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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이호준 에디터
2024.05.13 11:11

 

 

지난겨울, 너를 만나러 종로와 을지로 그 사이 어딘가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게 되어 근처에 있는 서점을 들렀다. 고전 명작들을 미니북 사이즈로 판매하는 매대가 눈에 띄었다. 읽어본 작품들 절반,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를 아는 내용의 작품들이 절반이었다.


후자의 작품들 중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을 잊기 위해 먼 길을 떠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고, 그럼에도 베르테르가 원하는 끝을 맺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사전에 내가 알고 있는 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이었다.


별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구매하였고, 너가 오기 전까지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오늘의 나의 결말이 베르테르의 결말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책을 읽고 있던 중, 너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읽고 있던 책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휴대성 하나만큼은 미니북이 가진 최고의 장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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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괴테'

 

 

몇 년 만에 만난 너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나의 마음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너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 너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몇 년 전에 느꼈던 공허함과 허탈함을 두 번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고, 밤이 깊어가도 절대 두 번 속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된 것 또한 웃긴 일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여러 번 누군가의 베르테르가 되기도 했고, 여러 번 누군가를 베르테르가 되게 하였다. 너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새로운 사랑을 찾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후에도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너는 나에게 베르테르와는 정반대의 결말을 꿈꾸게 했다.


그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로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해외 현지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던 중, 매번 그렇듯이 연애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역시 사랑과 관련된 주제는 전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 분야다. 유창하지도 않은 영어 실력으로 그간의 일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였고, 현지 동료들의 응원과 함께 마지막 술잔을 들이켰다.


다음 날 귀국편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 조금 일찍 호텔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때마침 너에게 연락이 왔다. 대충 해외에 있어 부럽다는 내용과 한국에 언제 돌아오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 돌아가니 돌아가는 대로 술 한 잔 하자는 답장을 보냈다.


곧장 돌아온 너의 답장은 뜨거운 동남아 날씨 속에서도 나를 얼게 했다. 그렇게 베르테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베르테르와 마찬가지로 두 번이나 속아버렸다. 너의 연락을 확인한 그 골목길 위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너를 만난 날 읽다 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담배 한 갑이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두어 모금 피우고 이내 맛이 없어 털어버리고는, 오랜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열어본다. 지난번 로테와의 첫 번째 이별까지 읽었으니, 이제 두 번째 만남부터 읽어야 하는 차례이다. 두 번째 만남도 이별로 끝난다는 결말을 알면서도, 이러한 베르테르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는 것 또한 알면서도 그 골목길 위에서 책을 끝까지 읽어갔다.


베르테르도, 나도 첫 번째 이별에는 그저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이별은 원하는 결말을 절대 볼 수 없다는 확신을 제공한다. 이 책 또한 세 번 이상 속는 모습 없이 두 번째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것을 보면, 시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상당히 보편적인 일이다.


얼마 전 너를 만났던 종로와 을지로 그 사이 어딘가에 약속이 있어 가게 되었다. 이날도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게 되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구매했던 서점에 들어가 미니북 매대로 향했다. 이 미니북들이 마법처럼 나의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면 이번에는 긍정적인 책을 구매해 볼까 한다.


어림도 없다는 듯이, 구매할 책을 고르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며 서점에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결국 아무런 책도 구매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며 서점에서 나왔다. 또 다른 로테를 기다리며, 젊은 베르테르는 너로부터 느꼈던 슬픔을 털어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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