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화예술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혹자는 아시아의 오페라인 경극, 문화대혁명 시기의 상흔 문학을 떠올릴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예능을 그대로 뺐겨갔다는 논란이나 시종일관 천방지축으로 그려지는 드라마속 여주인공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벌써 햇수로 5년간 중국어 내지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도 이 이외의 생각은 잘 나지 않는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중문 문화예술'이라는 피자가 있다면 전체를 아우르는 치즈라기 보다 집어올리면 혼자 드문드문 올라가 있는 올리브 같은 것으로 크게 주의를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중국현대사회 개관을 공부하면서 중국의 예술 (좁게 말하자면 미술) 에 대해 문득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국공내전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천안문 사태 등은 넘겨짚어도 예술가들이 고무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이념의 광풍이었다. 히틀러의 게르니카 학살이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로 이어져 사회를 비판했던 것 처럼, 참상의 순간들을 직접 겪은 중국 현대예술가들의 목소리는 그 울림부터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민족혁명의 도구로서, 정치적 선전도구로서 제 소명을 다하지 못했던 마오쩌둥 치하의 예술은 덩샤오핑 집권이래 아방가르드, 즉 전위적인 형태로 중국 현대미술의 포문을 연다. 물론 1920년대 유행한 서구의 모더니즘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중국 전통에 대한 고찰과 재해석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모든 방면에서 과거를 청산하고자 했던 의지는 강한 인상을 준다.
특히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장샤오강, 웨민쥔, 펑리쥔, 쩡판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치던 문화대혁명 시기의 아픔을 다룬 작품들로 하여금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경매시장에서, 고가의 낙찰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다음은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으로 거론되는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혈연-대가족 No.3, 캔버스에 유화, 179X229cm, 1995
장샤오강 张晓刚
장샤오강은 1958년 출생으로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8살의 나이였다. 대표적으로 우연히 발견한 옛 사진으로 부터 영감을 얻은 '대가족' 시리즈가 있다. 회색 배경에 크게 배치된 인물과 붉은색이 눈에 띈다.

사람과 동물사이
웨민쥔 岳敏君
웨민쥔은 1962년 군인가정에서 출생했다. 톈진 석유 공장에서 일을 하며 평범한 삶을 영위하다가 전업 예술가의 꿈을 안고 회화과에 입학하였다. '85미술운동'에 영향을 받고 또한 동참하였다. '냉소적 사실주의자'로 대표된다. '웃음시리즈'가 대표작이다.

유화시리즈 2 No.2, 1991~1992, 캔버스에 유화 200X230cm
펑리쥔 方力钧
펑리쥔은 1963년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대머리'이다. 작가 자신의 분신이며, 사회에서 느끼는 고독감 혹은 중국 현대사회에 대한 반항을 담고 있다. 웨민쥔과 함께 냉소적 사실주의의 대표격으로 불린다.

무제-2018, 2018, 캔버스에 유채, 250.2X350cm
쩡판즈 曾梵志
쩡판즈는 1964년 우한시 출생이다. '85미술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모더니즘을 접하게 되었다. 위 세 작가가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을 한 것과 다르게 쩡판즈는 2005년 이후 중국 전통화의 선묘법으로 변화하였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중국의 역사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나니 이들의 작품이 주는 둔탁한 울림은 먼 나라의 이야기인 서양의 고전, 중세 작품과 비할바가 못된다. 르네상스도 문화대혁명도 직접 겪어보지 못한것은 매한가지이나 그래도 전공자로서 쌓아올린 야트막한 지식의 언덕에 기대어 보니 예술이란 역시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것임을 깊이 체감하게 된다.
반대로 서구의 역사를 꿰고 나면 내가 이제껏 알고 있던 작품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지, 내심 기대감도 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