버 종현은 ‘투명 우산’을 부르다가 울었을 정도. 종현을 울린 이 노래의 작사에는 멤버인 키와 민호가 참여했다.

 

여담이지만 ‘투명 우산’의 가사는 형식적으로도 보는 맛이 있다. ‘선과 – 색 다’, ‘결과 – 건가’, ‘남겨 – 새겨’, ‘아까워 – 고마워’. ‘구름, 이 별을 가리고’처럼 가사에 숨겨진 라임을 하나하나 찾아보다 보면 이 노래를 색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10년이 지나도 그대로 느껴질 ‘투명 우산’의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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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투명 우산’이 주는 생생함과 감성은 적어도 나에게는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듯하다. 오래된 LP처럼 틀자마자 들려오는 노이즈와 잔잔하게 깔리는 빗소리,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예술적인 가사는 짜증 날법한 습기를 기분 좋게 머금는다.


또 이별에 대해 단편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태도도 이 노래를 질리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이별의 순간 보란 듯이 덮쳐오는 슬픔과 여전히 남아있는 애정, 그리고 그 순간에도 스쳐 지나가는 감사함. ‘투명 우산’ 속 화자는 당연하지만 의식하기 힘든 감정을 짚어준다.


끊이지 않는 비 소식이 이 노래로 인해 그나마 반가워졌다고 하면 거짓말 같을까. 다시 짙은 먹구름이 낄 때 습관같이 찾을 수 있는 곡이 있다는 건 어쩌면 몇 없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질 때면 ‘투명 우산’을 틀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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