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따지자면 봄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온화한 날씨와 오색찬란한 풍경. 싫어하기에는 딱히 나쁠 이유가 없는 평화로운 계절이지만, 그렇다고 목이 빠지게 기다릴 만큼 좋아하지도 않았다.
직전의 계절과 대비되기에 더 그런 걸까? 봄이 오면 꽃놀이를 가고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등,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 계절을 즐기곤 하지만 나는 딱히 시간이나 정성을 들이는 편은 아니었다. 찬란하다는 표현이 퍽 잘 어울리게 세상을 가득 물들인 오색 빛의 봄꽃들에 가슴이 설렜지만, 그 각각의 꽃들이 어떤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지 세심히 들여다볼 정도의 관심은 또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이 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유난히 긴 겨울에 추위가 하루빨리 가시기를 바랐고, 그만큼 온화한 날씨가 무척이나 간절하게 느껴졌다. 사실 겨울이 추운 게 한두 해 일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꽤 좋아하는 편이기도 한 계절이었는데, 유난히 추위가 달갑지 않고 계절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건 어쩌면 내 마음탓이었던 것도 같다. 겨울이 지닌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내 마음에 여유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날씨가 그리웠던 건 딱 그 온기만큼의 여유가 내 마음에 필요했기 때문일 거다.

올해 봄은 조금 유난스럽게 찾아왔다. 각자의 온도에 맞춰 서서히 피어났어야 할 꽃들이,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한날한시에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서 였을까? 하루아침 새 찾아온 알록달록한 봄날의 세상이 마치 요란하게 제 자신이 찾아왔다고 알리는 것만 같았다.
계절이 요란스럽게 찾아온 만큼 나 역시 조금은 유난스럽게 봄을 챙긴 것도 같다. 생전 가볼 생각이 없던 튤립 축제를 굳이 찾아가고, 밤 산책길에 발걸음을 세운 라일락 향에 한참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유난히 짧았던 벚꽃의 개화시기를 아쉬워했으며,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이팝과 조팝의 차이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 들고 있다는 거라던데, 누군가를 놀리기 위한 그 말이 내게는 조금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물론 여전히 그 정답을 명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만약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이냐 묻는다면 나는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여리고 약한 것들을 부드럽게 보듬을 줄 아는, 그런 여유를 지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꽃 사진을 좋아하고 아빠들이 이름 모를 들풀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멀리서 보면 작고 보잘것없는 연약한 생명에 깃든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여유, 그 안에 품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대견스러워 하는 그런 다정함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 봄이 유난스러웠던 건 그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 계절을 대하는 내 마음이 여유롭기 때문이었다. 내 안의 고민에 갇혀 주변을 둘러볼 틈 없던 시기가 지나가고, 이제는 보다 연약한 것들을 세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내게도 생기고 있는 것만 같다.

고작 하루 차이일 뿐인데도 유월이 된 내일은 왠지 늦봄이 아닌 초여름이라 불러야 할 것만 같다. 그저 명칭에 불과한 구분이 계절의 세밀한 변화를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 너머 풍경이 어느새 여름이란 이름과도 퍽 잘 어울리게 변해 있다. 몰라보게 짙어진 초록 잎들과 제법 후덥지근해진 공기가 이제는 올해의 봄을 놓아주라 말하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오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직 늦봄이기에, 이대로 봄을 보내는 것이 아쉬워서 이 일기를 쓴다. 이 봄에 무엇을 배웠느냐 묻는다면 세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태도였노라 말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계절의 변화를 목도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봄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같은 잎사귀이지만 초봄의 색과 늦봄의 색은 다르다. 초록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연두색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어린잎이 이제는 제법 쌉쌀해 보이는 짙푸른 여름의 색으로 물들 때까지, 햇빛 아래 반짝이며 나날이 진해지는 나뭇잎의 성장을 관찰했다. 단순히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리기에는 이 세상엔 너무 다양한 초록빛이 존재한다는 걸 고작 나뭇잎 하나로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세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이지만, 분명한 건 나뭇잎의 성장도 계절의 변화도 매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미처 계절의 변화를 눈치챌 틈 없던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럽고, 단순히 어제와 오늘의 차이와 비견하면 새삼스러운 지난봄 사이에 초록의 성장은, 위대한 변화는 결국 아주 작은 노력들이 쌓여 이뤄진다는, 그 소리 없는 우직한 힘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여린 생명에 깃든 강인한 생명력을 대견스럽게 느끼는 이 마음의 여유 역시, 그런 꾸준함이 쌓인 또 다른 이름의 성장이라 믿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