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노란색과 샛노란 색이 다르거나 하늘색과 소라색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이, 언어에 따라 세세한 차이를 느낄 수도 있고 다른 대상을 하나로 눙쳐버리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언어의 예민함을 느꼈던 건,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배우 김지원)이 구씨(배우 손석구)에게 “날 추앙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날 사랑하거나 애정하거나 나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날 ‘추앙’하기를 바란다며 낯선 단어를 꺼내오는 순간, 화자가 말하려는 바의 뾰족함이 느껴졌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유를 찾지 않고 그저 지지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단어로는 포용할 수 없는 뾰족한 단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것처럼 우리는 어떤 언어를 찾곤 한다. 여기에 그렇게 날카롭고도 다정하게 다듬어진 언어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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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작가 존 케닉은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다.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있지만 아직 이름은 없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명명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는 존 케닉의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하여 유튜브 채널 로 발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책은 그 단어 사전을 옮겨 담았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몇 단어를 꼽아보려 한다.

 

 

벌처 쇼크(vulture shock) (47p)

 

[명사] 어느 낯선 나라를 아무리 여러 날 동안 돌아다녀도 딱히 그곳에 발을 디디지 못하는 것만 같은-그러기는커녕 이국적인 풍물에 현혹되어 그곳의 문제와 복잡함과 시시함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디를 가든 등에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탱크에서 산소 대신 ‘추측’을 들이마시며 암초 위에 뜬 잠수부처럼 문화 위에 높이 떠 있는 것만 같은- 성가신 감각

 

[어원] vulture(높은 곳에서 사냥감 위를 맴도는 독수리) + culture shock(익숙하지 않은 다른 문화에 적응해야 할 때 느끼는 충격)

 


그러니까 내가 여행을 아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해외여행을 가거나 국내 여행을 갈 때면 뭘 경험할지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숙소를 고르고 식당을 고르고 관광명소를 선택한 후 어드벤처를 고르게 되는데, 이 모든 일들이 어느 순간 새로운 경험이라기보다 짜인 관광 루트를 소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관광지에서 남들과 그다지 다른 경험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여수에 가서 남들처럼 딸기모찌를 사 먹고 쑥 아이스크림 인증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동백섬에서 거의 피지도 않은 동백꽃을 찾아서 착즙을 하고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아 여기가 여수로군, 하고 생각한다. 성시경의 '먹을텐데' 같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은 맛집 채널에 나온 식당 앞서 줄을 서서 남들이 인증한 맛집의 음식을 먹으며 아 역시 이 맛이지, 하면서 만족하는 등 우리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려고 이곳에 온 것 같다. 가끔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수에 왔으면 이건 해야지.” 이게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남들이 한 경험을 똑같이 또 하는 게 목적이라니! 여행지에서 그 지역의 특색, 날 것의 모습, 일상적인 사사로움은 모른 채 그냥 관광만 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조금 슬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떠난 여행에서 꼭 뭘 하고 뭘 먹어야만 즐거운 건 아니기도 하다. 그냥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운 것. 그리고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좌충우돌하며 벌어지는 상황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현지 사람들의 삶을 추측하고 뭔가를 배워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겉핥기로나마 경험하고 소비하며 함께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쌓는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또 나름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라이코틱(licotic) (35p)

 

[형용사] 대단히 놀랍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명반, 좋아하는 식당, 친구가 운 좋게도 처음으로 보게 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친구에게 애탈 만큼 흥분되는 마음으로 소개해 주고는 당연히 경탄이 터져 나오길 기다리며 계속해서 친구의 얼굴을 살피지만 그 모든 작품의 결점이 처음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깨닫고는 움츠러들 뿐인.

 

[어원] 고대 영어 licodxe[그것이 (당신을) 기쁘게 했다] + psychotic(정신병을 앓는)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오타쿠는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사람”이라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밈이 있다. 그런데 나는 오타쿠가 아닌 것 같은 게, 쉽사리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너무 흔한 것일 까봐 걱정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남이 보기에 그다지 멋지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서, 또 나의 얄팍한 애정이 드러날까 봐 (소위 말하는 ‘덕력’이 부족하다는 마음) 이 세 가지 때문에 나는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던 때, ‘배구’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와 같은 나의 핵심적인 관심사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처럼 나의 취향을 이야기 할 때가 오면 왠지 움츠러들게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에 관한 토크에서도 기를 못 폈고 좋아하는 책에 관한 토크에서도 살짝 작아졌다. 나보다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한 덕질러들 사이에서 내 취향이 작아 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신나서 얘기를 했는데 떨떠름한 반응이 오면 내가 너무 움츠러들 것 같았다.

 

근데 애초에 말해놓고 반응이 별로일 때면 '라이코틱'을 조금 느끼다가도 오히려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왜 별로야?” 하고 그 이유를 듣고 상대의 취향도 새로 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취향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정말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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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외에도 많은 단어들이 있었는데 내가 특히나 공감했던 슬픔은 위와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작업이 되게 의미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우울한 사람에게 감정 일기를 쓰라는 조언을 하는 것처럼, 감정을 언어화하는 건 치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모호하고 금방 흩어져 버려서 명확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또한 공적인 상황에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감정이 올라오는 걸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우울함이나 슬픈 감정이 올라왔을 때 이를 글로 적으며 언어화하고 그 정체를 명확히 하다 보면 우울이 덜해진다는 것이다.

 

그 감정이 너무 거대한 것처럼 착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체모를 감정에 휩쓸리는 걸 두려워하지만 이것이 ‘이모독스’(주위의 모든 사람과 영원히 조화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 낮잠 시간에 공포를 느끼고,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대화를 비판하고, 댄스 클럽에서 상념에 잠기는 경향이 있다) 라는 단어로 정의된다면, 이게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덕분에 스스로를 너무 낯설게 여기지 않게 되는 듯하다. 나와 같은 마음을 보편적으로 느끼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구에 불시착한, 21세기에 덜 적응한 사람이 아닐 수 있으니까. 이런 위로를 가득 받으며 책을 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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