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픔에 이름 붙이기 - 짚어내기 어려운 감정을 붙잡는 시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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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즉 번역 불가능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의하지 못할 만큼 모호한 슬픔은 없다. 우리는 그저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p17)
삶을 살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종종 마주한다. 그때마다 그 실체를 펜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압박에 급하게 펜을 꺼내 들고는 했지만, 감정 뒤에 숨은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펜을 곧바로 내려놓고는 했었다.
그래서 감정은 펜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사이에 전부 소진되고, 흐릿한 기억이 되어버린다. 거죽만 더듬거리다 심장으로 파고들지도 못한 채로. 역시, 꿈틀거리는 감정을 붙들기란 쉽지 않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존 케닉이 모호한 느낌에 적확한 단어를 붙인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책 제목이다. 그는 기존의 단어로 짚어내지 못하는 일상의 감정을 짚어내고자 신조어를 만들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를 드러냈다. 언어의 늪을 내달리다 탈진한 사람에게 존 케닉의 노력이 담긴 이 책은 단비 같은 책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책에 실린 신조어의 어원은 중세 영어, 그리스어, 독일어 등 언어이거나 특정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 등 그 범위가 광대하다. 그래서 신조어 자체는 우리의 삶과 큰 연관이 없을지 몰라도, 그가 '신조어를 통해' 짚어낸 감정의 서술만큼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핏칭(fitching) - (자동사) 불만스럽거나 메스꺼울 만큼 훌륭한 예술 작품을ㅡ영화 관람을 멈추고 극장을 떠난다거나 책을 미칠 만큼 야금야금 읽어 나가는 식으로ㅡ강박적으로 외면하다. 그것이 정확히 딱 맞는 주파수로 공명해서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뒤흔드는 까닭에 평소대로 행동하기가 살짝 거북해진다.
/ 어원 : bitching(아주 좋은) + fitch(긴털족제비). 긴털족제비는 종종 먹잇감의 뇌를 이빨로 뚫어서 산 채로 굴속에 저장한 후 나중에 돌아와서 먹곤 한다.
이 책은 사전 형식을 하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배치된 에세이도 꽤 인상적이다. 그러니 단어 정의부터 한 흐름으로 거침없이 읽기보다 불명확한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한 장씩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공중을 부유하는 쌉싸름한 슬픔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이 책을 책장 한 쪽에 놓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자가 포착한 삶의 순간을 감상할 당신은 분명 그 누구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을 감정을 마주하며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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