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와 나는 틴틴팅클! - 틴틴팅클!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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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팅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레용 에디션 베리. 원래는 연보라색 캐릭터가 아니다.
하루는 가르치는 학생이 내 가방을 보고 선생님 가방이냐며 물어왔다. 난 맞다고 했다. “굉장히…귀여운… 인형이 달려 있는데요.” 중간중간 느껴지는 발화의 버퍼링을 모른 체하고 태연하게 답했다. “응, 선생님이 좋아하는 인스타 웹툰 캐릭터 상품이야.” 그날 가방에 달려 있던 건 카카오 프렌즈 틴틴팅클 팝업스토어에서 팔던 인형 키링으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베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친근하고 이입하기 쉬워서이다. 베리에게 나이 차 나는 언니바라기 동생 ‘미니’가 있는 것처럼, 나도 터울 있는 동생을 둔 언니여서 그렇다. 그리고 베리가 노는 모습이나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면 베리와 나의 유년이 비슷한 시간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만화에서 친근함을 느끼는 독자가 나 하나만은 아닌 듯하다. <틴틴팅클!> 단행본의 카피 문구는 “너와 나 모두의 이야기”로, 그 안에 이 만화의 정겨운 셀링포인트가 담겨 있다. <틴틴팅클!>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엄마와 자식이 같이 읽는 만화라는 표현도 나온다. ‘초등학생 시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부모와 아이가 같이 읽을 수 있는 만화가 되었을 것이다. 고양이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틴틴팅클!>은 대략 90년대생들의 초등학생 시절을 그리고 있다. 초코틴틴과 팅클이라는 옛날 과자에서 이름을 따온 제목에서 낯익음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 만화를 누구보다 재밌게 읽을 가능성이 높은, 추억의 당사자이다.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아옹다옹 노는 모습에서 시작된 <틴틴팅클!>은 본래 캐릭터의 이름이나 장기 연재 계획이 없었지만 작가가 독자와 소통하며 장기 연재 작품으로 자리 잡은 경우이다. 소통이 즉각적인 인스타툰 연재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는 주인공 고양이인 내성적이고 소심하지만 누구보다 친절하고 세심한 틴틴이와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감 넘치며 쾌활한 팅클이, 그 둘의 가족, 같은 학교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가족 모습을 하나씩 보여주는 것으로 펼쳐진다.
하교길 친구와의 떡볶이면 행복해지는 아직 어린 그들이지만, 등장 고양이들은 교실이나 가정에서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고민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틴틴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아픔을 갖고 있고, 입양된 팅클이는 평소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지만 어느날 문득 엄마에게 혈연이 아니어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맞벌이 가정의 맏이인 베리는 사실 마음이 여리고 자기도 아이답게 놀고 싶지만 자기만 따라다니는 어린 동생 미니에게 책임감을 느끼며 반쯤 부모 같은 역할을 한다. 콩물이의 경우 가난과 가정폭력의 위험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조연 고양이들 역시 예전에도 현재에도 모두 교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집에서 공부에 대한 기대가 높은 반장 고양이 석기는 쉬는 시간에 친구랑 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완벽주의로 힘들어한다. 밥을 복스럽게 잘 먹어 살집이 있는 편인 마로는 반 티를 주문하거나 신체검사를 하는 등 반 친구들 앞에서 자기 몸을 의식하게 될 때 남몰래 속상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예술에 천재성을 보이는 시루는 타고난 예민함 때문에 늘 털이 살짝 곤두서있다. 설기와 단짝인 임자는 삼형제 중 한 명이기에 부모님의 세밀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 각자의 사정 때문인지 <틴틴팅클!>은 분명 귀여운 만화지만 마냥 해맑지만은 않다. 고양이 초등학생들의 아기자기한 일상 이야기를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찡하고 눈가가 붉어질 때가 있다. 정 든 고양이들의 눈물은 이제 생판 남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계 방향으로 틴틴이, 콩물이, 팅클이.
눈물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인공 틴틴, 팅클이와 종종 삼총사처럼 노는 콩물이의 눈물이다. 마로가 자기 몸을 의식하게 될 때면 부끄럽고 서러워지듯이, 콩물이는 자기 가난이 드러날 것 같을 때면 부끄럽고 서러워진다. 그러나 콩물이에게 친구들 앞에서 가난한 집안 형편이 드러나는 것보다 힘든 것은 자신의 가정사에 얽힌 감정이다. 콩물이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이유는 폭력성 있는 아빠와 그 점을 모른 채 일찍 결혼해버린 엄마의 고통 때문이었는데, 콩물이도 모르게 화해한 부모는 어느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와 콩물이를 데려가려 한다. 자신의 거취를 자기 의사대로 정할 수 없는 것에 콩물이는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지만 할머니께 짐이 될까 봐 억지로 아빠를 따라간다. ‘이 사람도 변했어’라는 말과 달리 부모님은 여전히 싸우고, 콩물이가 준비물 살 돈이 필요해 용돈 얘기를 꺼내면 아빠는 고함을 지른다. 집안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수도 없다. 숙제를 다 못 한 자신에게 할 수 있다며 응원하는 틴틴이를 보며 콩물이는 ‘틴틴이는 나랑 상황도 다르면서’라며 미운 마음을 먹는다. 그러다 곧바로 자책한다. 아직 보송하고 따스한 보호를 받아 마땅한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감정적 부침과 혼란을 겪는 콩물이가 유독 안쓰러워졌던 부분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상황에서 열심히 해 보자며 의지를 다지는 콩물이지만 애써 다진 의지는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발소리만으로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알고보니 그것은 이웃의 발소리였지만, 그 작은 소리에도 헐레벌떡 놀라는 자신과 엄마를 보며 콩물이는 꾹꾹 눌러왔던 절망을 터트린다. “변하지 않아. 아빠가 있으면 그대로야. 엄마만 희생하는 게 아니야. 제발 나 좀 봐 줘….” 돈은 필요 없으니 우리끼리 형편에 맞게 살자는 자식의 말에 엄마도 아빠를 떠날 결심을 하고, 마침내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콩물이 셋이서 오손도손 살게 된다.
