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력 있는 춘향, 귀여운 몽룡 – 국립창극단 '절창Ⅳ'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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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은 2021년부터 <절창>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절창(絶唱)’은 아주 뛰어난 소리를 뜻하는 말로, 판소리의 동시대성을 참신한 구성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이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절창Ⅰ(수궁가)을, 이소연과 민은경이 절창Ⅱ(적벽가, 춘향가)를, 이광복과 안이호가 절창Ⅲ(수궁가, 심청가)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 절창Ⅳ는 김수인과 조유아가 맡아 처음으로 혼성그룹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들은 5바탕가 중 ‘춘향가’를 재구성해 무대 위에 올렸다. 조유아는 김세종제 춘향가, 김수인은 동초제 춘향가로 무대를 꾸렸다. 연출은 임지민이, 대본은 김민정이 맡았다.
국립극장 인스타그램
본 공연이 춘향가를 각색한 만큼, 대목의 순서 또한 달라졌다. 장원급제한 몽룡이 남원으로 내려오는 중, 박석고개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로 시작해 몽룡과 춘향의 짧았던 만남과 이별을 그린다. 그 후 방자를 만나게 되면서 춘향의 편지를 읽고, 춘향과 사랑했던 한때 기억한다. 이후에는 춘향의 수청거부, 몽룡의 어사출두, 춘향과 몽룡의 재회로 구성된다. 이에 대목 구성은 초앞(조유아) - 박석고개(김수인) - 금과 옥의 내력(조유아) - 천자 뒤풀이(조유아/김수인) - 이별가(조유아) - 장원급제(김수인)+어사발행(김수인) - 쑥대머리(김수인) - 어사 방자 상봉(김수인) - 춘향 편지(조유아/김수인) - 긴 사랑가(조유아/김수인) - 짧은 사랑가(조유아/김수인) - 궁자 노래(조유아/김수인) - 신연맞이(조유아) - 갈까부다(김수인) - 십장가(조유아/김수인) - 옥중가(조유아) - 어사 출도(김수인) - 어사 수청 분부(조유아) - 어사 춘향 상봉+장모 행차(조유아/김수인) - 춘향 추천(조유아/김수인)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김수인과 조유아의 역할 바꾸기와 제(制) 바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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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춘향가를 남녀 소리꾼이 한다고 하면 춘향 역은 여자 소리꾼인 조유아가, 몽룡 역은 남자 소리꾼인 김수인이 맡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 공연도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구성하였으나, <금과 옥의 내력>, <쑥대머리>와 같은 대목에서는 조유아와 김수인이 역할을 바꾸어 불러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렇게 역할 바꾸기 뿐만 아니라, 조유아는 사또로 변하기도 했으며, 김수인은 방자로 분하기도 하며 춘향과 몽룡에 국한되지 않았고, 중간중간 내레이터로도 분하며 판소리와 창극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신연맞이>와 <갈까부다> 대목에서는 조유아와 김수인이 제를 바꾸어 조유아가 동초제로 <신연맞이>를, 김수인이 김세종제로 <갈까부다>를 불렀다. 익숙지 않은 제라 연습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두 소리꾼의 말이 무색하게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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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공연에서 감초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조유아는 조신한 춘향이를 그리는 대신, 자신만의 춘향이를 만들어 자신감 넘치면서도 박력 있는 춘향이를 완성해 냈다. <궁자 노래>에서는 순종적이고 여성스러운 모습이 아닌, 박력 넘치고 주체적인 춘향의 모습을 그려냈으며, <어사 춘향 상봉> 장면에서도 몽룡에게 “나 죽고 나면 오지 그랬어”라고 말하며 옥지환을 아주 힘차게 던져 버리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춘향을 보여줬다.
<절창> 시리즈가 입체창 형식―두 명 이상의 창자가 서로 역할을 정해 창을 주고받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김수인과 조유아가 그려낸 <절창 4>는 거기서 더 나아가 2인극 혹은 2인 창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그만큼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었다. 특히, 김수인은 한국무용을 전공했던 이력이 있는 만큼, 발림이 두드러지는 소리꾼이라 할 수 있는데, 춘향 편지 이후 옥에 갇힌 춘향의 심정과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몽룡의 처연하면서도 애달픈 마음을 독무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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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구성과 배치 또한 훌륭했다. 앞으로 기우는 십자가 형태로 이루어진 무대는 마치 서로 다른 두 신분을 가진 몽룡과 춘향이 만나는 것을 형상화한 듯했으며, 춘향과 몽룡이 각자 등장하는 문은 무대의 십자가에서 이어져 사다리꼴로 표현됨으로써 몽룡과 춘향이 신분의 한계를 이겨내고 서로 만나 사랑에 성공한 모습, 즉 평등한 상태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더불어 악기 연주자를 무대 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연주자 또한 무대 위 소리꾼을 서포트해 주는 또 다른 배우가 되었다. “예이”, “좋다” 등의 추임새뿐만 아니라, 제3의 역할을 수행했다. 북, 거문고, 가야금, 타악기, 생황, 특수악기, 전자악기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의 음악은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악기를 사용했으며, 슬픈 장면에서는 주로 거문고와 가야금을,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생황과 전자악기, 특수악기, 타악기 등을 사용하여 상황에 따른 감정을 배가시켰다. 특히, <십장가>에서 춘향이 곤장을 맞는 장면에서 박(국악기)을 사용하여 실제로 곤장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일어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조명과 의상이 파스텔톤으로 구성되어 있어, 몽글몽글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십장가에서는 붉은색 조명을 사용하여 춘향의 심정을 표현했으며, 어사출두 장면에서는 밝은 조명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검정 계열의 조명을 사용하여 어둡게 표현함으로써 몽룡보다 변 사또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했다. 이처럼 조명은 본 공연의 각 대목에서 누구의 입장을 부각되고 있는지를 부가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각 공연 때마다 참신한 해석으로 즐거움과 신선함을 선사하는 절창 시리즈. 다음에는 또 어떤 공연으로 돌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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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키엘
- 2024.07.06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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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창4'에 대해 각 분야를 예리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해주셔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무대나 조명, 의상, 악기 배치까지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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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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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M
- 2024.09.08 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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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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