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미도리 작업실> 미도리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미도리작업실에서 미도리를 맡고있는 미도리입니다. 어느덧 가오픈 날짜까지 이틀 남짓 남았어요. 시간 정말 빠르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중학교 때부터 몇 번이나 다시보기를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주 보고 있는 영화가 있어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라는 영화인데요. 주인공 스즈메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러던 어느날 100개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전봇대 밑에 붙어있는 작은 전단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스파이 모집 광고 전단지였는데요. 스즈메는 그 우연스럽고도 작은 발견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그 누구보다 비범하게 보내게 됩니다.
미도리작업실에는 큰 간판 대신 가게 이름과 운영시간이 적힌 작은 스티커가 붙어져 있어요. 누군가에게 이 작은 스티커가 일상 속 작은 발견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뭐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손톱보다 작은 스파이 모집광고 발견해 스파이가 된 스즈메처럼요. 그저 그런, so-so한, 그러면서도 범상치 않을 우리들 공간!! 잘 준비해볼게요! peace!!
- 2021년 6월 25일 미도리작업실 SNS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동두천에서 미도리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미도리, 곽보미라고 합니다.
- 광고홍보학과를 다니고, 취업을 준비하시다가 한 달 만에 작업실을 여셨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다 미도리 작업실의 위치가 오랜 상가 건물 2층이죠. 쉽게 눈에 띄는 위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었을까요?
그때 당시에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굉장히 많았던 상태였거든요. 하하.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이 안 드는데, 그날따라 유독 ‘나, 해볼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장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 장소가 금전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고, 제가 살고 있던 곳이랑 가까운 장소이기도 해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평소에 사용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럼 여기서 월세를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 번 해보자’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하하.
- 별명이기도 한 미도리는 緑(푸를 녹)을 뜻하고 있다고 하셨죠. 누구나 자신의 작업들을 할 수 있는 푸른 공간이라고 소개해 주시기도 했는데, 미도리 작업실 이름의 뜻을 짓기까지 어떤 고민들이 있었을까요?
오래 고민했던 것은 아니에요. ‘미도리 작업실을 열어야겠다’고 딱 마음먹고 이틀, 사흘 만에 지었던 이름이거든요.
제가 저의 공간을 만들게 된다면 카페, 소품샵 등 하나의 카테고리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무언가를 해도 다 어우를 수 있는 공간의 정체성을 생각하다가 작업실이라는 단어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실을 열었던 시점에 제가 녹색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당시의 제가 꽂혀있었던 것들을 살펴보니 녹색의 것들이 많았죠. 사실 ‘녹색’을 표현하는 언어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한글,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고, 일본 문화를 가깝게 느꼈어요. 그래서 한자 푸를 녹(綠)을 일본어로 읽었더니 ‘미도리’라는 어감이 나왔죠.
어감도 너무 좋았고, 발음도 편했으며, 제 본명인 ‘곽보미’의 끝 자인 ‘미’와도 이어질 수 있어서 제 삶을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 녹색을 뜻하는 미도리와 앞서 이야기했던 작업실이라는 단어를 합치게 되었죠. 그렇게 ‘미도리 작업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는 <미도리 작업실>과 친구들
- 미도리님은 미도리 작업실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이 인상 깊어요. 작업실을 처음 구상하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시 여겼었나요?
그 당시에는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이미지가 찾아오시는 분들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로 보시는 분들께 잘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목표만을 갖고 운영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음악은 어떤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고, 분위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났으면 좋겠다’라는 사실만 목표를 두고 했었죠. 그래서 그 부분에 집중해서 논의하고 구성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단순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미도리 작업실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공간이었거든요. 제가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굉장히 카테고리가 다양해서 이것을 다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부분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제가 단순하게 ‘카페 사장’이라고 불리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품샵 사장’이라고 불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 사람은 카페도 하고, 소품샵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사람이야’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굉장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고를 때도, 소품을 놓을 때도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의도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느껴지는데, 하하, 그때는 이것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것 같아요. 그냥 무언가를 두고, 선택하는 과정들이 그냥 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을 풀어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처음의 미도리 작업실
- ‘보여드리고 싶은 이미지가 잘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그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였을까요?
제가 굉장히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일본 영화가 있어요.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보며 저는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가 결국 ‘일상적인 것이 가장 비일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다’라고 받아들였거든요.
