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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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이희승과 이해인, 둘이 모여 완성되는 이감각


 

-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해인(이하 인): 안녕하세요, 저는 이감각의 디자이너 이해인입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서핑에 빠져 있어서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열심히 서핑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희승(이하 승): 안녕하세요, 저는 이희승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랑 대학 동기로 만나게 되었어요. 잘 하는 친구가 있길래 열심히 꼬드려서 이감각을 시작한 지 벌써 7~8년이 되어 열심히 이감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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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께서 3학년 때 전공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를 하다가 만났다고 알고 있어요. 대학 팀 프로젝트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는지 보다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승: 원래 저희 과에 인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어요. 과 특성상 전체적으로 친한 편이었죠. 다만 그전까지는 접점이 별로 없다가, 3학년 때 수업을 들으며 함께 팀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다행히 굉장히 마음이 잘 맞았어요. 사적인 이야기까지 굉장히 잘 통하다 보니 이 친구와 제가 전반적으로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죠.

 

 

- 대학생이 취업을 하지 않고 창업을 결심한다는 것은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이기에 굉장히 큰 용기와 결단히 필요한 일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친구와 함께해도 괜찮겠다'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요?

 

인: 잘했어요. 저는 이 친구의 작업물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저는 이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이 친구는 무엇을 해도 잘 하는 스타일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이 친구가 무척이나 큰 확신을 갖고 '나만 믿으라'라고 말하며 열심히 저를 꼬드겼어요. 하하.

 

승: 맞아요. '내가 먹여 살려준다'라고 이야기했었죠. 하하. 그때는 오히려 뭘 모를 때니까 더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친해진 것은 3학년이었지만 1학년 때부터 이 친구의 작업하는 모습을 계속 봐왔으니까 이 친구가 어떤 스타일로 작업을 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죠. 그래서 '일단 저 친구랑 해보고, 잘 안되면 빨리 접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하하하. 그런데 함께 하며 잘 맞는 부분들이 더욱 생겨나간 거죠.

 

 

- 두 분 다 친해지기 전부터 서로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계셨네요. 상대방의 작품 중 어떤 부분을 보고 긍정적인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요?

 

인: 사실 저희가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쯤 되어서 그 작업물들이 생생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친구가 작업을 전개하고 그 안에 스토리를 담아내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모티브를 얻는 부분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죠.

 

승: 하나의 주제가 떨어졌을 때, 그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그것을 작업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이 친구와 제가 갖게 되는 질문, 그리고 주목하는 포인트 그 자체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사업을 함께 하다 보면 삐거덕거림이 아예 없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인: 싸웠던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싸웠던 적도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잘 맞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 부분이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저희 말고도 한 분 더 계셔서 셋이서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친구랑은 작업 스타일이 생각보다 안 맞았기에 초기에 다른 길을 향하게 되었거든요. 그 이후 이감각의 첫 제품이 나왔는데, 그때부터 저희는 의견 차이는 있어도 함께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친구와의 관계가 단순히 사업 파트너로서뿐만 아니라 친구를 넘어서서 진짜 자매보다도 더 자매 같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 두 분 모두 디자이너라면, 역할분담은 주로 어떻게 이뤄지는도 궁금합니다.

 

인: 둘 다 디자인 전공이다 보니 역할이 칼같이 나눠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이디어 회의도 같이 하며, 서로가 주고받는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서로서로 디벨롭하죠. 그나마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부분은 그래도 이 친구가 생산이나 제작을 주로 담당해서 스케줄 등의 디테일한 부분을 점검한다면, 저는 외주 미팅 등에 조금 더 시간을 쓰는 편이에요.

 

 

- 아이디어 회의부터 디자인까지 함께 디벨롭을 한다면 다툼까지는 아니더라도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럴 때 조율은 어떻게 하시나요? 

 

승: 조율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생각이 약간씩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을 느껴요. 그러면 둘 다 서로에게 시간을 줘요. 이 친구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저도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그 의견들을 섞어나가죠.

 

타인이 보면 논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하하, 저희가 직설적으로 대화를 하는 편이에요. 저희는 대체로 대화를 나누듯이, 정말 수다를 떨듯이 이야기를 하거든요. 평소에도 워낙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고,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만큼 이야기를 자주 나누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정리되면서 합쳐지는 것 같아요.

