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모든 것이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우연을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모순적인 상황. 그 안에는 기분 좋은 막연함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실존한다. 이번 봄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시작이 내게 찾아왔다.
학교를 다니기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기쁨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네 달의 존재에서 온다. 듣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개강'이라는 단어가 올해의 나에게는 유난히 반가웠다. 학교를 쉬었던 지난 한 해 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열정을 드디어 방출할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학기를 함께 할 공책의 첫 페이지, 입학 후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교수님의 강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아는 얼굴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머쓱함과 기어코 친구를 찾아냈을 때의 반가움까지, 하나하나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3월 4일을 기다렸다.
3월 첫 주의 캠퍼스에는 가을에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파릇함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이는 신입생들의 설렘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괜히 나까지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것만 같아 신이 났다. 나도 뭐든 다 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런데 설레는 시작을 햇수로 4년째 거듭하면서 느낀 게 한 가지 있다. 들뜬 감정을 의미 있는 동력으로 바꾸려면 의외로 나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모든 게 저절로 이루어지면 참 좋을 텐데.
매년 새해 목표를 적는 사람이라면 이미 본 적 있을 테다.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신년과 봄에는 항상 거창한 목표를 잔뜩 세우고, 크고 작은 돌발상황으로 인해 이루지 못해 실망하는 자신을. 풍선처럼 커진 목표는 작은 바늘침에 쉽게 터지고 만다.
올해는 무작정 목표의 크기를 키워나가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바늘을 어떻게 막아내면 좋을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정한 2024년 나의 키워드는 '탄력성'이다.
한때 나는 가장 중요한 말은 '지속성'이라고 생각했다. 꾸준히 공부를 하기. 꾸준히 글을 쓰기. 꾸준히 노력하기. 꾸준히의 동의어는 매일매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하루라도 빠지면 이미 실패자가 되어 있었다. 목표가 실패로 결정되어 버린 그 순간부터 나는 그 목표를 포기하고 말았다.
하루를 빠뜨렸을지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띄엄띄엄 흩어져있더라도, 그 무언가가 꾸준히 삶에 등장한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한편, 탄력성이 필요한 건 나 스스로와의 약속과 관련해서만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대할 때도 계획이나 예상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위한 탄력성이 절실했다. 짧다면 짧은 5개월 동안 한국을 떠났다 돌아온 이후, 내 안에는 참 많은 고민이 존재했다. 한참을 생각했다.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변하고, 변할 거라 생각했던 것은 웬일인지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역시 변하지 않고, 변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 끝내 변하고 마는. 그런 모습들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행복해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알게 되는 것일까?
개강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과방에 들렀다가 몇십 년 전 한 선배가 남긴 글을 하나 발견했다. 인생에는 고저(高低)가 있다. 올라가면 곧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고,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게 인생이란다. 내게는 그게 인연이라는 말로 읽혔다.
결국 무슨 일을 하든, 누구와 연을 이어 나가든 내게 필요한 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인가 보다. 열심히 달리다가도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힘이 된다. 엔진이 고장 날 수도 있고, 막다른 길을 마주할 수도 있다. 물론 하고 싶었던 만큼 쌩쌩 달려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도 있고 말이다.
알 수 있는 건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 뿐이라는, 말장난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헛웃음이 나오는 마무리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게 우리의 하루하루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 하루를 보낸다.
여기까지 봄에 적어두었던 글인데, 벌써 5월도 절반이 지나갔다. 새로운 학기가 주는 설렘은 당연히 오래 가진 않았다. 과제와 시험의 부담감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내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우연도 몇 번이고 만났고, 나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순간들도 몇 번이나 마주했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여전히 나로 잘 살아가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잠시 기뻐하고 잠시 슬퍼하다가, 이내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으로. 크게 실망하지 않고, 충분히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