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모두의 ‘평범한 강인함’을 사랑하길 - 뮤지컬 빨래 [공연]

글 입력 2024.05.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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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강인한 사람이라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무시무시한 전투에 맞서 싸우고, 힘겨운 투쟁을 통해 변화를 거머쥔 이들만을 강한 이들이라 인정하고,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내어준다. 몇 되지도 않는 소수의 영웅과, 영화로 제작될 법한 그들의 방대한 삶의 서사를 보고 있노라면 강하지도, 끈질기지도 못한 나는 너무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 같다.


하지만 남들이 인정할 법한 변화를 이루고, 대단한 투쟁을 하지 않아도 내면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별 보잘것없는 나조차도, 삶의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다. 똑같아 보이는,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날들을 그저 겪어내며 내가 커지고, 강해지고, 단단해졌다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지쳐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기에 그 어두컴컴한 인생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의욕도, 열정도, 체력도 소진됐지만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정해진 때에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수업을 들었고, 주어진 과제를 하고, 시험을 쳤다. 당시 나의 막중한 의무이자 책임이었던 학보 업무도 어떻게든 해냈다. 우울한 생각에, 사소한 걱정에 잠식되어 나를 내버리기보다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했다.


그 모든 날이 지나가자, 강하고 단단한 사람의 정의가 바뀌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버텨내면서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 남들 다 겪는 삶의 시련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가끔 그것 때문에 무너져 내리더라도, 결국엔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자기 삶으로 돌아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이 정의 하에서는, 강한 건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강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특정한 사건이나 시점을 기준으로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나만이 또렷이 기억하는 지난한 날들을 거쳐, 어느새 강하고 단단해진 나를 만난다.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이, 그저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 최선을 다했고, 충실했으며, 끝까지 버텨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삶을 어떻게든 살아낸 그들의 ‘평범한 강인함’에 애정이 간다.


뮤지컬 <빨래>는 우리 곁의 수많은 평범한 이웃들,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들이 버티고, 함께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삶을 담아낸 뮤지컬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새겨져 있다. 세상살이는 때로 슬프기만 하다. 비참함을 그저 참아내야 하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땐 울분만 쌓이는데, 그 울분을 토해낼 사람도 없어 외롭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새로운 만남에 들뜨기도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별것도 아닌 일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소리치고, 욕하고, 때로는 술도 한 잔 마시며 속에 켜켜이 쌓인 울분을 풀어낼 때도 있다. 뮤지컬은 모두가 공감할 삶의 장면들을 나영, 솔롱고, 주인할매, 희정엄마, 구 씨 아저씨, 슈퍼주인으로 불리는, 내가 삶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인물들,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 숨 쉴 것만 같은 인물들을 통해 풀어낸다.

 

*


뮤지컬 <빨래>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소수자성을 지니고 있다. 크고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서울 속, 그들이 살아가는 곳은 낡고 초라한 빌라 건물의 좁디좁은 방 한 칸이다. 돈이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쉽게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가난이 틀 짓는 그들의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때로는 비참하며, 그렇기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극의 중심인물인 나영은 여성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몽골 청년 솔롱고는 이주노동자로서의 소수자성을 보여준다. 빌라의 주인 할매 역시 거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 딸의 보호자로서,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경시하는 돌봄 노동을 40년째 어떤 대가도 없이 해내고 있다.


너무나 평범한 우리들이자, 우리 사회에서 쉽게 약자로 호명되어 부당함을 마주해야만 하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겪은 차별과 부조리를 당장에 없애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힘은 없다. 하지만 이들은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삶을 견뎌낸다. 다시 일어서 버티기 위해 그들이 찾은 탈출구는 ‘빨래’다. ‘거지 같은’ 현실에서, ‘내 인생이 요것밖에 안 되나 싶은’ 날에 그들은 빨래를 한다. 빨래를 문지르고, 박박 닦아내고, 쥐어짜고, 말리면서 ‘살아갈 힘’이 내 안에 남아있음을 깨닫고 다시 힘을 낸다. 세상살이에 너덜너덜해지고 지저분해진 마음도 그렇게 닦아지고, 쥐어짜지고, 마침내 말라 깨끗해지는 것만 같다. 그들의 빨래는 그래서 저항적이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함부로 대하고 짓밟아도 그들은 작아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은 채 다시 일어서 빨래를 하고, 또 삶을 살아가니까.