콩물이는 비로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지만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린다. 콩물이의 완벽하게 행복한 어느 여름날을 그린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는 현관 대문 틈 사이로 할머니댁까지 찾아 온 콩물이 아빠의 반점 무늬가 어렴풋이 보인다. 캐릭터 소개에 나온대로 콩물이는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가진 고양이’지만 콩물이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위험 인물이 혈연이라는 점은 웬만한 성인에게도 버거운 일일 것이다.
현실이 녹록지 않은 콩물이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에서 오는 충족감과 친구들의 존재이다. 나들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날,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하지만 이내 집 마당이 벚꽃 명당임을 알게 되고 할머니 무릎에 누워 꽃을 즐길 줄 아는 마음. 친구네 집 파티에 놀러갈 때 미처 과자를 사 가지 못해 미안해 하는데, 틴틴이가 웃으며 다른 친구들이 가져 온 과자가 이미 많다며 답하자 콩물이는 ‘너희는 항상 나를 채워주는구나’라고 느낀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마음까지 쪼그라들 수 있는 상황이지만, 콩물이는 일상과 주변 관계에서 자신을 채워주는 것을 먼저 느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심지가 곧은 아이다.
본인의 강한 마음과 충족적인 교우 관계 외에도 콩물이를 지지해 주는 또 하나의 버팀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가족의 울타리이다. 퇴원을 앞둔 할머니의 우산을 챙겨 드리기 위해 비 오는 날 혼자 먼 병원에 간 콩물이는 강풍에 우산도 잃어버리고 비에 쫄딱 젖은 채로 간신히 병원에 도착해 로비에서 울어버린다. 병원에서 콩물이를 발견한 엄마는 콩물이를 다독인다. “콩물이가 할머니의 손주면 엄마는 할머니의 딸이잖아. 혼자서 무리하지 않아도 돼.” 때로는 원망스럽고 힘들어도, 어느날은 애틋하고 먹먹해 하느라 다른 의미로 힘이 들어도, 물 샐 틈 없는 요새처럼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가족의 사랑은 콩물이가 놀라거나 서러운 마음을 뉘일 곳이 되어준다. 비록 보호자인 엄마와 할머니가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아픈 손가락’으로 느껴질 때가 있더라도, 콩물이에게는 엄연히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살다보니 꼭 내리사랑에만 아픈 손가락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콩물이는 어린아이다. 가난과 가정사 때문에 또래 친구들에 비해 깊은 고민을 하고, 나이 들어 몸 곳곳이 아픈 할머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직 책임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어른은 아니다. 순수하고 무력해서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상처 입지만, 반대로 순수하고 여리기 때문에 눈물 자국을 달고도 금방 다시 웃을 수 있다. 자신에게 해로운 이와는 멀어지고, 자신의 내면을 채워주는 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연재 초반에는 이렇다 할 친구가 없던 콩물이는 이제 틴틴이와 팅클이라는 단짝 친구를 얻었다. 학교나 친구 집에서 즐거운 일을 할 때면 다른 가족들을 두고 나만 행복해도 될까 죄책감 어린 고민을 하지만 그래도 단체 생활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해나가고 있다. 그렇다. 아이는 자라고 있다. 자기 자신만의 균형 감각을 찾아가면서. 자기 안의 빛을 따라가면서.
<틴틴팅클!>을 만든 난 작가는 작품 안에 반 아이들의 수만큼 다양한 기쁨과 고민을 심어두었고 그것으로 나는 내 유년의 어떤 부분이 위로받는 것을 느낀다. 이 만화의 독자 중 누군가는 콩물이의 모습으로부터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틴틴이나 팅클이에게서 자기 어릴 적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석기나 마로, 임자에게 공감할 수도 있다. 주인공부터 단역 캐릭터까지, 모두 특유의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개개인의 서사를 주는 데에서 이 만화의 강점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였고, 이 여러 고양이들 틈에서 어린 나를 찾아 유년의 즐거움을 되새기거나 주눅 들어 있던 작은 어깨를 비로소 도닥여줄 수 있으니까.
성인이 되니 옛날에 같이 자라고 교류하던 친구들은 이제 다 먼 지역에 흩어져 산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같이 하교하는 친구에게 바로 털어놓을 수 있고, 저물어가는 오늘이 아쉬워도 내일이면 또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줄 친구를 향해 잘 가라며 인사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잘 가’ 라는 말이 ‘내일 봐’라는 날개를 달고 한없이 가벼울 수 있었던 그때를 지냈던 우리에게, 지금 한창 책가방을 매고 친구들과 등하교길을 걷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혹은 그런 아이를 보살피고 있는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아이였고 아이인 모든 이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틴틴팅클!> 덕질 글 1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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