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입안에 퍼지는 여름 그 맛, 숲과 잠 [도서]

글 입력 2024.06.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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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문장결이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숲과 잠을 좋아하는 작가의 애정이 투영된 제목과 어울리는 사진과 글들이 수록돼 있다. 마치 초여름을 알리는 밤꽃 내음 같다. 3년 만에 재개된 해외여행의 생경함처럼 상상 속에서나 볼 듯한 집과 자연이 가득하다. 이런 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막연하게 떠올려보는 그곳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아니, 이걸 당신만 안다고! 부러운 마음에 질투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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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색과 맛이 한데 어우러져 초록빛으로 태어난 듯한 문장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뭉친 근육이 말랑해지며 한풀 꺾인 긴장은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휴식의 느낌을 끌어냈다. 어여쁜 언어만 골라 빚어낸 문장은 시를 연상케 한다. 일상의 풍부한 묘사는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치 느리고 보잘것없는 일본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스웨덴을 다시 방문하면 호숫가 작은 집에 머물고 싶다던 작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자마자 꿈속의 그 집을 예약한다. 저녁이 되면 사방이 어둠으로 둘러싸이는 집. 근방에 사람 기척이란 들리지 않는 고요하며 아늑한 외딴집에서 총총히 번진 별들을 바라본다. 희미한 여름 내음이 사방을 감싼 곳에서 '숲과 잠'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작은 마을의 정취를 즐기는 것 같다. 호숫가 작은 집부터 귤밭에 빙 둘러싼 집. 세월이 느껴지는 카페와 빈티지 마켓. 이 속에서 '사는 여행'을 하며 여행이지만 일상을 특별히 만끽한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차분한 분위기를 누리며 잠시 잊었던 인생의 선택지를 되돌아본다.

 

우리에겐 빛나는 조각들이 있다. 기억에서 비롯된 추억의 향기가 자연의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친다. 찡한 감각에 다소 놀라지만 이내 익숙한 냄새임을 깨닫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가만의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천천히 눈을 뜨면 모든 것들에 깊이 감동할 수 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사소한 것은 단순하지 않다고. 나의 마지막 여행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 보니 참으로 오래된 듯하다. 할 일에 치여 앞만 보고 달렸던가. 아마 그랬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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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우리가 들이쉬는 숨 속에는 숲 냄새가 가득했다"는데 작가가 마신 숲 냄새는 어떤 향기와 맛이었을까.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 공원에서 전해지는 밤꽃 내음과 비슷했을까, 아니면 이슬비에 젖은 풀 내음에 가까웠을까. 찰나의 순간,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마법 같은 숲에서 낭만이 혈기 왕성하게 팔딱팔딱 뛰어다닌다.

 

그가 첫날 만난 호숫가 작은 집은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집을 그려보게 한다. 기척 없는 밤 풍경엔 달을 품은 호수와 일렁이는 윤슬, 간간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들어 있다. 내가 당장 저 사진 속에, 문장이 표현하는 그 장소에 직접 냄새를 맡고 풍광을 보고, 감탄하며 짜릿한 소름을 느끼고 싶어졌다.

 

호숫가 작은 집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 현대인에겐 꿈과 같은 일이다. 아침에는 호수에서 수영하고, 오후에는 산책하며, 저녁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단조로운 하루. 때로는 이웃들과 함꼐 식사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하루. 요즈음 내 일상에는 없었던 삶이다.

 

사는 여행은 여행에서 일상을 체험하게 한다. 아침에 가스 위에 올린 주전자에서 들리는 삐이- 김빠지는 소리, 커튼을 스치는 바람과 공기에 배인 햇살 내음, 짙어지는 햇볕 사이로 올려진 달콤한 시나몬 롤케이크와 라테 한 잔까지. 나의 빈약한 어휘로는 담을 수 없는 감정이 펜촉을 아깝게 했다.

 

꿈속의 집 같은 곳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양을 상상한다. 그 끝엔 유년의 추억이 닿아 있다. 여행을 일상처럼 영위하며 매일의 단순한 선택이 나를 구성하고 만들어 간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행은 익숙함을 특별하게 여기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마법 같다.

 

*

 

여름의 청량함을 좋아한다. 무더위와 청량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지만 푸릇한 색채로 물든 자연의 것들이 나를 청량하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단순하겐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부터 시작해 가벼운 옷차림과 시원한 이미지, 쾌청한 날씨와 짙은 바다와 하얀 포말의 기가 막힌 조화까지. 나는 이 모든 걸 사랑한다.

 

찝찝하지만 촉촉한 물성을 여실히 기억할 것이다. 여름의 맛들이 물씬 뭉키는 책들을 쌓아두고 읽어야겠다. 이미 시작된 여름을 무기력하게 보내기보다 맘껏 즐겨야겠다. 입안에 퍼지는 여름의 그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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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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