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오타쿠가 되었는가.”
오타쿠 발표회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타쿠 발표’는 덕후들끼리 모여 자신들이 덕질하는 장르에 대해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최근 1020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 발표는 서로 친한 소수의 사람끼리 모여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PPT는 '자신이 왜 이 아이돌을 탈덕*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장르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등 웃음을 유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발표를 진행하는 이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다. 유년기 시절부터 지금의 청년까지, 내가 좋아한 장르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발표자는 발표하다가 뜬금없이 과거 자신이 좋아했던 연예인을 생각하며 과몰입을 하거나 추억에 잠긴다.
유튜브에 '오타쿠 발표회'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개의 영상은 모두 발표자의 후회와 아련함이 뒤섞인 발표 영상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유튜브에 오타쿠 발표회를 검색해 보니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다. 업로드된 영상들은 대부분 웃음을 주거나 같은 장르를 덕질하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필자 또한 어릴 적부터 여러 장르를 덕질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깊이 공감하며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다.
나의 덕질 기록도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래전부터 한 남자 아이돌 그룹을 덕질하던 박모(23)씨는 최근에 오타쿠 발표회 영상을 본인 개인 채널에 업로드한 바 있다.
“예전부터 오타쿠 발표회가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저랑 같은 그룹을 덕질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MT를 가자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오타쿠 발표회도 진행할 예정이니 단단히 준비해 오라고 하더군요(웃음). 친구들끼리 장난식으로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박모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팬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를 덕질하는 사람들까지 해당 영상에 큰 반응을 보여 신기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특히 본인의 덕질 경험을 공유하며 안타까운 모 연예인 탈덕 사연에는 함께 공감해주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탈덕했을 당시엔 그냥 우울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과 그때의 감정을 서로 공유하니 이제는 그냥 속이 시원해요. 한결 편안해졌죠.”
끝으로 박모씨는 덕질을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옛날에는 감정으로만 남았던 것을 기록화하니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기 쉽다, 마냥 창피한 줄로만 알았던 시간이 헛된 것 같지만은 않아 왠지 뿌듯하다며 마지막 소감을 알렸다.
다양한 방식의 오타쿠 만남은 팬데믹 시기가 지난 후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만남을 갖는 소수의 사람끼리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SNS와 같은 미디어에 덕질 기록을 공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덕질 장르의 더 넓은 소통으로 이어졌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덕질 대상을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덕질 연대기는 나의 취향을 가장 잘 보여준다
사실 ‘덕질’은 그 어느 것보다 나의 취향을 가장 잘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내가 어떤 이유로 이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내가 좋아한 이들의 공통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하나씩 찾아가다보면 확실한 나의 취향이 보일 것이다. 덕질의 연대기를 살펴보는 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이제는 덕질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 시대다. 모두가 자유롭게 덕질하고 좋아하는 걸로 행복해지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탈덕 : 좋아하는 연예인을 더 이상 그만 좋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