그 영화가 마냥 웃긴 것도 아니고 마냥 진지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엄청 재미있는 것도, 엄청 지루한 것도 아니죠. 굉장히 애매해요. 이 애매한 느낌을 단어로 풀어내기는 어렵지만, 이 영화처럼 우리 공간에 왔을 때 카테고리화하지 않고 이 애매함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익숙한데 어디에서 보지 못한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 앞서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미도리 작업실은 단순한 카페, 소품샵 등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SNS상에서는 이런 다양한 것들을 운영하며 분명 후회하는 순간도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어떤 점이 유독 힘들었을까요?
미도리 작업실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틀린 지 가늠이 안되는 불안한 상황들이 굉장히 힘들었죠. 당시에는 계속 정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카페로 시작하고, 그 이후로는 일본에서 수입해서 물건을 갖다 놨음에도 그 당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특히 내 물건을 만들고 싶은데,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깊게 되었던 시기였죠. 그리고 그 당시의 저는 애매한 상태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그것을 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애매하다’ 생각하며 참 힘들었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평화’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미도리 작업실을 처음 시작했을 때 ‘피스 플레이스’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최근까지 모든 SNS 게시글의 마무리를 ‘피스’로 마무리 짓기도 했죠. 심지어 평화동에서 태어나셨다고. 그래서 평화라는 단어에 조금 더 연관성을 갖게 된 것 같다는 말에 굉장히 놀랐는데요. 하하. 도대체 작가님께, 그리고 미도리 작업실에게 ‘피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제가 초반에 ‘피스’라는 단어를 계속 외쳤던 것은 제 생각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무언가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항상 머물러있고 싶은 지점이 있다면 ‘중간’이거든요. 그냥 0인 상태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쁜 일이 있어도 크게 기뻐하지 않으려고 해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아니지만 금방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려고 하죠.
0인 상태가 가장 평화롭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그 상태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상태거든요. 그래서 제 상태가 마이너스일 때에도, 플러스일 때에도 0을 목표로 두며 중심을 항상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한 마음이 ‘피스’라는 단어에 많이 반영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피스 플레이스’라고 미도리 작업실을 소개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말이나 제가 보여드리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불안감을 주지도, 그렇다고 깊게 빠져들게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결국 제가 꾸려놓은 공간과 만든 작품들이 좋으셔서 오시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찾아서 나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쓰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며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이 환경에서 스스로를 찾을 수 있겠다는 마음에서요.
-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작품에 너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굉장히 인상 깊어요. 아티스트님께서는 작품이나 공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에 대해서 욕심이 전혀 없으신 것 같아요.
네. 그 부분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작업물을 보고 그냥 ‘나도 할 수 있겠다’ 정도의 에너지만 얻어 가시고, 이를 통해 이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많아진 다른 아티스트님들과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저는 이곳의 물건이나 제가 만드는 작품들이 저희를 찾아와주시는 분들과 이어지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취향을 찾고, ‘아, 나는 이걸 할 수 있지 이걸 하고 싶어 했지’를 발견하시고 그 마음을 발전시킨 다음 저와 같이 일하면 조금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분들은 또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고, 그분들과 같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거든요.
- 아티스트님께서는 아티스트님의 작품이 일종의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계시는 걸까요?
결국 제가 하는 작업 자체는 저를 위한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그런 기능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걸 중점적으로 바라고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 편이에요. 제가 원하는 ‘미도리 작업실’의 기능 중 하나가 이걸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에너지를 받아 간다는 개념인거죠. 하하. 그래서 사실 작업을 할 때에는 제 위주로 해요. 완전 제가 그때 꽂혀서 집중하고 있는 테마나 취미 같은 부분에서 영감을 많이 얻고 제작하죠.
- 그렇다면 작업을 하실 때 특히 중요시 여기는 부분도 있을까요?
일단 제가 꽂혀야 해요. 그래서 제가 작품을 제작할 때는 제가 ‘뭔가를 만들어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제가 무언가에 딱 꽂히기를 스스로 기다려주고 있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니까 ‘내가 이걸 원했던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언가 만들고 싶어질 때를 기다려주자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니, 제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상태로 존재해야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좋아하는 마음이 안 느껴질 때는 살짝 삶이 지루하기도 하고, 잘 안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 지금까지 정말 많이 제작하셨는데, 작가님께서 직접 만드신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신다면?
