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에는 두 가지 고백이 들어있다. 지구의 연인을 향한 사랑의 고백, 우주 전쟁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고백. 광대하고 캄캄한 우주를 사랑과 용기 두 가지 축으로 유영하는 이야기가 바로 청혼에 담겨 있다.
전국을 하루에 오갈 수 있는 곳에 살며 만들어진 거리감각은 국내에서 며칠을 달려도 국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을 이해하기 힘들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도 여전히 같은 나라의 영토라니. 대륙을 실감하는 순간도 놀라운데 하물며 우주의 삶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청혼’ 속 우주는 우주에서 나고 자란 ‘나’의 눈을 빌려 생활의 배경이면서도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여느 인간이 사는 곳이 그렇듯이 말이다.

아주 아주 넓고 공허한 곳에서는 ‘우리’의 사이의 간격도 거대하다. 서로를 하나의 별처럼 느끼게 될 만큼 먼 곳에서, 깜빡거리는 빛을 보며 서로가 있을 것 위로하는 곳이 우주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우주군으로 전쟁에 참여하며 지구의 존재와 사랑한다.
너무너무 멀어서 빛의 속도로 보내도 몇 분, 몇 시간, 며칠의 차이가 발생하는 곳에서는 지금, 여기를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의 감정을 공유할 수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심지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차이를 확인하고도 사랑을 한다.
'우리처럼 태어날 때부터 중력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15쪽)'
이것이 주인공이 말하는 지구 태생과 우주 태생이 가진 근본적 차이일 것이다. 정해진 ‘올바른 방향’이 있는 곳과 오직 개별 존재의 방향만이 존재하는 곳의 기준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차이로 만든다.
하지만 주인공은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싸움이 끝나면, 전쟁이 끝나면, 새 휴양선에서 여는 댄스 코스에 등록할 생각이야. 지구 춤을 배우면 지구 출신들이 나를 좀 더 잘 이해해주지 않을까.(16쪽)'
지구의 문화, 춤을 배워 지구 출신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몸짓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교류하는 행동. 그러나 춤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과 같은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모두가 같은 멜로디와 박자에 맞추어 발을 구르고 팔을 흔들며 그 순간만큼은 동질성을 느끼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인간이지만 우주에서 태어난 탓에 ‘나‘는 지구인이 아니다. 반쯤은 외계인인 그도 인간인 그는 다른 사람과 ’지금, 여기‘를 공유하는 것이 관계의 기본임을 안다. 우리의 주인공은 빛의 속도로는 17분 44초, 우주선을 타고 편도 180시간이 걸리는 거리와, 미지의 적과의 전투라는 물리적 장애물을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를 공유하는 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투적이지만 금성에서 온 누구 화성에 온 누구라고 비유할 정도로 인간은 서로에게 외계인이고 살아온 만큼 알아가야 할 것들이 쌓여 있다. 거의 동시에 메시지를 주고 받고 지구 저편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진심을 꿰뚫어버리는 기술은 지금도 주인공의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통이 기술적으로 쉬워진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일은 어려워졌다. 오고 가는 전파는 늘었어도 서로에게 필요한 ’바로 그 말‘의 양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심을 알아보는 방법을 안다. 주인공의 말을 빌리면 ’마음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어. 주정뱅이의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 거리까지 재빨리 다가가는 것.‘

주인공은 데 나다 장군의 말에 따라 인류에 위협이 되는 '파멸의 신전'을 파괴하러 간다. 조사군이 그에게 부여할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알면서도 보다 안전한 우주를 위해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결심을 내린다.
나의 마음이 왜곡되지 않을 너의 옆에 가기 위해서 일단 지구를 지키려 간다. 밤하늘의 어느 한 점이고 그를 생각할 ’너‘를 두고! 이 ’청혼‘이 부디 ’나‘보다 늦게 ’너‘에게 도착하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