빨래는 등장인물 간 소통과 연대를 도모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웃인 나영과 솔롱고는 빨래를 널기 위해 건물 옥상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을 찾아왔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을 옥탑방으로, 반지하로 내모는 서울의 잔인함을 한탄하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그들을 연결해 주는 행위는 빨래다.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나영을, 때마침 빨래를 하고 있던 희정엄마와 주인 할매가 발견하고 위로해 준다. 나영은 엉엉 울면서 외친다.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한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고. 사회초년생인 나영보다 훨씬 더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견뎌낸 희정엄마와 주인 할매는 나영을 평가하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나영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가 겪은 부당함에 함께 분노한다. 공자에서 ‘3교대도 아닌 2교대로‘ 코피 흘리며 일했다는 희정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윗대가리들은 똑같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뭘 해야 할 지 모를 만큼 슬픈’ 나영에게 두 강인한 여성이 제안하는 것 역시 빨래다. 빨랫감을 발로 밟고, 손으로 문지르다 보면 살아가고, 또 사랑할 힘이 남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리며 우는 나영을 위로한 희정엄마와 주인 할매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나영을 일으켜 세운다. 분위기가 밝게 전환되는, 가장 극적이고 벅찬 장면이다. 조명은 일순간 밝아지고, 무대 뒤편에서는 비눗방울이 마구 나온다. 노래 멜로디는 한껏 신나고 활기차며, 무대 위 빨랫줄은 박자에 맞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희정엄마와 주인 할매는 넓고 큰 빨랫감을 털어내고, 나영은 그사이를 비집고 힘차게 뛰어든다. 세 사람은 어깨동무하고 현실의 울분을 잠시 잊은 채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이내 희정엄마는 ‘난 돈도 많이 벌고, 사랑도 많이 할 거야!’라고, 주인 할매는 ‘난 건강하게 오래 살 거여!’라고, 그리고 나영은 ‘난 지치지 않을 거야!’라고 큰 소리로 다짐한다. 서로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한데 모여 서로에게 공감하며, 위로를 전한다.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을 공유한 이들 모두가 화자이자 청자가 되는 이 ‘한풀이’는 결국 세 사람 모두에게 살아갈 힘을, 또 용기를 준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이 연대의 장면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또다시 사람에게서 치유하는, 따스한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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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1부의 마지막 장면, 비가 내리는 어느 아침, 사람들은 만원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나영과 솔롱고도 그들 틈에 섞여 있다. 남편과 사별한 후 몇십 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는 버스 기사, 서울로 상경한 사회초년생, 그리고 임금을 체불 당한 솔롱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버스에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청소년과,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단 임산부도 보인다. 모두 우리 자신이자, 수많은 이웃들의 모습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궂은 날씨에,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각자가 지닌 우산을 꺼내 쓰며 어딘가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비 오는 날이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또 하루를 살아가요

비 오는 날이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또 하루를 살아가요

비 오는 날이면 떠나고 싶은 이 마음

우산 하나로 가리고 또 하루를 살아내요

 

우리에게는 내리는 비를 그치게 할 능력도, 비를 완전히 피할 방법도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지닌 우산 하나로 궂은 비를 막아내고, 비에 젖은 길을 헤쳐 학교로, 직장으로 향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역경과 시련도 막을 수 없고, 완전히 피할 수 없는 비와 같다. 많은 비가 세차게 쏟아질 때도, 부슬부슬 잔잔하게 내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그저 우리만의 작은 우산 하나로 버티고, 견디며 살아낸다. 우리 손에 들려, 우리에게 쏟아지는 비를 막아주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 작은 우산은, 삶을 살아내는 모두가 지니고 사는 평범한 강인함과도 같다.


그 평범한 강인함으로 묵묵히 버티고 살아가는 내 삶이, 또 내 삶에서 마주한 무수히 많은 이들의 삶을 그저 안아주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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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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