 

인: 그래서 저는 무언가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조율하는 시간을 굳이 정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디벨롭되는 이 과정이 저희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회사의 동료로 있다 보면 쉽게 피드백을 주고받기 어려운 부분도 있잖아요. 대놓고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죠. 하지만 저희는 서로 '이 피드백이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우리가 더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두터운 신뢰가 바탕으로 되어있으니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해요. '너무 구린 것 같아', '나라면 안 살 것 같은데 너라면 살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죠. 하하하. 그래서 이감각은 먼 길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바로 답을 찾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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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감각의 목소리로 듣는 한국의 전통과 그 방향


 

- 처음 창업을 결심했을 때, 어째서 수많은 키워드 중에서도 '한국의 전통'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인: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던 것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역사, 유물 등을 좋아했거든요. 그러한 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발전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성장을 하면서 부모님께서도 한국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대학에 오니 지도 교수님께서 공예에 관심이 많으셔서 은공예, 옻칠공예 수업을 듣다 보니 다시 한번 더 대한민국의 전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죠.

 

이후 이 친구를 만난 뒤 '우리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이니, 잘하는 것도 한국의 전통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즉, 한국을 배경으로 두고 한국인으로 존재하는 디자이너가 제일 잘하는 것은 결국 한국적인 디자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작가님들께서 느끼시는 '한국의 전통'만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인: 특정한 우리나라의 무언가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나다움'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큰 것 같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전 세계를 막론하고 MZ들의 키워드잖아요. 그들의 '내 취향에 대한 가치소비'와 'MBTI' 등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나가는 이 모든 유행과 과정이 결국 다 '나다움'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해요.

 

그런데 저는 이 나다움을 찾아나가다 보면 결국 전통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 타인과는 다른 것을 찾다 보면 결국 '나만의 것'은 '전통'으로 결론이 내려지거든요.

 

이 전통은 100년 전 혹은 200년 전 전통이 될 수도 있고, 600년 전의 전통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냥 10년, 20년, 30년 같은 우리와 가까운 시대도 우리의 전통이 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시대의 흐름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이 모든 흐름과 전통이 '나다움'으로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최근 전통에 관심을 예전보다 더 많이 갖는 이유도 '나다움'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감각도 최근에 슬로건을 다시 정비했어요. 이 모든 생각들을 함축시켜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했죠. 저는 이 문구가 결국 이감각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이감각이 전통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담은 것 같아요. 나를 둘러싼 나의 관계성이 결국 나를 말해주는 것이라고요.

 

 

- 처음 작가님들께서 시작을 하실 때 '전통'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걱정은 전혀 없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통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는 키워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전통'을 업으로 삼는 데에 두려움이 있으시지는 않으셨나요?

 

인, 승: 그런데 그 당시 저희가 어렸어요. '30살까지 월에 50만 원만 벌어도 이 일을 계속해 볼만한 것 같다.'라고 말했었죠. 하하.

 

승: 2년 정도 이감각을 하고 난 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꿈이었는지를 실감했어요. 지금은 둘 다 30이 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꿈을 꿔었다 생각해요. 하하. 그 당시의 저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로 현실에 대해 잘 몰랐어요. 얼마 정도를 벌어야 이 일을 생업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저는 이 일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저는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대학생 때도 정말 많이 좋아했고, 지금도 참 좋아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국적인 전통을 공부하고, 이를 활용해서 디자인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기 때문에 '이거라면 꾸준히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업이라는 것이 물론 당장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저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고 계속 새롭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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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대한민국의 전통은 '고증을 지켜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감각에서는 전통을 활용한 디자인을 하며, 어떻게 전통의 고증을 지키려고 노력하셨는지.

 

인: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석사 논문도 한국 전통과 관련하여 적게 되며 논문을 위해서도 전통에 대해 공부를 했죠. 실제로 그런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간 마음도 있었어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면,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한국성이란 무엇인지, 어떤 맥락을 갖고 디자인을 해야 할지에 대해 대학원에서 연구했어요. 석사를 졸업한 이후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박사 학위 수료까지 했어요. 하하. 그렇게 계속 공부하고, 책을 읽고, 박물관을 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저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던 것 같습니다.