제가 만든 물건이 너무 많아요. 하하. 우산이 쓰고 싶을 때 우산을 만들고, 마우스 패드가 필요할 때 마우스 패드를 만들다 보니 물건 자체가 시기를 많이 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하나 소개 드리자면 <토마토 네코>라는 제가 만든 첫 캐릭터의 물건들이에요. 가장 많이 만든 물건들이기도 하죠.
제가 캐릭터마다 스토리를 만드는데, 그게 사실 다 저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토마토 네코의 경우 ‘평범함이 곧 비범함이다’라는 저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캐릭터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가 새겨져 있는 물건들이 제일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때도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 친구가 들어가는 것들은 다 마음에 들고, 그걸 중심으로 물건들이 계속 파생이 된 것 같기도 해요. 항상 제 물건의 처음은 토마토였기에 토마토를 활용해서 물건을 만들어보며 다음 물건들을 계속 이어 만들게 되었죠. 그래서 그 친구가 가장 애정이 가요.
- 작가님께서는 항상 소품을 ‘친구’라고 표현하세요. 그 모습을 보며 작가님께서 소품과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다고 생각했죠. 작가님께 이 ‘친구’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저는 사실 물건을 팔고 끝난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만든 친구고 이 친구가 제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도 저에게 줬던 에너지와 마음들을 구매자분들께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들을 ‘작은 미도리’라고 생각하며 계속 친구라고 칭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을 보내드릴 때, 이 친구들이 단순히 물건에서 끝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오래오래 그분들에게 ‘이 애랑 같이 하는 순간 참 좋았지’ 정도로 남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구매자분들께서도 이 친구들을 친구처럼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이 구매자의 친구가 되는 상황을 경험했던 추억도 있을까요?
제 대학교 친구가 길을 가다 제 물건을 만났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요.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준 친구가 어딘가에서 살아있구나’ 생각되었어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 띄며 '저 사람은 미도리 작업실의 물건을 들고 다니는구나' 인식되고 연결되는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죠.
그리고, 제가 아는 손님분 중 캐나다 분이 계세요. 한국에 공부하러 오신 분이죠. 그분도 서울에서 식당을 갔는데 식당 주인분이랑 서로 미도리 작업실의 물건을 통해 알아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진짜 예상도 못 한 상호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도리가 서로의 취향을 묶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구나, 이 친구가 서로를 소개해 주는 역할까지 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놀랍고 기뻤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 사이에서 ‘미도리 작업실 아시나요?’라는 이야기를 꺼내주며 저희가 그 가운데에서 서로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줬구나, 그렇게 미도리 작업실은 작용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미도리 작업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들을 단순히 ‘물건’ 혹은 ‘제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이 친구가 자신의 존재를 통해 타인들에게 새로운 관계를 부여해 준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느끼거든요.
- 지금까지 제작하지 않았던 것 중 앞으로 제작해 보고 싶은 소품도 있으신가요?
정말 많아요. 하하. 가방 같은 곳에 달고 다닐 수 있는 토마토 네코 인형도 만들어보고 싶고, 마스킹 테이프도 만들어보고 싶고, 화이트보드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나만의 금일의 표어’를 적을 수 있는 화이트보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마스킹 테이프도 만들어보고 싶고… 만들고 싶은 것은 메모장에 다 적어놓고 있어요.
미도리, 그리고 곽보미
- 작가님께서 ‘미도리 잡화점’을 운영하며 작가님 스스로의 취향에 대한 고민이 깊으셨던 적이 있죠. 조금 더 자세하게, 어떤 고민들이었을까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제 취향이 확고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 미도리 작업실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난 22년도쯤에 계속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죠. 내 취향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이 과연 진짜 내 취향이었을까?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타인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그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계속해서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 의심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내가 그때 빠져있으면 빠져있었던 거죠.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제가 찍어온 점들이 이어지는 때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점을 찍는 순간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모양이 될까’에 대한 의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하.
- 그렇다면 지금 생각하기에 미도리의 취향은 어떤 취향인 것 같으세요?
제 작업물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제가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마우스 움직이는 대로 항상 작업을 했어서 그게 어떻게 보면 다 저의 취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고 0인 상태를 유지하면 그게 내 취향이겠구나 생각하죠.
