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픔이 가득한 기억임에도 마주해야 하는 이유 – 연극 ‘새들의 무덤’ [공연]

글 입력 2024.06.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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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서울연극제의 공식 선정작인 연극 <새들의 무덤>은 너무나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한국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현대사를 ‘오루’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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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분간 마주한 오루의 삶은 아픔이 가득했다. 해방 이후부터 군사정권 시절, IMF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까지 한국의 아픈 현대사를 모두 겪었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다.


먼저 1막은 오루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오루가 다섯 살이었던 해방 이후, 오루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있던 날로 돌아간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일보다 일본인 지주의 귀신이 붙은 돼지의 저주를 푸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렇게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어린 오루가 돼지를 죽이게 된다.


그렇게 다섯 살이었던 시절을 지나 오루는 열세 살이 되었고, 그 시기에는 유신정권 반대운동으로 인해 수배 중이었던 성규가 마을 누나였던 종숙과 함께 새섬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새섬으로 가면 절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미신이 있었다. 실제로 새섬으로 향했다가 많은 마을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끝내 종숙과 성규는 새섬으로 도피하기로 하고, 오루도 죽은 부모가 새섬에 묶여 있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따라간다. 결국 종숙과 성규는 도피에 실패하고 동반 죽음을 택한다. 반면, 오루는 새섬에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살아 돌아온다.


이후 오루의 삼촌인 수필의 주도로 마을의 항구개발을 위해서 굿판을 벌이게 되는데, 오루의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기에 혼건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수필은 혼건지기를 반대하고 총까지 든다. 결국 혼건지기를 위해 산 제물이 필요하다는 말에 오루는 부모님을 위해서 본인이 바다에 뛰어들기를 택한다.


어떤 미신에 대한 강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불러오는 두려움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신 체제의 독재 속에서 사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나았던 종숙과 성규의 모습을 통해 보는 독재 정권의 악랄함, 죽은 이들을 생각하기보다 항구개발이 더 중요했던 수필의 모습을 통해 보는 산업화의 이면까지. 이처럼 오루는 여러 변화 속에서 혼란스럽고도 잔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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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이 끝나고 이어진 2막은 오루의 청장년기 이야기를 보여준다. 먼저 오루는 제대를 하고 서울에 상경한 후 우연히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판수 삼촌을 만나고 그 집에 얹혀살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항구개발에 앞장섰던 수필을 비난했던 판수가 빈민촌 철거에 앞장서고 자본가가 된다.


오루의 외할아버지인 수학이 마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려 했던 모습을 비난했던 수필이 군부와 손을 잡고 항구개발에 앞장서게 되고, 그러한 수필을 비난했던 판수가 88올림픽 시절 빈민촌 철거에 앞장서게 된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역이었던 사람이 악역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오루는 판수의 집에서 나와 배손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미싱 기술을 배워 함께 공장을 운영한다. 둘은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출산까지 앞두게 된다. 그러나 둘이 열심히 키워 온 봉제공장이 IMF로 인해 한순간에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다. 출산을 앞둔 배손과 오루에게 은행은 압류를 미룰 수 있는 조건으로 노조를 설립하려는 공장의 일원인 태봉을 해고하고 공임을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한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오루는 배손의 출산을 지켜보면서 결국 태봉을 해고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태봉은 오루를 원망하기는커녕 이해한다면서 끝까지 배손의 출산을 돕고 떠난다. 그렇게 압류를 막고 오손과 도손이라는 쌍둥이가 태어난다.


여기서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에도 압류를 진행하려는 은행의 모습이 참 잔인하고 악랄했다. 인간보다 자본, 권력이 우선시되는 모습에서 당시 IMF 시기에 얼마나 비인간적인 상황들이 펼쳐졌었는지 알 수 있었던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2014년, 오루와 배손은 이혼하고 배손이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영세 공장을 운영하던 오루는 태봉의 소개로 용접 일을 시작했지만, 태봉이 사고로 추락하여 죽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배손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다가 딸이 찾아온다.


쌍둥이 중 한 명인 도손은 아빠에게 사랑 표현도 적극적이고 당차면서도 아주 밝은 아이다. 그리고 편의점주가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서 항의하기 위해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오루는 그러한 도손을 말린다. 이후 도손과 정반대의 성격인 딸 오손이 찾아와 오루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하는 동시에 모진 말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날이 오루가 도손과 함께 한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리고 만다. 도손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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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루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새들의 무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저 한국의 현대사 속 비극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루의 과거 이야기는 평범하게 오루가 과거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오루가 어린 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되고 그 새를 따라가면서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오루의 이야기, 과거의 기억이 눈앞에서 하나둘씩 펼쳐진다.


오루는 그 기억을 마주하기 싫어했다. 굳이 비극이 가득했던 과거를 떠올릴 이유가 없었고,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그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이 정답일까? 그것이 정답이기 이전에 그 기억들을 정말 잊어버릴 수 있을까?


오루는 어린 새에 이끌려 과거의 기억들을 계속 마주하다가 마지막에 딸과 함께했던 기억을 마주하는 것은 피하려 한다. “새야, 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뭘 더 보여주려고? 뭘 더 떠오르게 하려고?”라면서 딸을 잃어버린 슬픔은 떠오르고 싶지도 않았기에 계속해서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끝내 그 슬픔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슬픔이 가득한 기억은 오히려 오루가 진정으로 딸을 잘 보내주고, 딸과 함께해서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갈, 살아갈 희망을 얻도록 한다.


<새들의 무덤>은 아무리 아픈 기억일지라도 그 기억들을 마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비극만 있지 않을 것이다. 분명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던, 소중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당장은 앞으로 살아가려면 과거의 기억을 잊고 외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외면은 본인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가끔이라도 아픔이 있지만 더 들여다보면 보이는 소중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면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모습, 오루를 과거의 기억으로 이끈 어린 새의 모습, 장면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전통연희를 더한 안무, 기억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돌아가는 회전 무대, 타악기의 라이브 연주 등 표현 방식과 연출이 아주 독특했고, 한국의 현대사임을 더 느끼게 했다.


더불어 오루의 이야기가 중심이긴 하지만, 곳곳에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비추면서 한국의 현대사는 개인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임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오루처럼 한국 현대사의 대부분을 겪어 온 아버지라면 본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고, 큰 위로를 얻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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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오루에게 어린 새는 말한다. 가끔 하늘을 보라고. 그 말을 끝으로 연극의 초반과 똑같이 무대 뒤의 창이 열리면서 외부 전경이 보인다. 이는 오루가 다시 현재로 돌아왔음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제는 과거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전처럼 마냥 아픔에 갇히지만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한국의 현대사는 한이 가득했지만, 우리는 더욱더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또 찾아올지 모르는 한을 극복할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그 기억을 마주해야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가끔 하늘을 보며 아픔이 가득했음에도 소중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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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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