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6.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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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바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은 후에 남는 질문은 딱 한 가지이다. 그래서 고도가 도대체 뭔데?

 

 

 

1. '고도'에 대하여


 

작품 안에서 고도는 여러 가지 은유와 암시를 통해 묘사되지만, 그 모든 단서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진 않는다. 그래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검색을 해보니, 작가조차도 “고도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소설 안에 썼을 것”이라며 명확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자체적으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고도란,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자 삶의 목표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것을 욕망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겐 그게 좋은 직장일 수도 있고, 좋은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행복이나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욕망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인 것이기에, 절대 완벽히 충족되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그 모든 욕망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반복되는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반복의 변주'와도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그 과정에서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쭉 지켜보는 독자들은, 결국 '존재의 무의미함'이라는 도착지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고도' 그 자체보다도, '기다림'의 과정을 함께하는 두 주인공의 관계성이 인상적이었다.

 

 

 

2.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



[21p]

에스트라공 (무서운 현실로 되돌아오며) 좀 잤다. (나무라듯) 왜 넌 잠도 못 자게 하는 거냐?

블라디미르 외로워서.


[23p]

에스트라공 화났니? 미안하다! 이봐 디디, 손을 좀 내놔봐! 날 좀 껴안아다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같이 있을 때마다 투닥거리며 싸우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아끼고 의지한다.

 

[24p]

에스트라공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

블라디미르 너 해봐라.

에스트라공 네가 먼저.

블라디미르 아냐. 네가 먼저 해봐.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네가 나보다는 가벼우니까.

에스트라공 바로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블라디미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에스트라공 그럼 내 설명해주지. 나뭇가지는... 나뭇가지는... (화를 내며) 네가 이해를 해보려고 해야 할 것 아냐!

블라디미르 네 설명을 들어야만 알겠다.

에스트라공 (애를 쓰며) 고고는 가벼우니ㅡ나뭇가지가 안 부러져서ㅡ고고가 죽고ㅡ디디는 무거우니까ㅡ나뭇가지가 부러져서ㅡ디디만 남는다. 그러니...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이건 도대체 무슨 대화인 건가 싶겠지만, 대충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고도가 오지 않으니 그냥 나무에 목을 매자는 에스트라공은, '자신이 더 가벼우니까' 블라디미르가 먼저 목을 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가벼운 고고(에스트라공)가 먼저 목을 매면 나뭇가지가 안 부러져서 진짜 죽고, 무거운 디디(블라디미르)만 살아남아 혼자 이 기다림을 견뎌야 하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나도, 타자도 불완전하기에 모든 존재는 '열려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존재, 즉 'being=opening'이고, 그 자체로 이미 공동체(being-with)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독일계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실존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상호인간적인 결합, 즉 사랑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나는 이 두 주인공의 관계가 바로 '본질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존재의 결합이라고 보았다.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이다.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질문을 던져놓고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뜬금없이 화제가 전환되며, 알 수 없는 대사들을 중얼거린다. 때문에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98p]

에스트라공 건드리지 말라니까! 묻지도 말고! 아무 말도 말고 그냥 옆에 있어만 줘!

 

 

 

3.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무튼, 내가 이 작품을 통해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목표'가 아닌 '과정'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주인공들이 바로 고도와 만났더라면,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모든 욕망이 즉각적으로 충족된다면? 우리의 고유한 이야기들은 쓰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최근에 인상 깊게 본 구절 중, '신은 천국과 지옥을 따로 설계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 욕망의 허구성과 존재의 본질적인 공백은 우리를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지만, 역으로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욕망이 애초에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라면, 삶의 맹목성에서 벗어나 더욱 다채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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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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