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 과학 잔혹사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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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이 도착했을 때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백과사전 뺨치는 두께가 전공 서적인 건가, 헷갈리게 만든다. 사실 이 책은 제목과 부제만 보고 선택했다. <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라니. 부제목에서 도파민을 자극했다. 과학은 평소 내게 까만 건 글씨고, 흰 건 종이라는 깨달음만 가져다주는 과목이었는데, 역사로 다가가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해 독서를 시작했다.
실제로 읽으니 내 예상보다 훨씬 잔인하고 깊었다. 잔인하다고 느낀 이유는 잔혹 행위들이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피부가 괴사하거나 사람이나 동물을 고문하는 장면 묘사가 길어질 때는 공포 영화를 보듯 곁눈질로 읽었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저자 샘 킨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물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도서관학 석사를 마쳐 과학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책은 과학자의 일대기와 과학적 발견, 잔혹행위 시행 이유를 엉킴 없이 잘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참을 수 없는 파트는 노예무역과 동물 학대였다. 물론 책에 나오는 해적질, 시신 도굴, 살인, 심리적 고문, 증거 조작 등 어느 것 하나 옹호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지만 앞선 두 파트는 참기가 더욱 힘들었다, 죄 없는 제 3자가 고통받으며 가해자는 자신만 편한 합리화를 이어 나가는 모습이 역겨웠다.
노예무역 파트에서는 처음에는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나 결국 과학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고 비판하던 노예 제도의 일부가 된 스미스먼. 오늘날 문명의 이기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기의 아버지 토마스는 사실 자신의 회사를 키우기 위해 허위 사실 유포는 물론 말 못하는 강아지 수 마리를 전기 고문한 인간이었다. 방에 불을 켠 채 노트북 타이핑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사실 에대슨의 발명이 없었다면 모습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많은 존재의 아픔이 있었다고 하니 갑자기 자리가 무겁고 숙연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매트릭스가 계속 떠올랐다. 빨간 약과 파란 약이 있다. 빨간 약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보여주고 파란 약은 질서 있는 세계 속에 평화로움이 있지만 가짜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빨간 약을 택한 사람의 기분을 알게 됐다. 당연하고 편한 삶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가짜다. 가짜를 가지고선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앞으로의 과학의 발전도 같다. 덮어 놓고 모르는 척이 아닌 알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위대한 성취 뒤에 숨겨진 과오를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를 되짚어 보지 않는 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미래를 얻기 어렵다. 과거라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에도 인문학이 꼭 필요하다.
단순히 과학적 사실 발견에만 집중하지 않고 역사를 통해 지난 성취를 다각도로 바라봐야 한다. 또한 윤리를 잊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 위에 쌓은 성취를 진짜 성취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학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이도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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