다만 어딘가 웃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것 같아요. 단순히 귀여운 것은 세상에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귀여운 것에서 끝나지 않고 어딘가 웃기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항상 좋아하는 것들이 다 그렇더라고요. 대놓고 귀여운 것도 물론 정말 귀엽지만, 저는 저만의 귀여운 포이트가 있는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었죠. 눈, 코, 입이 있는데 다 웃고 있고, 단순하게 생기고, 톡톡 튀는 색감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이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 처음의 미도리와 지금의 미도리는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공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물건이 굉장히 많아졌죠. 하하.
미도리로서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0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사업을 하다 보면 내 마음처럼 안될 때도 너무 많고, 정말 아무 걱정 없이 그냥 물건만 만들어 공개하면 참 좋은데 흐름이라는 것이 그게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도 이제 생기게 된 것 같아요. 정말 0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결국에는 평정심을 찾을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도 생긴 것 같고요. 결국 저의 부족한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런 태도들이 물건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 앞서 미도리 작업실과 미도리의 애매함을 견디기 어렵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지금은 애매함을 추구하는 분이 그 당시에는 오히려 애매함으로 인해 괴로워하셨다는 것이 인상 깊어요.
맞아요. 미도리 작업실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카페도 아니고 소품샵도 아니고, 저는 작가이면서 사장이면서 대표이면서 … 그 모든 상황들이 그때는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나는 진짜 애매하다, 이도 저도 아니다’라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그런데 ‘이것이 미도리이구나’ 받아들이니까 그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졌죠.
- 그렇다면 과거의 괴로움을 받아들인 미도리에게 새로운 고민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은 해결이 되었는데, 제가 올해 2월~3월에 굉장히 지루했어요. 이루고 싶은 것도 다 이루고, 초반에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들도 다 해본 것 같고, 제가 원하는 선상에 다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팍 식어버린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좋아할 에너지도 없고, 지루하다, 심심하다는 말만 반복했었죠.
그런데 그때 제가 갑자기 야구에 빠졌어요. 그리고 ‘나는 진짜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구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에너지가 계속 날 움직이게 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게끔 장작을 넣어주는 작업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 3개월간 무언가를 좋아하다 보니까 계숙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제가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더라고요. 제가 동물의 숲을 굉장히 좋아했었거든요. 이렇게 좋아하는 에너지를 계속 꺼내놓고 싶다는 마음에 검색을 하다가 네이버 동물의 숲 대표 카페의 존재를 알고 가입을 하게 되었었죠. 그런데 그 커뮤니티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곳의 사람들은 전부 동물의 숲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하니까요. 오로지 그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일상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이후로 그 카페에 무언가를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BGM 선물을 하고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카페의 스킨과 배너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당시의 제가 10~11살 정도 되는 초등학생이니까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검색을 하며 포토샵을 다운로드하고, 포토샵에 대해 검색해 보니 또 카페가 나와서 그곳에서 디자인하는 법을 배우며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어요. 그렇게 동물의 숲 커뮤니티의 디자인 스태프가 되었다가 부매니저까지 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 제가 좋아하는 가수 등이 생기면 직접 굿즈를 만드는 등 저는 항상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으면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항상 그랬죠. 그래서 ‘아, 그 루틴이 계속 나를 살게 했던 루틴이었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결국 이번에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과거의 저를 돌아보며 진짜 저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캐치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 작가님께서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키워드를 통해 그 한 해를 계획하시죠. 올해의 키워드는 '단순, 체계, 깊이, 고요, 초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2024년이 거의 반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2024년을 돌아본다면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나요?
네, 잘 정리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에는 물건을 정말 많이 만들었던 해여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올해 했거든요. 그 가지에 제가 정말 원하는 꽃을 피우려면 저의 에너지를 깎아내는 것들을 잘라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정리를 좀 많이 한 것 같아요. 당시의 저는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키워드를 정했었는데,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저는 사실 친구들도 만나면 참 좋지만 잘 안 만나거든요. 제 친구들을 참 좋아하고 만나면 너무 즐거운데, 만나다 보면 제 일을 미루게 되거나 저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힘든 부분들이 생기게 되었죠. 그래서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약속도 안 잡고, 이미 갖고 있는 것들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 말씀하셨던 노력들을 통해 현재 미도리 작업실은 큰 인기를 얻으며 굉장히 성장했죠.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도리 작업실은 어떻게 성장했으며 좋겠나요?