 

승: 저희가 다양한 유물들을 리뷰해서 X(전 트위터)에 업로드했었어요. 그런데 그 리뷰 글들이 '고증을 제대로 해야겠다'라는 마음에서 시작이 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희가 한국적인 디자인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절대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는 한국의 전통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박물관도 전부 돌아다니고, 박물관에 있는 도록이나 소장품 같은 것에 대한 해설도 300 페이지가 있다면 300페이지를 다 읽거든요. 그러다보니 온라인상으로 자료를 더 접하려고 해도 저희가 볼 수 있는 아카이빙 된 자료들은 저희가 이미 거의 다 본 자료였죠. 하하. 그래서 봤던 것을 또 보기도 하면서 시각적으로 어떤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저에게는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유심히 관찰해서 녹여냈어요.

 

또, 저희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게 되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도 고증이나 역사적인 책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봤어요. 거의 석사 논문을 쓸 때와 동일하게 도서관에서 계속 있었죠.

 

 

- 그렇다면 이렇게 전통을 활용하고 고증을 지키며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실까요?


인: 자료가 잘 안 나올 때가 있어요. 박물관의 입장에서 저희는 개인(외부인)이잖아요. 박물관에 소속된 연구원분들이나 학예사분들께서 접근할 수 있는 자료와 저희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조금 달라요. 최선을 다해 찾아보고 노력해도, 조금은 정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승: 이감각 자체 프로젝트가 아닌 박물관이나 문화재단과 협업할 때에는 조금 더 내부 자료를 볼 수 있어요. 훨씬 더 고차원적인 연구의 내용들에게 저희에게 같이 전달해 주시기도 하고, 저희가 요청을 드릴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에는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편이에요.


그런데 사실, '고증을 지킨다'라는 말이 굉장히 여러 갈래로 해석이 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기존의 형태나 형상을 그대로 계승하듯이 옮겨서 디자인 작업을 하지는 않거든요.저희는 전통을 현대적인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저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끄집어내서 변형시키는 과정들을 거치는 게 더 이감각스러운 디자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감각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갖고 있기도 했어요. 특정한 유물에서의 출발한 스토리가, 이감각에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것과 너무 멀어져 버리고, 그로 인해 소비자들이 해석하기가 어려워하지는 않을지에 대해서요. 그래서 최대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요소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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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전쟁과 급진적인 발전 과정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전통이 끊긴 부분이 많아요. 그렇기에 전통성을 활용하는 제품들을 시도하는 브랜드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젊은 층에게는 거리감과 진입장벽이 있죠. 이감각에서는 한국의 전통이 현대에도 계속 이어져나가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인: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에는 일제강점기나 남북전쟁이 있었고, 전쟁 이후에는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졌죠. 그래서 아무래도 그전에 있었던 전통들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발전되지 못했어요.  이 시기에 들어온 것들, 즉 급하게 수입된 것들이 하나로 혼합되어 발전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이런 변화 자체를 한국의 매력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래서 그러한 한국의 '짬뽕'적인 매력에 집중해서 작업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저희는 이 시기가 없었다면, 그래서 역사적 굴곡 없이 자연스럽게 발전해 왔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하며 작업하는 편이죠.

 

승: 저희가 맨 처음 이감각을 만들고 작업했을 때만 해도, 전통이라는 것은 굉장히 '지켜야 하는 것' 그리고 '무거운 것'의 느낌이 강했거든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시대의 느낌을 그대로 계승하고 재현해서 사용해야 하는, 무게감 있는 콘텐츠였죠. 그리고 그마저도 관심이 많지 않았고요.

 

저는 이것이 바로 한국 특유의 역사가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버렸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잊어버렸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거죠. 그러다 보니 더욱더 접근하기가 힘들어졌던 거죠.

 

인: 하지만 현대에 이 전통들이 넘어온 이후에는, 전통을 전통 그 자체로 보존하고 고증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현대인들이 소비하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승: 그래서 저는 이미 대한민국의 전통성에 대한 발전이 좋은 방향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반가사유상이 귀여워지기도 하고, 컬러도 달라지며 무게감도 바뀌고 있잖아요. 이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것이 개인의 취향 영역으로 들어가고 하나의 콘텐츠로서 훨씬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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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드림캐쳐, <노방 포스터>


 

