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봄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온화한 날씨와 오색찬란한 풍경. 싫어하기에는 딱히 나쁠 이유가 없는 평화로운 계절이지만, 그렇다고 목이 빠지게 기다릴 만큼 좋아하지도 않았다.

 

직전의 계절과 대비되기에 더 그런 걸까? 봄이 오면 꽃놀이를 가고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등,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 계절을 즐기곤 하지만 나는 딱히 시간이나 정성을 들이는 편은 아니었다. 찬란하다는 표현이 퍽 잘 어울리게 세상을 가득 물들인 오색 빛의 봄꽃들에 가슴이 설렜지만, 그 각각의 꽃들이 어떤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지 세심히 들여다볼 정도의 관심은 또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이 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유난히 긴 겨울에 추위가 하루빨리 가시기를 바랐고, 그만큼 온화한 날씨가 무척이나 간절하게 느껴졌다. 사실 겨울이 추운 게 한두 해 일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꽤 좋아하는 편이기도 한 계절이었는데, 유난히 추위가 달갑지 않고 계절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건 어쩌면 내 마음탓이었던 것도 같다. 겨울이 지닌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내 마음에 여유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날씨가 그리웠던 건 딱 그 온기만큼의 여유가 내 마음에 필요했기 때문일 거다.

 

 

IMG_4111.jpeg

 

 

올해 봄은 조금 유난스럽게 찾아왔다. 각자의 온도에 맞춰 서서히 피어났어야 할 꽃들이,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한날한시에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서 였을까? 하루아침 새 찾아온 알록달록한 봄날의 세상이 마치 요란하게 제 자신이 찾아왔다고 알리는 것만 같았다.

 

계절이 요란스럽게 찾아온 만큼 나 역시 조금은 유난스럽게 봄을 챙긴 것도 같다. 생전 가볼 생각이 없던 튤립 축제를 굳이 찾아가고, 밤 산책길에 발걸음을 세운 라일락 향에 한참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유난히 짧았던 벚꽃의 개화시기를 아쉬워했으며,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이팝과 조팝의 차이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 들고 있다는 거라던데, 누군가를 놀리기 위한 그 말이 내게는 조금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물론 여전히 그 정답을 명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만약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이냐 묻는다면 나는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여리고 약한 것들을 부드럽게 보듬을 줄 아는, 그런 여유를 지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꽃 사진을 좋아하고 아빠들이 이름 모를 들풀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멀리서 보면 작고 보잘것없는 연약한 생명에 깃든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여유, 그 안에 품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대견스러워 하는 그런 다정함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 봄이 유난스러웠던 건 그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 계절을 대하는 내 마음이 여유롭기 때문이었다. 내 안의 고민에 갇혀 주변을 둘러볼 틈 없던 시기가 지나가고, 이제는 보다 연약한 것들을 세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내게도 생기고 있는 것만 같다.

 

 

IMG_4624.jpeg

 

 

고작 하루 차이일 뿐인데도 유월이 된 내일은 왠지 늦봄이 아닌 초여름이라 불러야 할 것만 같다. 그저 명칭에 불과한 구분이 계절의 세밀한 변화를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 너머 풍경이 어느새 여름이란 이름과도 퍽 잘 어울리게 변해 있다. 몰라보게 짙어진 초록 잎들과 제법 후덥지근해진 공기가 이제는 올해의 봄을 놓아주라 말하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오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직 늦봄이기에, 이대로 봄을 보내는 것이 아쉬워서 이 일기를 쓴다. 이 봄에 무엇을 배웠느냐 묻는다면 세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태도였노라 말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계절의 변화를 목도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봄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같은 잎사귀이지만 초봄의 색과 늦봄의 색은 다르다. 초록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연두색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어린잎이 이제는 제법 쌉쌀해 보이는 짙푸른 여름의 색으로 물들 때까지, 햇빛 아래 반짝이며 나날이 진해지는 나뭇잎의 성장을 관찰했다. 단순히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리기에는 이 세상엔 너무 다양한 초록빛이 존재한다는 걸 고작 나뭇잎 하나로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세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이지만, 분명한 건 나뭇잎의 성장도 계절의 변화도 매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미처 계절의 변화를 눈치챌 틈 없던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럽고, 단순히 어제와 오늘의 차이와 비견하면 새삼스러운 지난봄 사이에 초록의 성장은, 위대한 변화는 결국 아주 작은 노력들이 쌓여 이뤄진다는, 그 소리 없는 우직한 힘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여린 생명에 깃든 강인한 생명력을 대견스럽게 느끼는 이 마음의 여유 역시, 그런 꾸준함이 쌓인 또 다른 이름의 성장이라 믿고 싶다.

 

 

 

김소형.jpe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