맞아요, 사실 지금까지 저는 ‘무언가 되어야겠다’ 혹은 ‘어떻게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냈는데, 그 목표를 이뤘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앞으로의 방향 설정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까지는 제가 보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은 다 했으니까 앞으로는 미도리라는 캐릭터가 더 다양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공간과 물건을 만들며 미도리 작업실과 미도리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미도리가 어떤 캐릭터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하는 것이 저의 다음 방향성인 것 같습니다.
- 작가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곽보미’와 ‘미도리’는 다른 존재일까요?
네.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물론 둘 다 저의 일부이기에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제가 곽보미라는 사람으로 존재할 때는 조금 더 이성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미도리로 존재하며 일을 할 때 조금 더 편한 느낌이 들죠. 평소의 곽보미라면 이야기하지 않을 것들이 미도리라면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요. 하하.
사실 저는 필요 이상의 대화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제가 생각보다 누군가 저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여겨지더라고요. 그렇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다수의 분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곽보미로서는 너무 힘든 일었죠. 하지만 미도리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괜찮아졌어요. 곽보미가 못하는 것을 미도리가 하고, 미도리가 못하는 것을 곽보미가 하며 밸런스를 잘 잡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가짜’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는데 … 하하. 저의 SNS를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께는 그분들이 기대하시는 저의 이미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 이미지를 잘 보여드리는 것이 제가 맡은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인간 곽보미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당장 퇴근하고 싶을지라도, 미도리로 존재한다면 계속해서 찾아주시는 분들을 반갑게 맞이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 작가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작가님께서는 게임 <동물의 숲> NPC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임의 캐릭터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동일하게 존재하잖아요. 항상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죠. ‘곽보미’가 아닌 ‘미도리’는 그 모습을 닮아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인상 깊은 비유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말씀해 주셨던 부분이 제가 바라는 부분이에요. 미도리라는 캐릭터는 제가 되고 싶은 캐릭터이기도 하거든요. 많은 분들께서 ‘미도리님의 문장과 글로 항상 위로를 받는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인간 곽보미는 그렇게 다정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미도리가 저의 이상향이기도 해요. 게임 NPC처럼 항상 변함없이, 엄청 뛰어나지도 엄청 모자라지도 않고,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미도리인 것 같고 제가 원하는 방향성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원래는 꼼꼼한 사람이 아니고, 계획도 잘 안 세우는데 미도리라는 캐릭터로 저의 삶을 운영할 때는 보다 꼼꼼하고, 계획적이고, 다정하고, 집중력 있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께서는 다른 작가님들과 협업도 많이 하시죠. 다른 작가님들과 협업할 때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같이 만들면 재미있겠다’라는 저의 포인트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의 손을 빌려 표현된 토마토, 그분들께서 만드는 물건이나 저의 이야기가 어떻게 재해석이 될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협업했던 작가님들은 항상 ‘내가 만들 때에는 이랬는데, 이분들이 만들 때에는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기대되는 포인트가 있었기에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작가님들과 협업을 하는 과정이 정말 신기하고 즐겁거든요. 하하. 그분들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분은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요.
그분들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한 방식이 저에게는 굉장히 비범해 보여서, 항상 이런 생각과 방향을 중심으로 협업을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협업을 진행하고 싶으실까요?
지금까지는 ‘미도리 작업실’과 아티스트님들의 협업이었다면, 앞으로는 아티스트 ‘미도리’로서 협업을 진행해 보고 싶어요. 다른 브랜드의 이야기를 제 방식대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 미도리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요?
하하. 지금이랑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기대하신 바와 똑같은 아티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모습 그대로의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미도리 작업실에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에게 미도리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본인을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미도리 작업실에서의 시간이 스스로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나 이런 것을 하고 싶어 했구나’라는 생각을, 아주 살짝이라도 괜찮으니까 깨달으며 스스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미도리처럼 되고 싶다’, ‘나도 미도리처럼 지내고 싶다’는 말씀은 참 감사한 말씀이고, 잠 좋은 에너지에요. 하지만 그보다는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는 등의 자기 스스로에 대한 고민거리들을 갖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도리 작업실은 항상 이곳에서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