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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청년을 기리는 진심이 나에게 닿았다. 이 시를 읽고 작가의 모든 시를 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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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게 비극을 흘려보내는 사회

 

인터넷 검색창에 ‘사망 사고’를 검색해 보았다. 일주일 간 4명의 군인이 죽었고, 올해 1분기 일터에서 138명의 노동자들이 숨졌다. 누군가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뺑소니로 목숨을 잃었고, 바다를 보러 가다 도랑에 추락한 내 또래가 세상을 등졌다. 기사에 달린 댓글은 가관이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추모하기는커녕, 누가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화제가 된 사건에는 정치싸움과 젠더 갈등으로 댓글이 아수라장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건에는 말 한마디 없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따뜻한 사회는 환상이 돼버린 걸까. 우리의 사회는 아무렇지 않게 비극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아닐까.

 

 

일상적인 비극을 차마 흘려보낼 수 없는 시인의 마음으로

한 줌의 애도를 그들의 손에 쥐여주며

 

2010년 9월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추락사한 사건이 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당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룬 기사의 한 댓글이 큰 화제가 되었다. 세상이 누군가의 비극을 남일로 지나칠 때 시인 제페토는 댓글에 진심을 담아 청년을 추모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닿았다. 댓글의 추모시는 다양한 경로로 세상 이곳저곳에 퍼졌고, 덕분에 이 사건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 쇳물은 끝내 쓰이지 않았다. 시인은 이 기사를 시작으로 댓글 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어린 딸을 잃어버린 부모와, 철판에 깔려 숨진 조선소 노동자와, 인도를 덮친 택시에 목숨을 잃은 행인과, 훈련 중 숨진 군인을 비롯해 우리가 잃은 너무 많은 사랑들을 애도한다. 가난이 대물림 되는 사회, 학벌에 미친 사회를 꼬집기도 하고, 아름다운 노을빛에 대한 감탄을 표현하기도 한다. 눈뜨고 볼 수 없는 한심한 댓글들 가운데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다. 작은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비극은 무거운 것임을, 모든 아름다움은 기적인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지금도 하늘 아래 살아 숨 쉴 기석이에게

 

모든 시가 마음을 움직였지만, 그중에서도 이 시는 답답할 만큼 목구멍을 뜨겁게 달궜다. ‘6명에 장기기증 새 삶을 주고 고1 기석이는 그렇게 떠났다’라는 기사에 달린 시는 <여생>이었다. 건강했던 아들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사 판정을 받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들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장기기증을 선택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떠났다. 모두가 그 아이를 그저 떠나보내는 것이 안타까워서였을까. 시인은 기석이에게 여생을 선물했다.

 

 

잠시 헤어지는 것일 뿐

다시 만날 것을 믿자

 

붐비는 종로 거리에서

결혼 앞둔 카센터 청년의 콩팥으로

동갑내기 소녀의 심장으로

붙임성 좋은 할머니의 췌장으로

 

설령 알아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자

흩어진 파편일 뿐이라는

속상한 생각도 하지 말자

 

그래야 하는 까닭은

마지막 날까지 함께 살아

울고 웃을

그대의 여생이기에

 

<여생>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한다.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지만, 떠나보내기엔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다. 기석이의 아버지는 기석이의 장기가 이식되어 못다 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라도 꽃 같은 아들과 하늘 아래 함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이 훤히 보였나 보다. 그래서 등 떠밀려 세상을 뒤로한 청춘과 아이를 보낼 수 없는 아버지에게 명분을 남긴 게 아닐까. 세상 어딘가에서 울고 웃으며 잘살고 있다고. 기석이 덕분에 이별을 미룬 어떤 이들과 살아 숨 쉬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명분을 남기며 시인은 그들을 위로했다. 기석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버지의 참담함과, 장기이식을 받은 이들의 기적 같은 하루와, 시인의 담담한 위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시인의 바람처럼 그저 말 못 하는 짐승처럼 우리를 위해 울었다.

 

 

무심한 사회에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이 책을 읽으면 시인이 한자 한자를 얼마나 신중하게 썼는지 느껴진다. 실제 사건에 글을 쓰는 일이기에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혹여나 상처를 더하지 않도록, 자신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했을 것이다. 책의 서문에서 시인은 무엇보다 자신의 글쓰기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고 싶다고 했다. 시인의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 그저 지나가는 이의 감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삶을 송두리째 잃은 누군가의 동화줄 같은 거 아니었을까. 지나가는 노을이 실실 웃으며 되새기는 칭찬이었고, 누군가는 나를 사랑이라 불러주었다는 것에 안심하며 먼 길을 떠났을 것이며, 그 쇳물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끔찍한 비극을 막았고,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고이 접어 따뜻한 기운을 세상 곳곳에 날려보냈다. 세상에 무심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담담한 시인의 한마디가 그들의 심금을 울리기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를, 그들이 세상을 온전히 느끼는 하루를 살아가도록 하기를, 그들이 이 책을 읽고 다른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기울임체는 책의 일부를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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