- 최근 많은 인기를 끌은 노방 포스터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노방 포스터는 복복복을 독립시킨 뒤 제작한 제품인데, 노방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승: 저희가 복복복을 독립시킨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더욱 쉽게 느낄 수 있는 전통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노방 포스터가 제 역할을 정말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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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새해 포스터를 만들고 싶다고 의뢰를 주신 분이 계셨어요. 기존의 저희는 가방을 위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가방은 아무래도 내구성이 중요하다 보니 탄탄한 패브릭들을 주로 사용했죠.  그런데 저희가 지금까지 자수 작업을 많이 했기도 하고, 자수 전시를 굉장히 많이 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수를 포스터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노방은 비단으로 만든 것이고, 저희가 지금 실제 비단으로 만든 노방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비단 느낌을 낼 수 있는 시스루 소재를 사용해서 포스터를 제작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자수와 노방을 합치는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진행되어 최종적으로 노방 포스터를 만들게 되었죠.

 

그렇게 콜라보 제품으로 먼저 선보이고, 이후 자체적으로도 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 노방 포스터를 만들면서 집중하셨던 부분과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서도 짚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인: 저희는 지금까지 탄탄한 패브릭에만 자수를 놓는 작업을 주로 해왔어요. 그때는 자수의 기법 등을 활용해 전통 자수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집중했죠.

 

그런데 이 노방 포스터는 노방이라는 원단에 자수를 놓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노방이라는 것이 워낙 얇고 탄성이 좋으니까요. 자수를 놓다 보면 금방 우그러지고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노방 포스터를 생산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자수 업체도 굉장히 많이 찾아보고, 자수 업체랑 컨텍을 진행하다가도 결국 저희가 원하는 퀄리티가 안 나오면 다른 업체를 찾았죠. 지금은 다행히 잘 수 놓아주실 수 있는 분을 찾아서 그분과 계속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그분을 찾는데도 거의 1년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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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감각에서 선보인 노방 포스터의 별명은 '코리안 드림캐처'이죠. 굉장히 독특한 별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드림캐처와 모양도 굉장히 다른데.

 

승: 사실 세화는 상대방의 무운을 빌며 선물하는 의미가 강해요. 그래서 드림캐처와 비슷한 면모가 있으면서도, 완전히 똑같다고 보기도 힘들죠.

 

하지만 저희는 '코리안 드림캐처'라는 별명을 굉장히 좋아해요. X (전 트위터) 상의 '복식봇(@all_dresses_)'님께서 처음 언급을 해주신 별명인데, 그 비유가 참 좋아 연락을 드려서 저희도 사용하게 되었거든요. 복식봇 님께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코리안 드림캐쳐'라는 별명을 좋아하시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승: 아무래도 드림캐처라는 단어가 세화 혹은 노방 포스터보다 대중들에게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구나 생각했거든요.

 

세화라는 것에 대해서 저희가 SNS에 설명을 했기 때문에 그 설명을 읽으신 분들은 아실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화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더욱 많으니까요.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지나오며 대한민국에서 세화라는 것을 주고받지 않게 되었잖아요.

 

하지만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만 여쭤봐도 그분들의 어릴 적에는 세화를 광화문 벽에 크게 붙여놓는 풍습이 있었고, 민화를 새해에 선물하기도 했다고 말씀해 주세요. 실제로 제가 어릴 적에는 새해에 복조리를 걸어두며 무운을 빌기도 했죠.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저희가 세화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지, 결국 세화였던 거예요.

 

하지만 '이것이 세화입니다'라고 하면 대중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의 드림캐처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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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별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드림캐처는 인디언들의 문화이다, 이런 비유는 결국 바이럴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분들께서는 전통의 계승과 복원을 더욱 중요시 생각하시기에 그렇게 의견을 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으로 저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결국 전통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이고, 저는 전통의 길이 열려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욱더 한국의 전통을 이어가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 별명을 주신 복식봇님도, 저희 제품을 보고 '드림캐처랑 똑같다'라고 생각해서 드림캐처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마무리 지으며


 

- 예전에 가장 애정 하는 가방으로 매듭 가방을 언급해 주셨는데, 최근도 동일할까요?

 

인, 승: 하하 말씀해 주신 거처럼 매듭 가방이 가장 공을 많이 들였었죠.

 

최근에는 저희가 스터디 하고 있는 제품 <주름백>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래 저희는 매듭과 자수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그중 매듭이 갖고 있는 '겹쳐지고 엮여진다'의 속성이 주름으로 확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주름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제품 샘플링을 진행했죠. 현재는 디자인이 거의 확정되어 최종 샘플을 앞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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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백의 샘플*

 

 

그런데 사실 주름이라는 것은, 특성상 원단도 정말 많이 들어가고 그 주름을 디테일하게 잡아야 하다 보니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들어요. 원단의 탄성 정도에 따라서 형태도 많이 달라지기에 샘플링만 1년 넘게 했거든요. 하하.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현재 저희가 다룰 수 있는 소재도 첫 제품보다 많아지고, 가공의 종류도 더욱 다양하게 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해요.

 

결국 매듭 가방도, 이 주름백도 어려웠기 때문이 가장 애정 하는 작품이 되는 것 같아요.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거니까요.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거나 확장하고 싶은 카테고리가 있다면?

 

인: 저희가 패브릭 작업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패브릭 이외의 재료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일단, 패브릭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제품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리빙 제품 중 커튼이나 쿠션 등으로 확장해 보고 싶어요.

 

 

- 지금까지 풀어왔던 숙제 중 가장 어려웠던 숙제와 앞으로의 숙제는?

 

승: 전통이랑 너무 멀어지지도, 너무 가까워지지도 않을 수 있는 거리감을 찾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존의 것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싫지만, 분명 그럴 때 사람들이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하거든요. 그래서 전통성을 살리면서도 이감각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저에서 얼만큼 트위스트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정말 컸어요.

 

인: 저는 생산에 있어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전통적이라고 느끼는 미감 자체가 과거의 수작업에서 오는 느낌을 통해 완성되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생산으로 넘어가 보면 저희가 그것을 전부 다 직접 만들 수는 없잖아요. 공급 가능한 가격대와 내구성이 형성이 되어야 하니까요.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그것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승: 앞으로도 결국 이러한 부분들이 계속 숙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최근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많은 분들이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의 형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재료적인 면, 방법론적인 면 등에서 '이것만이 전통이다'라는 생각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그 부분에서 저희 제품을 제작할 때 전통적인 재료를 쓰지 않고도 전통성을 녹여내는 것이 숙제인 것 같아요. 저는 이감각의 제품들이 전통을 녹여내면서도 동시에 '전통을 계승했다'거나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라고 이야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밸런스를 잡아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숙제였으면서도 앞으로의 어려운 숙제인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처음에 이감각이 디자이너로서 완성된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감각만의 장점과 느낌을 찾아주시고, 이감각의 제품을 소비해 주셨디 때문에 저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잖아요. 저희도 자주 주문해 주시는 분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는데, 그렇게 기억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승: 저는 연예인들이 시상식에 나와서 팬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릴 때, 어느 정도의 예의상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저희가 물건을 제작하고 배송하는 과정에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희 초반 제품들이 열심히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퀄리티가 굉장히 높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이감각의 의미를 더 좋아해 주시며 팬분들께서 저희를 성장시켜 주셨죠.

 

그리고, 그분들께서는 제품을 구매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매해 주시면서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을 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나는 물건을 팔았는데 감사 인사를 받는다, 나는 물건을 사며 감사했던 적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어요. 

 

그래서 소비자분께서 금액을 지불해 주시고 제품을 구매해 주심에도 저희에게 감사해 주시는 것이 정말 특수한 구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감사 인사가 예의상에 이야기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인: 저희가 <럭키백>이라는 제품의 펀딩을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당시 코로나19가 확산되며 배송이 부득이하게 일주일 정도 늦어진 적이 있죠. 마스크 생산 공장으로 작업자분들께서 다 이동하셔서 저희의 생산 공장에서 일하실 분이 안 계셨던 거예요. 당시 저희의 제품을 펀딩해 주신 분들이 100명에서 200명 정도 되었는데, 저희가 너무 죄송한 마음에 한 분 한 분 전화를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이 과정이 저희에게는 굉장히 큰 용기였어요.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죄송한 말씀을 해드려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정말 긴장하면서 5분 동안 떨다가 전화를 드렸어요. 그런데, 전화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서 오히려 '괜찮다', '고맙다', '열심히 준비하셨을 텐데 이런 상황에 놓여서 유감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기억이 있어요.

 

한 분 한 분 목소리를 들으며 '피해를 입었는데도 나를 응원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분들께서 나의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해 주시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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